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전용

"욕심 내려놓고, 딱 숨쉬는 만큼만" 바다가 알려줬어요…『엄마는 해녀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12.22 06:00

업데이트 2022.03.02 15:47

ㆍ 한 줄 평 : 욕심은 ‘물숨’을 부르고, 이 ‘물숨’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엄마는 알 수 있으니까. 아이도 언젠가 알게 될 테니까.

ㆍ 함께 읽어보면 좋을 제주에 관한 그림책
『영등할망, 제주에 오다』 제주의 바람신 영등할망이 제주 곳곳에 봄을 뿌린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으로 눈이 호강하는 그림책.
『설문대할망』 제주를 만든 설문대할망 설화를 그림책으로 만나보자.

ㆍ 추천 연령 : 행복을 그리는 그림 작가 에바 알머슨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은 3세 전후면 누릴 수 있어요.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의 흐름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다면 9세까지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림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 연령은 서사의 구조나 주제 등을 고려하여 제안하는 참고 사항일 뿐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2009년,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쓴 고희영 작가는 중국 베이징에 살고 있었습니다. 칭화대에서 연수를 마치고, 국영방송에 들어가는 걸 목표로 달리고 있었죠. 그는 어느 칼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때는 몰랐다고요. 인생엔 다채로운 불행이 구비되어 있고, 그 불행은 중국 춘절의 폭죽처럼 언제 어디서고 터질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는 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의 나이 고작 마흔이었습니다.

장장 11시간에 걸친 수술과 1년에 걸친 항암 치료 중 떠오른 건 제주였습니다. 꿈 많은 젊은이의 발목을 잡는 것만 같았던 그 바다가요. 그렇게 제주로 가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던 어느 날 그의 눈에 해녀가 들어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해녀들은 매일 무덤이 될 수도 있는 바다에 들어가잖아요.(고희영 작가)

바람이 불면 바다는 잠에서 깨어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나는 하얀 파도가 나를 삼키는 꿈을 꾸다 오줌을 지린 적도 있다. 바다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바람이 불면 바다는 잠에서 깨어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나는 하얀 파도가 나를 삼키는 꿈을 꾸다 오줌을 지린 적도 있다. 바다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바다는 무시무시합니다. 해녀 할머니와 해녀 엄마를 둔 『엄마는 해녀입니다』 속 아이는 하얀 파도의 입이 자신을 꿀꺽, 삼키는 꿈을 꾸다 살짝, 오줌을 지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파도보다 더 무서운 바다에 매일 들어갑니다. 아이는 아직 모릅니다. 그것이 삶의 무게인 것을요.

고희영 작가(감독)가 우도의 해녀들을 7년간 촬영해 만든 다큐멘터리와 취재 기록을 모아 낸 동명의 책 『물숨』에 등장하는 수많은 해녀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제주 땅에서 여자에게 허락되는 일이란 물질뿐이었죠. 더러는 지긋지긋한 바다가 싫어 뭍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도 있습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 의 엄마도 그랬습니다. 할머니처럼 살기 싫었던 엄마는 바다가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뭍으로, 도시로 갔지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남의 머리를 자르고, 헹구고, 말리고, 쓸며 살던 어느 날 갑자기 귀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무시무시한 파도가, 지긋지긋한 바다가 보고 싶어지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엄마를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제주가, 바다가 너무 싫어 뭍으로 나간 엄마는 결국 다시 바다로, 제주로 돌아와 해녀가 된다.

제주가, 바다가 너무 싫어 뭍으로 나간 엄마는 결국 다시 바다로, 제주로 돌아와 해녀가 된다.

엄마가 바다로 돌아온 건 바다가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려운 시절, 그 누구에게도 손 벌릴 수 없던, 가장 가난한 여성들을 받아준 곳은 바다뿐이었습니다. 바다는 철철이 전복이며 소라, 해삼, 천초, 톳 같은 걸 내어주었고, 덕분에 해녀들은 밥을 벌고, 아이들 학비를 벌었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엄마인 건 숨을 참을 수 있는 딱 그 순간까지입니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리면 숨을 먹게 됩니다. 물속에선 숨을 참아야지 먹어선 안 됩니다. 물숨,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욕심은 물숨을 부르고, 물숨은 죽음을 부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죠.

 주먹 두 개를 합한 것만큼 커다른 전복을 따려다 물숨을 먹은 엄마를 끌어올린 할머니는 말한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다"고.

주먹 두 개를 합한 것만큼 커다른 전복을 따려다 물숨을 먹은 엄마를 끌어올린 할머니는 말한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다"고.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암에 걸린 고희영 작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나만 폐차가 되어 갓길에 밀려난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주로 돌아와 해녀들을 촬영하며 깨닫죠. 지금껏 물숨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요. 욕심을 내려놓고 물숨을 먹기 전에 수면 위로 올라와 ‘호오이 호오이’ 하고 숨비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요.

지난해 큰 수술을 받고 아파할 때 책장에 꽂혀 있던 『물숨』을 다시 읽었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달리다 저보다 먼저 아팠던 친구가 빌려준 책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주인에게 가지 못하고 제 책장에 꽂혀 있다 제가 주저앉았을 때 제 눈에 들어와 주었던 겁니다.

며칠 전 어린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빌려왔습니다. 8살 아이는 물숨의 의미를 아직 모를 겁니다. 무서운 바다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모르듯이요. 하지만 엄마가 뭍에서 도망쳐 바다로 돌아오고 나서야 물숨의 의미를 깨달았듯, 아이의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 그때 8살 무렵 엄마가 담담하게 읽어주던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떠올릴 수 있길 바라봅니다.

속을 다 파낸 호박처럼 가벼운 테왁, 텅 빈 그것이 해녀들의 생명줄이다. 물숨을 먹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하고, 바다에선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에만 생명을 의지할 수 있다.

속을 다 파낸 호박처럼 가벼운 테왁, 텅 빈 그것이 해녀들의 생명줄이다. 물숨을 먹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하고, 바다에선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에만 생명을 의지할 수 있다.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