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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도 건드린 금기…"정치인, 전과 필수" 웹툰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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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네이버 웹툰 '쇼미더럭키짱' (오른쪽) 네이버 웹툰 '삼매경' [사진 네이버웹툰]

(왼쪽) 네이버 웹툰 '쇼미더럭키짱' (오른쪽) 네이버 웹툰 '삼매경' [사진 네이버웹툰]

"정치인을 꿈꾼다면 전과는 필수다!! 마치 중국집과 오토바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란 말이다!"

13일 만화가 김성모·박태준이 공동 연재하는 네이버 웹툰 '쇼미더럭키짱!'에 등장한 장면. 댓글창에는 "전과 4범은 돼야 대통령 하지" "공중파 개그맨들이 못하는 정치코미디를 웹툰계에서 선보여주시는 만신(만화의 신) 듀오" 등의 글이 올라왔다. 특정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댓글도 달렸다. 이와 관련해 김성모 작가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에는 전혀 관심 없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해당 웹툰의 댓글엔 여전히 정치적 풍자로 즐기는 내용이 붙고 있다.

네이버 웹툰 '쇼미더럭키짱'의 일부 [사진 네이버웹툰]

네이버 웹툰 '쇼미더럭키짱'의 일부 [사진 네이버웹툰]

2000년대 중반 웹툰이 대중에 막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10~20대의 감성에 맞춘 가벼운 일상물이나 4컷툰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웹툰 시장이 성장하고 장르도 다양화하면서 정치나 사회 현상을 빗대어 풍자하는 내용도 많아지고 있다. 웹툰 독자들의 반응 역시 적극적이다. 정치나 사회 문제로 연결지어 수용하는 분위기다.

네이버 웹툰 '삼매경'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28일 주인공이 "청원에 50만명이 동의해도 그게 국민의 뜻이 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자 청와대를 비꼬는 댓글들이 달렸다. '삼매경'은 행맨이라는 빌런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만들어 50만명 이상 동의할 경우 대상자를 처형하는 내용.  이를 일부 독자들이 청와대의 국민청원제도를 비튼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네이버 웹툰 '삼매경' [사진 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 '삼매경' [사진 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 '삼매경' [사진 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 '삼매경' [사진 네이버 웹툰]

익명을 요구한 만화 관련학과 교수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웹툰에서 정치와 연결될만한 이슈를 건드리는 것은 금기시됐지만 최근 들어 정치나 사회 이슈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웹툰의 주 독자층이자 현 정부에 비판적인 10~20대의 성향도 반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유명 웹툰작가 기안84의 '복학왕'이다.

당초 지방대를 나온 20대 청년 우기명의 좌충우돌을 코믹하게 터치했던 이 작품은 후반부로 가면서 주택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1월 '복학왕'에서 등장인물들이 아파트 청약을 위해 체력장을 펼치면서 아파트 벽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사다리를 오르는 장면을 그렸다. 또 산속에 허름하게 지어진 '임대주택'을 바라보며 "선의로 포장만 돼 있을 뿐 난 싫다. 그런 집은 너희들이나 실컷 살아"라고 외치는 장면도 나왔다. 청약 시스템의 어려움과 현 정부의 주택 정책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됐다. 2월에는 같은 작품에서 집값 하락을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주인공이 “이사 첫날부터 재수 없게 뭔 폭락이냐. 이제 폭등 시작이구만… 다 잘 살길 진심으로 바랐는데, 왜 점점 서로 미워하게 되느냐”며 한탄하는 내용이 담겼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 [사진 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 '복학왕' [사진 네이버 웹툰]

이러한 현상은 웹툰이 대중적 영향력이 커지는 동시에 기존 대중문화의 위축된 풍자 기능이 맞물리면서 일어났다는 해석도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런 역할을 맡았지만,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며 "코미디언들이 과거 정부에서 데인 경험이 있고, 요즘엔 정치 지지층 누리꾼들의 공격이 너무 무서워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종 규제나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웹툰으로 공론의 기능이 넘어가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제 웹툰은 하위 장르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주요 원천이자 데이터 자원이 됐다"며 "그런 성장 속에서 정치·사회 풍자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방송이라는 거대 시스템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많지만, 웹툰은 여전히 개인 작업에 가까우니 심플하다. 풍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웹툰에서의 풍자가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기안84의 '복학왕'은 "웹툰 작가가 뭘 안다고 자꾸 정치 이야기를 하냐"거나 "불편하다"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작가에 대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삼매경'도 독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었다.

네이버 웹툰 '욕망일기'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 '욕망일기'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웹툰]

4월 박태준 작가의 웹툰 '욕망일기'의 '검열' 논란 해프닝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주인공의 "훠훠훠"라는 웃음소리가 'ㅎㅎㅎ'으로 바뀌자 문재인 대통령의 웃음소리를 의미하는 '밈'이 검열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그러나 이에 대해 네이버 측은 "검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고, 웃음소리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일부 댓글을 본 작가가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덕현 평론가는 "과거 몇몇 정치인들이 자신을 풍자하는 대중문화 콘텐트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는데, 이런 시도가 빈번해지면 결국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꺾일 수밖에 없다. 불만이 있더라도 작품에 대한 수정이나 퇴출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웹툰이든 뭐든 대중문화에서 작가가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는 존중되어야 한다"면서도 "다만 독자들도 그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으며, 과도기가 지나면 이런 것들이 서로 자유롭게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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