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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홍콩·대만까지…中 ‘핵심이익’ 앞에서 작아지는 韓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한-호주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한-호주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제공]

인권과 민주주의를 매개로 대중(對中) 공세를 강화하는 미국과 반발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 외교의 무게추가 중국 측에 기우는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홍콩·대만 문제와 베이징 올림픽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을 둘러싼 미·중 갈등 사안에 대해 한국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넘어 중국 측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다.

최근 미·중 갈등 양상이 표면화한 베이징 겨울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선수단만 참가하고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 및 홍콩 입법회 선거와 관련 한국 정부는 최대한 말을 아끼며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신경 쓰는 모양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의 이유가 된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와 관련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시한다”면서도 “외교적 보이콧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9일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 당선된 신임 의원들이 인사하는 모습. 이 선거에서 친중 진영인 '건제파'가 총 90석 중 89석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9일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 당선된 신임 의원들이 인사하는 모습. 이 선거에서 친중 진영인 '건제파'가 총 90석 중 89석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또 사실상 중국의 사전 검열 하에 진행된 홍콩 입법회 선거에 대해선 “관련 동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지난 21일 정례브리핑)는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선거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는 없었다. 지난달 니카라과 대선에 대해선 문의하기도 전에 먼저 논평을 내고 “자유롭고 공정하며 투명한 방식으로 실시되지 않은 데 대해 깊이 우려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과 확연한 온도 차가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행사 당일 '초청 취소'…'中 눈치 보기'가 낳은 외교 결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지난 16일 정책 컨퍼런스에 대만의 장관급 인사인 탕펑(唐鳳)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을 강연자로 초청했다가 행사 당일 돌연 이를 취소한 것 역시 ‘중국 눈치보기’란 분석이 나온다. 탕펑 정무위원의 연설 취소 사태와 관련 외교부는 21일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걸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탕펑 대만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은 당초 지난 16일 4차산업혁명위 포럼에서 화상 연설을 할 예정이었지만, 4차산업혁명위는 행사 당일 돌연 연설 취소를 통보했다. [사진=코드게이트보안포럼 제공]

탕펑 대만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은 당초 지난 16일 4차산업혁명위 포럼에서 화상 연설을 할 예정이었지만, 4차산업혁명위는 행사 당일 돌연 연설 취소를 통보했다. [사진=코드게이트보안포럼 제공]

다만 대만 외교부는 대만 중앙통신사에 “한국 측이 ‘양안 관계의 각 측면에 대한 고려’를 초청 취소 사유로 밝혔다”고 설명했다. 대만 외교부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은 중국이 탕펑 정무위원의 강연 사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외교 결례를 무릅쓰고 초청 취소를 결정했다는 뜻이 된다.

美 인권·민주주의 앞세워 대중 압박 

베이징 올림픽과 대만·홍콩 문제는 모두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해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사안들이다. 백악관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배경에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침해 문제가 있음을 명시했고, 지난 20일엔 우즈라 제야 국무부 차관을 티베트 문제 특별 조정관에 임명하며 중국이 1950년 무력 점령한 티베트의 인권 문제를 저격했다.

또 친중(親中) 후보가 의석을 싹쓸이한 홍콩 입법회 선거에 대해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 G7 외교장관이 공동 성명을 통해 “홍콩의 이번 선거 시스템은 민주주의 후퇴”라며 “중국이 홍콩의 근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존중할 국제적 의무와 일치하는 행동을 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홍콩 입법회 선거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 책임이 중국에 있음을 명확히 하는 비판 성명이었다.

미중 갈등 사안을 둘러싼 한국의 계속된 침묵과 거리두기는 자칫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가치 외교' 노선에서 한국이 이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진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갈등 사안을 둘러싼 한국의 계속된 침묵과 거리두기는 자칫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가치 외교' 노선에서 한국이 이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진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가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나 인권과 관련해 중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가운데 미국과 선을 긋는 듯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 입장에 더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기조인 ‘가치 외교’ 노선에서 한국이 이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진다.

"속내는 한·중 정상회담 개최, 종전선언 진전"  

최근 미중 갈등 사안을 놓고 한국이 중국 측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주력 과제인 종전선언 및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미중 갈등 사안을 놓고 한국이 중국 측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주력 과제인 종전선언 및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일각에선 이를 종전선언에 대한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적 침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양국의 이견이 상당 부분 해소된 상황에서 종전선언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기 위해선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4일 종전선언과 관련 “건설적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과 대만·홍콩 문제 등에 있어 중국 측 입장을 우선 고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은 결국 임기 말 한·중 정상회담 개최와 종전선언 추진이라는 속내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며 “특히 종전선언과 관련 중국의 호응을 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까지 견인하려는 의도일 수 있는데 이는 무리수에 가까운 전략”이라고 말했다.

물론 오는 23일 개최하는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 중국이 종전선언을 둘러싼 진전된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중 공세가 강화하고 있단 점에서 중국 역시 어느때보다 ‘우군’이 필요한 게 사실이기도 하다.

외교부 당국자는 2017년 6월 이후 4년 6개월 만에 개최되는 이번 한·중 전략대화와 관련 “양국 정부는 고위 인사 교류가 양국관계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런 공감대 위에서 고위급 교류를 포함한 한·중 관계 전반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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