방역 약속 지키며 신뢰 구축…대만 '확진 0명' 기적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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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대만 중앙전염병지휘센터(CDC)를 찾은 차이잉원(오른쪽 두번째) 대만 총통이 국민들에게 방역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대만 총통부 캡처]

지난 5월 18일 대만 중앙전염병지휘센터(CDC)를 찾은 차이잉원(오른쪽 두번째) 대만 총통이 국민들에게 방역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대만 총통부 캡처]

1만6816명대 57만5615명.

지난 21일까지 대만과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숫자다. 대만이 한국의 34분의 1이다. 백신 가뭄에 시달리던 지난 5월 셋째 주 대만의 주간 확진자(3390명)는 한국(4360명)과 별 차이 없었다. 7개월 만인 지난주 한 주간 대만 확진자는 65명에 그쳤지만 한국은 4만7836명에 달했다. 21일 대만 본토 확진자는 0명이다.

“열 명이건 스무 명이건 식당 이용에 어려움이 없어 타이베이는 송년 모임이 한창이다.” 김준규 코트라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22일 현지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여름 확진자 폭증 당시 시행했던 실내 50인, 실외 100인의 인원제한도 풀렸다. 대신 식당 내 테이블 배치 1.5m 간격 두기, 비말전파 차단을 위한 통풍 강화 조치 등 2단계 수칙은 여전하다. 김 관장은 “아직까진 오미크론 유입이 없지만 다음 달 춘절(설)을 앞두고 해외 대만인 등 귀향객을 통한 감염이 있을까 긴장 속에 대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만은 전 세계를 초토화시킨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 변이까지 막아내며 일상 회복 연착륙 중이다. 중국처럼 쥐 잡듯이 통제하는 ‘제로 코로나’ 방식도 아니다. 라이칭더(賴淸德·62) 부총통은 지난 10월 하버드대생 대상 강연에서 “대만 모델은 민주방역”이라면서 과학과 민주가 두 축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은 코로나 차단을 위한 선제 조치, 단계적 방역, 과학기술(IT) 활용으로 구현했다. 민주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정치 리더십이 솔선수범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차단했다. 특히 정부가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한 걸 지키는 ‘순차 방역’으로 진행됐다.

지난 5월 15일 대만 중앙전염병지휘센터(CDC)는 전염병 경보를 3단계로 격상했다. 3단계 당시 차이잉원(蔡英文·65) 총통은 국민과 소통에 주력했다. 18일 CDC를 찾아 연설하고 백신 개발과 조달 상황을 가감없이 밝혔다. 불안감을 해소했다. 31일 영상 담화에서는 “만일 다툼을 그치지 않고 허둥지둥 한다면 방역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3급 방역에서 대규모 백신 접종까지는 상호협력, 단결일치만이 최선”이라고 호소했다.

3단계는 험난했다. 전면 봉쇄인 4단계까지 가지 않기 위해 비(非)대만인의 입국과 환승을 금지했다. 유흥시설의 운영은 금지됐고, 요식업소는 테이크 아웃만 허용했다. 상점과 대형마켓 통제도 강화했다. 이 같은 조치는 7월 26일까지 짧고 굵게 이어졌다. 임병옥 전 한인회장은 “2003년 73명이 숨졌던 사스(중증호흡기증후군)를 경험한 대만인이 적극 협조했다”며 “세계보건기구(WHO) 가입도 안 돼 있어 자체적으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도 주효했다”고 돌아봤다.

CDC는 7월 넷째 주 주간 확진자가 152명으로 줄자 2단계로 완화했다. 방역을 전제로 유흥시설 영업도 허용했다. 대신 출입자 모두에게 QR 코드를 이용한 실명 등록,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게임장과 노래방 손님이 입퇴실할 때 환기를 위해 15~30분의 시간 간격을 의무화했다. 지난주에는 이동 중 취식 금지를 조건으로 모든 야시장 영업도 정상화했다. 극장 등 공연시설도 1.5m 간격 유지를 조건으로 특별한 영업 제한은 없다.

대만 각계는 짧고 굵은 3단계 동안 ‘두 달 이후’도 대비했다. 정부 백신 구매팀이 뛰는 동안 아이폰을 만드는 궈타이밍(郭台銘·71) 대만 폭스콘 회장도 화이자 백신 500만 도스를 조달했다. 7월에는 자체적으로 가오돤(高端·Medigen) 백신을 개발해 3상 없이 긴급사용을 승인해 500만 도스를 구매했다. 8월에는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접종에 나서 불신을 덜어내는 데 일조했다.

대만 섬의 특성상 해외 유입을 막는 철벽 방어는 지금도 여전하다. 비자 발급은 여전히 최소화하고 있다. 모든 입국자는 7+7+7 격리를 의무화했다. 해외 입국자 격리를 전문으로 하는 정부 지정 방역호텔에서 7일 격리, 재택 격리 7일을 거쳐 자율 관찰 7일을 지내야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 이 사이 핵산(PCR) 검사 횟수도 세 차례 의무화했다. 위반자에게는 최대 100만 대만달러(4288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자율에 맡기지만 위반하면 철퇴를 가하는 방식이다. 설을 앞두고 격리호텔이 부족해지자 심사를 통해 공급도 확대했다.

한국과 대만의 코로나 확진자 비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과 대만의 코로나 확진자 비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라이칭더 부총통이 지난 10월 하버드대 대만 학생회 연설에서 밝힌 ‘5월 위기’ 극복 비결은 6가지다. 선제조치, 쾌속대응, 투명 공개, 스마트방역, 정부와 민간의 자원을 통합한 공동 방역, 민주 거버넌스 등이다. 특히 고압적 수단과 강제 봉쇄가 없었다면서 중국식 방역과의 차별을 강조했다.

3단계 방역 당시 피해를 본 서비스 업종에는 고용 유지를 위해 세금 감면과 지원금도 나눠줬다. 한인 기업가 성교상 쑹훙(崧閎) 대표는 “지난해 대비 매출 하락폭과 종업원 수를 고려해 공평하고 과학적으로 지급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며 “대체적으로 정부 시책에 협조적인 대만인 성향도 민주 방역의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와 소통도 활발하다. 선룽진(沈榮津) 행정원(정부) 부원장은 21일 경제계와 조찬모임에 참석해 내년 설 이후 “비즈니스 비자 개방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인과 민주적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는 “대만은 효과적 방역을 위해 법적용을 강화하고,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고, 중국으로부터 유입을 선제적으로 차단한 것이 효과를 봤다”며 “방역의 강도, 법적인 근거, 책임 소재를 엄격히 적용한 점을 대만 코로나 방역의 차별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단계적 방역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조 바이든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 수, 전파 속도, 입원율 등을 기반으로 규제를 죄었다 풀며 조정하고 있다. 코로나19 초기인 지난해 5월 워싱턴DC는 야외 식사와 포장, 배달만 허용하고 실내 식사를 전면 금지했다. 그러면서 14일간 확진자 수가 줄고, 7일간 검사 중 확진율 15% 이하, 14일간 입원율 80% 이하 등 '2단계 개방'을 위한 조건이 충족되면 규제를 풀기로 했다.

주민과 자영업자 등 지역사회가 어떤 조건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이를 달성해 영업을 재개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동력을 확보하고, 개방 시점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다. 예컨대 보스턴은 음식점 총 수용인원의 25%만 실내 식사를 허용하다가 지난 2월부터 40%로 늘렸고, 확진자 감소 추세가 뚜렷해지자 3월부터 모든 제한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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