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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150조 보물선”…그들은 왜 ‘~카더라’를 믿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20면

2018년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보물선’ 얘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보물선에 150조원에 달하는 값어치의 금화와 금괴 5000상자가 실려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보물선의 정체는 6200t급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러시아 전쟁영웅의 이름을 딴 배는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인근 70㎞ 해상에서 일본 함대에 포위됐다. 당시 함장은 배를 일본에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돈스코 이호. 150조원에 달하는 금화·금괴와 함께 가라 앉았다고 알려지며 관심을 모았다. [사진 신일그룹]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돈스코 이호. 150조원에 달하는 금화·금괴와 함께 가라 앉았다고 알려지며 관심을 모았다. [사진 신일그룹]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으로 불리는 이유는 당시 러시아 발트함대가 상당량의 금화·금괴·골동품을 배에 싣고 다닌 사실이 알려져서다. 함대는 연료와 식수·보급품 등을 중간중간 항구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원거리 항해를 했다. 여기에 장병들에게 임금도 지급해야 했기에 배에 금화·금괴 등을 실었다고 한다.

돈스코이호는 2018년 7월 갑자기 세간의 화제가 됐다. 신일그룹이라는 업체가 돈스코이호을 최초로 발견했고, 금괴를 배와 함께 인양해 그 수익금을 투자자들과 나누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 인양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명목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투자 방식은 ‘암호화폐’였다. 신일그룹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에 투자하면 향후 돈스코이호를 인양한 뒤 수십 배 이상 수익을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투자자들은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코인 1개당 발행 예정 가격은 200원이지만 거래소에 상장되면 가격이 1만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업체 측 말을 믿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한 편의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돈스코이호 침몰 추정 위치. [사진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침몰 추정 위치. [사진 신일그룹]

가장 큰 문제는 발굴 보증금 문제였다. 바다에 매장된 물건의 발굴을 승인받기 위해선 관련 서류와 함께 매장물 추정가액의 10%에 해당하는 발굴 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신일그룹이 15조원을 낼 능력이 과연 있느냐는 의혹이다. 2017년 신일그룹 감사보고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매출액은 약 925억원, 영업이익은 약 17억원, 유동자산은 약 324억원으로 보증금 15조원을 지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기에 “돈스코이호의 가치가 근거 없이 산출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자 업체 측이 나섰다. 신일그룹은 기자회견을 열어 금괴 가치가 10조원 수준이라고 낮추는 등 한 발 물러섰고, 정부에 제출한 신청 서류에는 추정 가치를 12억원이라고 적었다.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2018년 8월 신일그룹을 비롯해 총 8곳을 압수수색하고 관계자들을 입건했다. 수사에서 밝혀진 이들의 사기 금액은 115억8000만원에 달했다.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발표한 지 3년 6개월가량이 지났지만, 여전히 ‘보물선’이 맞는지조차 불분명한 이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사업을 구상하고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던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신일그룹 전 부회장 김모씨는 지난 8월 징역 5년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전 대표이사 허모씨는 징역 4년, 신일그룹 전 대표이사 류모씨는 징역 2년, 탐사 좌표를 제공한 진모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신일그룹 전 회장 류모(46)씨는 수배 상태로, 여전히 해외 도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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