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새소리…도심 속에서 느끼는 자연, '고독' 위험 확 줄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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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서 시민들이 가을 정취를 즐기며 걷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서 시민들이 가을 정취를 즐기며 걷고 있다. 연합뉴스

삭막한 도심에서 나무나 식물을 보거나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힐링'할 수 있을까. 도시 내에서 자연과의 접촉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고독감을 겪을 위험이 적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시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 도심 녹지나 공원 등을 늘려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20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이러한 내용의 논문을 온라인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근호에 게재했다.

英 연구팀, 전 세계 2175명 분석한 논문 공개 #도시 속 자연 접촉한 사람, 외로움 28% 적어 #"공원과 녹지 등은 정신건강 문제 예방·치유"

사망 위험을 최대 45% 높이는 고독감은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로 꼽힌다. 대기 오염과 비만, 알코올 중독보다 위험한 편이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2018년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도 올 2월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새로 설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고립은 외로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미국 뉴욕시 빌딩 숲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는 센트럴 파크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욕시 빌딩 숲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는 센트럴 파크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연구팀은 도시 거주자의 외로움과 주변 환경이 어떤 관계인지 평가하기 위해 자연 접촉 여부, 인구 밀도 등을 따져봤다. 이번 연구는 2018~2020년 소셜 미디어로 모집한 전 세계 2175명에게 연구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하루 3번씩 무작위로 설문한 응답(2주간 조사)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조사 대상자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앱에서 모인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지금' 식물과 나무, 하늘, 물, 새 등을 보거나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평소 자연과 접촉하는 것으로 분류했다. 연령ㆍ인종ㆍ성별 등의 변수를 보정했더니 이러한 자연 접촉 경험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외로움과 반비례 관계였다. 자연을 접하고 교감할 수 있는 도시 거주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고독 위험이 28%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자연이 주는 일종의 상호 작용이 외로움을 줄여주는 효과를 보이는 셈이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시민들이 포근한 날씨를 즐기며 산책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시민들이 포근한 날씨를 즐기며 산책하고 있다. 뉴스1

연구팀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선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자연과의 접촉을 늘릴 수 있는 구체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지 공간 강화와 보행성 개선 등이 정신 건강상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만 삼림 산책을 통해 연간 최소 1억8500만 파운드(약 2900억원)의 정신 건강 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도시 중심으로 굴러가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 국내 의료계 역시 도심 속 자연환경을 늘려야 하는 정신 건강상 필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녹지 공간 등이 자연스레 타인을 만나고 고독감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소통 공간이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시 내 자연환경은 정신 건강 문제를 예방하는 한편 외로움 등을 줄여줄 수 있는 치유의 측면이 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없었다면 그만한 규모의 정신과 병원을 지었어야 할 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라면서 "특히 코로나 시국엔 누군가를 만나기 어려운만큼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연 속 활동을 늘리는 걸 마음건강지침에서도 권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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