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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20일 제한'에 "강제 격리해제, 기계처럼 환자 보라는 거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로나19 확진자와 중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15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경기도 오산시 한국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확진자와 중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15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경기도 오산시 한국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우리 병원 중환자 병상이 59개인데 이 중 20병상을 코로나19 중환자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가 18명, 에크모를 달고 있는 환자가 2명이다. 과연 격리 해제 때까지 상태가 호전될지 모르겠다.”

정부가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운영 효율화를 위해 격리해제 기간을 ‘증상 발현 후 20일’로 못 박으면서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애린 순천향대 부천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당장 내일 자로 전원명령이 떨어진 환자 3명을 걱정했다. 정부의 행정명령대로라면 내일부터 입원 제한 기간인 20일이 경과하는 중환자가 여럿 나오는데 이들을 치료할 병상이 여의치 않아서다.

백 교수는 “비코로나 중환자 병상으로 보내야 함에도 병상이 부족해 보낼 수가 없고, 다른 병원 전원 시 안전 문제 및 전원 후 후속 중환자 치료 마무리가 잘 될지 의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22일 기준 격리 해제되는 환자가 10여명 있는데 전원할 데가 없어 당분간 병원에서 끌어안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코로나 중환자 20일 되면 병상 비워야”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사망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사망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부가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상 효율화 대책을 시행한 건 지난 17일부터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코로나19 중환자의 경우 증상 발현 20일 후 격리 해제하고 추가 진료가 필요하면 비코로나 환자용 병실로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감염력이 떨어진 환자를 일반 병실에 옮겨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회전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정부는 앞으로 병실 보상에 차등을 두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 병상 보상 시 재원 일수에 관계없이 병상 단가의 10배를 보상해왔지만, 앞으로는 입원일로부터 5일까지는 14배, 6~10일까지는 10배, 11~19일부터는 6배, 20일을 넘어 격리 해제될 경우 보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20일 이후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비우라는 강제 조치로 볼 수 있다.

“의료진 자율적 판단 막는 조치” 비판

6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평택 박애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한 환자의 병상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평택 박애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한 환자의 병상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현장에선 “병상 효율화는 필요하지만 정부가 의료진의 자율적 판단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사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어떤 사람은 20일 넘게 치료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대책도 없이 손실보상을 빌미로 내보내라고 압박하면 결국 기계식 진료를 하라는 것”이라며 “국민 건강에 상당한 위협이 될뿐더러 의료인으로서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일'이라는 기간을 정해놓은 것도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강한 성인 기준으로는 증상 발현 후 10일 정도가 지나면 전염력이 없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면역저하자나 고령층의 경우에는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오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일 이후 격리해제된 환자를 일반 중환자실이나 입원실로 내려보냈을 때 감염이 일어날 경우 정부가 책임지겠냐”며 “비코로나 환자와 보호자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백문성 중앙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격리 해제된 코로나19 환자를 받기에는 현재 일반 중환자실도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코로나19 중증 병상 12개와 비코로나 환자용 중환자실(내과 기준) 15개가 모두 풀로 차 있다”라며 “일반 병실에서 심정지가 와도 중환자실이 다 차 있다 보니까 여기로 오지 못한 상태에서 처치 받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2주 전부터 이런 비정상적인 사례가 이어졌다”며 “다른 대체안이 없는데 코로나19 중환자를 격리 해제하라는 건 환자를 버리라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중환자의학회 “20일 격리해제 상한조치 연기해야”

21일 오전 서울역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21일 오전 서울역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이 같은 문제가 이어지자 대한중환자의학회는 20일 성명서를 통해 “코로나19 중환자 격리해제 20일 상한 조치를 연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훈 대한중환자의학회 홍보이사(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도, 병원 지도부도 결국 환자를 내보내라고 할 텐데 보낼 데가 없는 상황이 온 것”이라며 “출구전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충분한 설명도 하지 않고 행정명령을 발표해버려 결국 모든 비난과 책임은 현장의 의료진이 떠맡게 됐다”고 말했다.

서지영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대한중환자의학회 차기 회장)도 “비코로나 환자들이 쓰는 공간에 격리 해제된 환자들이 올 경우 현장에서 혼란이 올 것은 자명한 일”이라며 “그런 것들을 정부가 나서서 같이 소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의 의료진들에게 보다 선택권을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게 아니라 감염학회나 호흡기학회, 중환자의학회 등 각 학회의 의견을 청취하고 사전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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