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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건물 외벽에 설치된 계단 용도 알고 보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53)

며칠 전 일본 오사카의 작은 건물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영상을 보면 한 층 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고 불이 난 4층 이외의 층으로 불이 번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인명피해가 이렇게 큰 이유는 건물에 계단이 하나밖에 없는 데다 계단 근처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피난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만약 계단이 두 개라면 한쪽에 문제가 생길 경우 또 하나의 계단으로 대피가 가능하겠지만, 계단이 하나인 경우 그 계단에 문제가 생가면 대피가 불가능하다.

큰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법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기 보단, 미리 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진 pxhere]

큰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법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기 보단, 미리 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진 pxhere]

건축법에는 안전에 관한 조항이 있고 그중에 피난계단에 관한 규정이 있다. 우선 피난계단은 피난층이나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이어야 한다. 직통계단이란 대피자가 계단으로 피난층이나 지상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느 층에서든 특정 공간을 거치지 않고 온전히 계단만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용도와 규모에 따라 두 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물 용도별로 한 층 바닥 면적이 200㎡(약 60평)에서 400㎡(약 120평)를 넘으면 이에 해당한다. 가장 흔한 용도인 근생(근린생활시설)건물의 경우 3층 이상으로서 그 거실바닥 면적이 400㎡를 넘으면 두 개의 직통계단을 설치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규모가 작은 근생 건물은 한 층 면적이 이에 못 미치기 때문에 하나의 계단만을 설치한다. 이 규정에 조금 초과하는 근생 건물은 인허가 과정에서 한 층 규모를 400㎡ 미만으로 줄여 계단을 하나만 설치하기도 한다. 소규모 건물에서 계단을 두 개 설치하면 공사비가 오르기도 하고 비상계단은 평소에 빈 공간으로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간이 평소에는 늘 비어있다고 해도 비상시에는 그 어떤 공간보다 중요한 공간이 된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규모를 축소해 계단을 하나만 설치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그렇다고 규모가 작은 건물에도 공간효율을 무시하고 피난계단을 두 개씩 설치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

건물 용도별 기준 면적을 초과하는 경우 법적으로 두 개의 피난 계단을 두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두 계단이 인접해 있어 피난 계단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 가장 좋은 배치는 평면의 대각선 위치에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다. 피난 계단이 제 위치에 설치돼 있다고 해도 비상계단에 물건을 쌓아두어 통행이 어렵거나 비상구를 잠가버려 비상시 역할을 못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비상구는 피난방향으로 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법 규정 이전에 상식적인 범주에 든다. 그러나 문의 개폐 방향이 거꾸로 되어 있어 가끔 다중이용시설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 안전 불감증이 더 위험하다고 하겠다.

직통계단이란 대피자가 계단으로 피난 층이나 지상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느 층에서든 특정 공간을 거치지 않고 온전히 계단만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설치물이다. [사진 pxhere]

직통계단이란 대피자가 계단으로 피난 층이나 지상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느 층에서든 특정 공간을 거치지 않고 온전히 계단만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설치물이다. [사진 pxhere]

주택은 규모가 작아 안전이나 피난의 규정에 별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안전과 피난에 대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최근에 ‘소방관 진입창’을 설치하는 규정이 생겼다. 대형 시설에서 창이 작거나 깨기 힘들어 소방관이 진입하지 못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후 생긴 법인데, 2층 이상의 신축 주택도 해당한다. 규정을 요약하자면 소방차가 접근하기 쉬운 도로나 공터에 면한 창문 중의 하나를 깨기 쉬운 유리를 사용해 소방관이 진입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라는 것이다. 창문 가운데에 역삼각형 붉은색 스티커를 붙이고 한쪽 모서리에 망치 타격지점도 표시하게 돼 있다. 주택은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넓은 도로나 공터에 면하지 않은 것도 많다. 특히 북측 벽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창을 작게 디자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소방관 진입창을 강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창문의 크기도 문제지만 보안을 목적으로 철망이나 쇠 파이프로 창을 다 막아 버린 집도 많다. 이런 경우 비상시 소방관의 진입도 불가능하지만 거주자의 탈출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큰 사건이 터지고 나면 법 규정을 만드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위험을 보는 눈이 안전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건축에서 안전에 대한 규정은 조금 과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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