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덮친 곳에 '3조 복권' 광기…스페인섬 휩쓴 숫자 '19921'

중앙일보

입력 2021.12.22 05:00

업데이트 2021.12.22 08:59

최근 몇달 간 연쇄 화산 폭발의 불운을 겪은 스페인의 한 섬에서 ‘행운의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의 라 팔마 섬 주민들의 이야기다.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의 라팔마섬 쿰브레 비에하 국립공원 내 화산이 지난 9월 19일(현지시간) 오후 3시15분쯤 폭발했다. 화산재가 섞인 시뻘건 불기둥은 300~350m까지 솟았고, 거대한 강줄기를 이룬 용암이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려 주택과 도로를 덮쳤다. [로이터=연합뉴스]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의 라팔마섬 쿰브레 비에하 국립공원 내 화산이 지난 9월 19일(현지시간) 오후 3시15분쯤 폭발했다. 화산재가 섞인 시뻘건 불기둥은 300~350m까지 솟았고, 거대한 강줄기를 이룬 용암이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려 주택과 도로를 덮쳤다. [로이터=연합뉴스]

라 팔마 섬에서는 올해 9월 19일부터 화산이 폭발해 무려 세 달간 활동을 지속했다. 이달 13일에서야 화산 활동은 멈췄지만, 용암과 화산재가 섬을 뒤덮어 3000여 채에 가까운 주택이 파괴되고 주민들의 생계 기반인 바나나 농장은 황폐해졌다. 주민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텔레그래프는 “(비극적)운명을 되돌리기를 원하는 라 팔마 섬 주민들은 크리스마스 복권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라 팔마 섬에서 복권 가게를 운영하는 알폰소 카브레라는 “화산 폭발 이후 매출이 거의 3배 늘었다”며 “라 팔마 섬에서 직접 복권을 구매하기 위해 오는 관광객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르자 무니즈 스페인 복권판매업 협회장은 “불행이 있는 곳에 행운이 깃든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숫자 조합이 있다고 한다. 바로 ‘19921’이다. 이번 화산 폭발의 첫날(2021년 9월 19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숫자 조합을 가진 복권은 ‘라 팔마 복권’이라 불리며 일찌감치 판매가 매진됐다. 암시장에서 거래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스페인 비고의 한 복권 가게 주인이 스페인 복권 엘 고르도 1등 당첨자를 축하하고 있다. 72897번은 작년 엘 고르도 1등 당첨자의 번호다. 1등 당첨금은 400만 유로(약 53억원)이다. [AFP=연합뉴스]

스페인 비고의 한 복권 가게 주인이 스페인 복권 엘 고르도 1등 당첨자를 축하하고 있다. 72897번은 작년 엘 고르도 1등 당첨자의 번호다. 1등 당첨금은 400만 유로(약 53억원)이다. [AFP=연합뉴스]

복권 가게 주인 카브레라는 “나도 20유로짜리 19921번 복권을 4장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 중 3개는 단골에게 팔고 나머지 1장은 자신이 가졌다. 그는 “만약 19921번이 1등 번호로 뽑힌다면 당첨금을 집과 재산을 잃은 라 팔마 섬의 주민들에게 모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열광하는 이 복권은 ‘엘 고르도’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등 상금은 400만 유로(약 53억 8000만원), 상금 총액만 24억 유로(약 3조 2000억원)에 달한다. 매년 12월 22일 복권 추첨이 이뤄져 스페인에선 엘 고르도 당첨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여기기도 한다. 스페인 정부가 재정 충당을 위해 1812년 도입한 오랜 전통의 복권이다.

엘 고르도 복권에는 ‘00000~99999’의 다섯 자리 숫자 조합이 부여된다. 단 하나의 번호가 1등으로 당첨되지만, 같은 번호를 170장으로 묶은 ‘세리에’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세리에는 장당 200유로(약 27만원)로 꽤 비싸다. 10명이 20유로(약 2만 7000원)씩 모아 세리에와 같은 권리를 갖는 분할 구매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 방식이 좀 더 대중적이다. 이 경우 10명이 같은 번호로 당첨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마을에서 말 그대로 ‘대박’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26일, 스페인 라 팔마 섬의 주민이 화산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10월 26일, 스페인 라 팔마 섬의 주민이 화산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스페인 정부는 라 팔마 섬을 향한 지원책을 내놨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재난으로 피해를 본 라 팔마 섬 주민을 위해 2700만 유로(약 363억) 규모의 ‘라 팔마 부활’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스페인 각지에서 라 팔마 이재민을 향한 모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달 20일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니폼 경매 수익금을 기부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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