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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식 걱정', 베네수엘라는 '백신 구걸'…백신 의무화로 비상 걸린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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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2월 들어 코로나19와 관련,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 가지 일을 겪었다. 가장 강력한 방역 조치, 대규모 신규 확진자, 그리고 자영업자의 대대적 반발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장 강력한 방역 조치가 3일 시행됐다. 사실상 ‘백신 의무화’에 준하는 이 대책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식당·카페에 들르면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미접종 청소년은 내년 2월부터 학원·독서실 등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미접종자가 일상을 영위할 자유를 상당 부분 박탈했다.

12월 들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7000명이 넘어가면서 다시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13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12월 들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7000명이 넘어가면서 다시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13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러한 ‘자유 제한’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등장하고 있다. 22일 전국 자영업자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1인 시위나 권역별 소수 집회는 있었지만, 자영업단체들이 대규모로 항의 시위를 여는 건 처음이다. 매출에 직접적 타격을 받는 규제 ‘강펀치’를 연달아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3일부터 미접종자를 받을 경우 심하면 영업정지를 당하게 됐다. 18일부터는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됐다.

우리만 한 번도 겪지 못한 현실을 겪고 있는 건 아니다. 백신 접종률이 지체된 상황에서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오미크론’ 변이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mRNA 기술이 적용된 화이자·모더나를 제외한 다른 백신들의 오미크론 예방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게다가 오미크론은 다른 변이에 비해 전염률이 높아 곧 전세계 우세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스 클루주 WHO 유럽 사무소장은 21일 기자회견에서 “또다른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며 “몇 주 내로 오미크론 변이가 유럽의 더 많은 국가에서 우세종이 돼 의료 시스템을 더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 정부는 이러한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전면 봉쇄’와 ‘백신 의무화’ 카드를 검토하거나 시행하고 있다. 이런 조치에 대한 국민 반응은 각 나라의 상황과 문화에 따라 제각각이다. 거친 시위로 정부에 저항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백신 걱정에 국경을 넘는 곳도 있다. 세계인들은 유례없는 ‘정부의 직접 통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백신 구걸하러 국경 넘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의 코로나 풍경은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르다. 특히 접종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연령대가 확연히 다르다. 우리나라나 미국, 유럽 국가의 접종 행렬은 대개 어른들 위주다. 대부분 나라에서 청소년 접종을 아직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백신 접종 행렬의 태반은 어린이다.

콜롬비아 국경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백신을 맞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고 있다. 어른들은 저마다 아이를 데리고 국경 통과를 기다린다. 지난달 13일 콜롬바이 국경도시 쿠쿠타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산탄데르 국제교 앞에서 백신 접종을 위해 줄을 선 베네수엘라 사람들. AFP=연합뉴스

콜롬비아 국경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백신을 맞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고 있다. 어른들은 저마다 아이를 데리고 국경 통과를 기다린다. 지난달 13일 콜롬바이 국경도시 쿠쿠타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산탄데르 국제교 앞에서 백신 접종을 위해 줄을 선 베네수엘라 사람들. AFP=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지난달 3일 3세 이상 국민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베네수엘라는 11월 초 백신 접종률은 32%(현재 40%)로 매우 낮은 편이었다. 베네수엘라 접종률이 낮은 이유는 백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제재 때문에 미국과 유럽산 백신을 들여올 수 없다. 들여왔다 하더라도 초저온에서 보관해야 하는 백신 특성상 베네수엘라 의료 인프라로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빈곤율 93%에 달하는 베네수엘라는 국가 경제가 몰락하면서 산업 전반에 전기와 연료 부족에 시달린다. 음압 병동이나 산소 치료시설 등은 거의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네수엘라에선 현재 중국 시노팜, 러시아 스푸트니크 V, 쿠바 소베라나 등의 백신을 접종한다. 백신 부족에 시달리던 베네수엘라 정부는 우방국 쿠바로부터 소베라나 백신 1200만 도스를 받은 뒤 이 백신을 12세 이하 아동에게 접종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베라나는 쿠바 이외의 국가에서 광범위한 임상 시험을 아직 하지 못한 신규 백신으로 아직 WHO 승인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13일 한 베네수엘라 소녀가 콜롬비아 쿠쿠타에서 백신을 맞은 뒤 팔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의료 시스템의 붕괴와 백신 부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가 백신을 구하거나 접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3일 한 베네수엘라 소녀가 콜롬비아 쿠쿠타에서 백신을 맞은 뒤 팔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의료 시스템의 붕괴와 백신 부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가 백신을 구하거나 접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부모들은 아이를 걱정하며 국경을 넘고 있다. 특히 콜롬비아 국경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아이와 함께 콜롬비아로 건너가 백신을 맞는다. 우니아데스 우르비나 베네수엘라 의학회 대변인은 외신 인터뷰에서 “경제 제재와 백신 부족으로 사람들이 백신 접종센터에 여러 번 방문해도 주사를 맞지 못하는 일이 많다”며 “국경 인근 주민들이 다른 나라로 건너가 백신을 맞는 일은 흔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콜롬비아는 의료 체계가 무너진 베네수엘라의 아동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파상풍·디프테리아·간염 백신 등을 접종해주고 있다.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올 10월부터는 베네수엘라 국민 대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의 문도 열었다. 베네수엘라에선 백신 의무화 조처가 내려진 뒤 국경 지대에 하루 수천 명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내 몸에 자유를’ 격렬한 시위 벌이는 오스트리아

“오늘부터 우리나라는 독재국가다.”

오스트리아 자유당 헤르베르트 키클 총재가 지난달 19일 정부의 코로나 방역대책 발표 뒤 한 말이다.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당시 오스트리아 총리는 4번째 록다운 시행을 발표하는 동시에 백신 의무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성인 전체를 대상으로 백신 의무화를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건 오스트리아가 유럽에서 처음이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지난달 19일 기준 백신 접종률은 65.5%였다. 오스트리아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건 1948년 2차 세계대전 뒤 천연두 이후 처음이다.

지난 19일 코로나 사망자를 기리는 촛불을 들고 오스트리아 빈에 모인 1만3000명의 군중들. 오스트리아는 정부의 '백신 의무화' 조치 이후 연일 거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코로나 사망자를 기리는 촛불을 들고 오스트리아 빈에 모인 1만3000명의 군중들. 오스트리아는 정부의 '백신 의무화' 조치 이후 연일 거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부의 ‘백신 의무화’ 발표 이후 대대적인 시위가 불붙었다. 백신 의무화 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자 시위는 더 격렬해졌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4세 이상 국민 중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사람은 3개월마다 벌금 3600유로(약 483만원)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구금하겠다고 했다. 지난 11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는 4만4000명이 몰려 백신 의무화 폐기를 주장했다.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현재 유럽 여러 국가가 백신 의무화를 일부 시행하거나 검토 중이다. 논의를 촉발한 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었다. 그는 1일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1억5000만명이 아직 접종을 받지 않았다”며 “EU 차원의 백신 의무화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백신 의무화를 공론화시킨 것이다.

이 발언 이후 유럽 전역에서 백신 의무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스가 60세 이상 백신을 의무화했고 헝가리가 미접종자에 대해 강제 무급 휴가를 도입하는 등 일부 국가에서만 소극적 조치가 취해지고 있었다. 이후 오스트리아가 백신 의무화를 도입했고, 영국·독일·벨기에서도 논의를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도 최근 국가 전면 봉쇄에 들어가는 등 강력한 조처를 하고 있다.

지난 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코로나 백신 강제 접종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코로나 백신 강제 접종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까지도 백신 접종을 개인 선택에 맡기지 않고 무조건 하게 했던 나라는 매우 드물었다. 10월 이전 성인을 대상으로 백신 의무화를 도입한 것으로 외신을 통해 알려진 나라는 4개국에 불과하다. 독재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과 타지키스탄,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미크로네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다. 이 때문에 유럽 국민에게 백신 의무화는 시민사회 전통이 부족한 후진국에서나 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클리퍼드 스토트 영국 킬 대학 사회심리학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백신 의무화는 ‘우리’와 ‘그들’로 사회를 양극화하는 분리적 정책”이라며 “이는 매우 위험한 정책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소년 백신 강제는 기본권 침해” 반발하는 한국 학부모

국내에서 ‘백신 의무화’에 가장 크게 반발하는 이들은 학부모들이다. 학부모 단체들은 지난 9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14일엔 김부겸 국무총리 공관 앞에서 촛불 시위를 열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소년 방역 패스를 반대하는 청원 글이 연이어 올라온다. 한 글은 게시된 지 열흘 만에 22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기도 했다. 청소년 방역 패스 도입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수험생도 나왔다. 이들은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입장이다.

국내에선 학부모단체를 중심으로 방역 패스 등 '백신 의무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등 60여개 단체가 9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청소년 방역 패스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국내에선 학부모단체를 중심으로 방역 패스 등 '백신 의무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등 60여개 단체가 9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청소년 방역 패스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이들 우려는 백신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도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25일까지 백신 접종과 사망에 대한 인과성을 심사한 건 총 777건이다. 이 중 백신 접종과 사망이 관련 있는 것으로 인정된 건 2건에 그친다. 중증 이상 반응 1089건 중 인과성이 인정된 건 5건이다.

특별방역대책 이후 학부모 단체에 자영업자가 가세하면서 반발의 규모가 국내에서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자영업자비대위는 22일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정부의 무책임이 자영업자에게만 떠넘겨지고 있다”며 “견디다 못한 자영업자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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