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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객 골퍼' 박주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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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점프수트를 입고 펜싱 자세를 취한 박주영. 상하의가 붙은 점프수트는 박주영 때문에 올해 골프 패션계에서 히트상품이 됐다. 김경빈 기자

점프수트를 입고 펜싱 자세를 취한 박주영. 상하의가 붙은 점프수트는 박주영 때문에 올해 골프 패션계에서 히트상품이 됐다. 김경빈 기자

한국여자프로골프 (KLPGA) 투어 선수 중 100m 달리기를 한다면 박주영(31)이 가장 빠를 것이다. 취미로 잠깐 했는데도 초등학교 때 멀리 뛰기 경기도 대표를 했다. 박주영은 “골프장 밖에 나가 다른 운동하면 KLPGA 선수 중 내가 톱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실제로 그런 것 같다.

그가 체력 훈련을 하는 경기도 용인의 GPL(골프 퍼포먼스 랩)의 김성환 센터장은 “운동 능력이 최고이고 의지도 강하기 때문에 어떤 스포츠를 했더라도 최고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평했다. 박주영은 “순발력과 동체시력 등도 좋기 때문에 축구 같은 운동을 잘 했을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스포츠 즐기는 운동 천재

그랬다면 여자 축구 쪽에도 박주영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야생마 같은 박주영이 골프를 한 건 언니 때문이다. 언니 박희영은 아마추어이던 2004년 하이트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KLPGA 신인왕을 한 후 LPGA 투어로 진출했다.

박주영은 중학교 때 처음 7번 아이언 풀 스윙을 했을 때 150m가 날아갔다고 한다. 또래 남자 아이들과 차이가 없었다.

박주영. 김경빈 기자

박주영. 김경빈 기자

주니어 시절엔 드라이버샷이 너무 멀리 나가 OB 때문에 고생도 했다. 아직도 박주영은 “드라이버는 공을 살려 놓는 게 목적”이라며 살살 친다. 그런데도 올해 KLPGA 투어 드라이브샷 평균 거리 7위(246야드)다.

박주영의 장점은 아이언샷이다. 타이거 우즈처럼 그는 9가지 탄도를 구사한다. 그는 “다양한 샷메이킹이 필요한 어려운 코스를 좋아한다. 잭 니클라우스나 블루 헤런이나 블랙스톤 같은 난코스에 가면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반면 평이한 코스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린 위 퍼트 싸움으로 결정되는 코스는 재미가 없다는 거다.

힘과 기술이 있다고 골프가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골프는 역도도 아니고 육상 단거리도 아니다. 시속 150㎞로 날아오는 공을 치는 것도 힘들지만 죽은 공을 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총알처럼 날아오는 공을 칠 땐 생각할 시간이 없지만, 멈춰 있는 공을 칠 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빠른 공을 칠 때보다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머리 속 생각을 다스리는 게 골프의 핵심이다.

선수는 위험한 빙판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두려움 있다

박주영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빙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을 혼자서 극복해야 한다. 또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데 타이거 우즈라도 새로운 게임, 새로운 시즌은 이전 걸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선수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적지 않다”고 했다.

박주영 드라이브샷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22일 부산 기장군 LPGA 인터내셔널 부산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박주영이 드라이브샷을 하고 있다. 2021.10.22   c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주영 드라이브샷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22일 부산 기장군 LPGA 인터내셔널 부산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박주영이 드라이브샷을 하고 있다. 2021.10.22 c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주영은 다른 스포츠도 좋아한다. 그는 “모든 운동의 기본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스포츠는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테니스, 유도, 서핑이나 웨이크보드 등을 해봤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펜싱을 한다. 그는 “소질이 있는 것 같다. 펜싱장에 놀러갔다가 스파링을 해봤는데 한 번 본 동작대로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더라. 골프는 주로 가만히 있는데 펜싱은 계속 움직이고 짧은 시간에 결과가 나오니 재미도 있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펜싱을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펜싱의 장점 중 하나는 마스크라고 박주영은 생각한다. 그는 “얼굴을 가린 채 칼을 들고 있으면 어떤 사람이 흥분 안 할 수 있겠는가. 화가 나면 소리 지르고 욕도 하고 싶은데 골프에선 입 뻥끗도 안 된다.

클럽 부러뜨리고 집에 가고 싶을 때 많아

골프 클럽을 부러뜨리고 싶을 때도 많다. 옷을 찢고 집에 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상상만 한다. 내가 멍 때리는 표정으로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라고 했다. 그의 '멍 때림'은 일종의 마스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박주영은 LPGA 투어 대회 포함 300 경기 가까이 뛰는 동안 우승이 없다. 투어 프로가 된지 12년째인 올해 가장 주목받는다. 2등을 두 번 하는 등 성적도 좋았지만 패션도 한 몫 했다. 그는 “무난하게 입는 스타일이었는데 점프수트를 입고 빵 떴다. 그 다음에 조금 더, 더 하다 보니 특이한 옷을 입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박주영. 김경빈 기자

박주영. 김경빈 기자

그는 원래 내성적이다. 박주영은 “주목 받기 싫어하고 낯도 가린다. 집에서 하루 종일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박주영이 왜 스타일을 바꿨을까. 그는 “의류 스폰서의 옷이 좀 튄다. 그런 김에 골프의 단조로운 패션을 변화시켜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또 “이전과 완전히 다른 옷을 입으면 나의 골프도 달라질 거라는 기대도 했다”고 밝혔다.

튀는 옷이 나의 골프를 바꿀 것 

아직 부담감이 많다. 경기 날 아침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도 하고, 골프장에 도착하면 옷 때문에 주목받을까봐 차에서 내리기가 싫다. 그러나 코스에 들어가서는 다 잊는다.

박주영은 “‘옷을 저렇게 입어서 우승 못한다’는 댓글 등을 들었는데, 사실 옷 때문에 성적이 좋아진 부분도 많다”고 했다.

옷이 바뀌면 행동도 달라진다. 얌전한 옷을 입으면 조용히 있고, 튀는 옷을 입으면 활동적이 된다. 중요한 순간 그의 과감한 패션이 그의 마스크가 되고 자신감을 불어 넣을 지도 모른다.

용인=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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