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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침 밥상 차려준 남편이 별로 고맙지 않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53)


토요일 아침, “여보 밥 먹어!” 아침 식탁 냉장고에 있던 각종 과일과 함께 파프리카와 양상추, 삶은 달걀을 곁들인 샐러드와 청양고추를 넣고 끓인 콩나물국, 어제 무쳐 둔 시금치나물이 올라와 있다. 어쩌다 차려진 밥상에 대꾸를 안 하면 “아! 밥 차려놓으면 빨리 나와야지…. 차린 사람은 생각도 안 해” 하고 한 소리를 한다.” 식탁에 앉는 동시에 전기밥솥 뚜껑을 열어 각자의 밥과 수저가 준비된다. “오늘은 어떤 샐러드 소스를 원합니까? 지난번에 산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 “응. 그것이 좋겠네.” “역시 시금치는 포항초가 맛있어 그치? 맛있지?” “그렇네. 그러니까 물건을 살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니까 실수가 없잖아.” “시금치는 밑둥이 빨간색이 많은 키가 작은 한 뼘쯤 되는 걸 사야 달아.” “그리고 밥솥에 밥을 오래 두면 밥맛이 없으니 조금씩만 해서 그때그때 더 맛있는 밥을 먹자고.”

상황에 따라 남편이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 혹은 아내가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해주는’ 생색내기가 아닌 ‘기꺼운’ 돌봄이 돼야 한다. 평등하게 서로를 돌보는 연습이다. [사진 pxhere]

상황에 따라 남편이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 혹은 아내가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해주는’ 생색내기가 아닌 ‘기꺼운’ 돌봄이 돼야 한다. 평등하게 서로를 돌보는 연습이다. [사진 pxhere]

이 대화는 누구와 누구의 대화로 들리나요? 대화만을 들어 보면 식탁을 준비한 아내와 남편이 식사하면서 나누는 대화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는 남편이 차린 밥상 앞에서 나와 남편의 대화 내용이다. 아마 누군가가 들으면 “아주 훌륭하신 남편과 사는군요”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맞다. 고맙고 훌륭하다. 아내가 바쁠 때 가사노동을 같이 짊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때로는 정성스러운 밥상의 고마움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아내가 바쁘니 당연하고 기꺼이 음식을 준비한 게 아니라 “이 일은 당연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이지만 내가 선심을 베풀어 밥상을 차려 줄게”로 가족 서로 간의 돌봄이 변질될 때다.

30여 년 전 즈음 결혼하고 첫 시댁 가족 모임에 대한 기대는 재미있게 웃고 떠드는 화기애애함 그것이었다. 그러나 첫 가족 행사는 뭔지 모를 두려움과 분노와 무시였다. ‘이 빡침은 뭐지?’(그 빡침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두려움은 앞으로 계속 순탄치 않을 결혼생활에 대한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가족 모임 한 번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처음 메뉴 선정과 장보기, 나름 수백 가지의 계산과 심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거두절미하고 일단 음식 준비만을 얘기해 보자면 나는 심혈을 기울여 정성스러운 음식을 마련한다. 참석이 예상되는 사람들이 다 모이고 호스트는 ‘짠’ 하고 가족들이 좋아할 풍성한 식탁을 자랑스럽게 펼쳐 보인다. 그런데 온 식구가 밥상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자리가 비좁아지면 당연히 누군가는 앉을 자리가 없다. 누군가는 한 사람이 밥을 먹을 동안 기다린다. 그게 누구일까? 식사 중 누군가의 밥이 더 필요하거나 국이 부족할 때, 아니면 수저가 필요하거나 반찬이 너무 멀어 한 그릇 더 가져다 놓아야 할 때, 혹은 빈 접시가 필요하거나 찌개가 너무 식었을 때, 심지어 어른이 식사를 마치면 물을 가져다 드려야 할 때 누구를 쳐다볼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부탁했고,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내 가족이니까 내가 할 수도 있지…. 그러다 세 번이 넘어가면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 관계는 뭔가? 합법적 혼인관계를 빙자해 남편 가족을 돌보는 돌봄 노동자를 찾은 것인가? 그리고 그런 가족이 모이는 행사는 1년에 몇 차례를 넘어 몇십 년간 지속된다. 그러다 보니 항상 의무만을 강요당하는 가장 낮은 서열의 돌봄 노동자는 가족 모임 자체를 피하고 싶어진다.

“나도 갈비찜이 따뜻할 때, 생선구이에 살이 온전히 붙어 있을 때, 찌개나 국이 따뜻할 때 심부름하지 않고 편안히 먹을 권리가 있거든요.” 당당하게 용기를 내 내 주장을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혼 초 그런 역사를 거스르는 반역적인 말은 상상 속에서만 있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시간을 견디다가 “우리 이제 밖에서 식사하죠?”라고 용기를 내 말할 수 있었다. 이 한마디 하기가 왜 이리 힘들었는지….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이 모이는 식사 자리가 훈훈하고 안락하며 성공적인 가족 모임이 되기 위해 나는 착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포장했어야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돌봄의 사회화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돌봄은 싼값의 여성 노동으로 메워지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인권문제다. [사진 pxhere]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돌봄의 사회화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돌봄은 싼값의 여성 노동으로 메워지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인권문제다. [사진 pxhere]

두 명의 아들이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매일같이 스펙터클하게 혼자 고군분투했던 것 같은데, TV에서 보면 아빠의 육아는 예능으로 새로운 볼거리 소재가 된다. 이것을 보면 ‘아직 아빠의 육아는 낯선 볼거리 영역인가 보다’라고 짐작하게 한다. 2020년 남녀고용평등법 시행령 개정으로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됐고, 육아휴직 급여도 모두에게 지급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부부 공동육아에 대한 인식은 더 높아졌다. 실제로 남성 직장인의 70%는 육아휴직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성 육아휴직 의향에 비해 남성 직장인이 실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훨씬 떨어진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전체 휴직자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통계는 참여 의지는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남성 직장인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더구나 가사노동 시간을 보면 더욱 한숨이 나온다. 2019년 기준으로 맞벌이 부부의 여성 가사노동 시간을 살펴보면 여성이 2시간 1분, 남성은 38분으로 맞벌이 여성은 집안일에 남성보다 3.7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2020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 30년 전 내가 경험한 독박 가족 돌봄은 현재도 진행형이지 않은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돌봄의 사회화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가사 돌봄, 나아가 시장의 돌봄까지 싼값의 여성 노동으로 메워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고 병들어 간다. 그렇기에 누구를 돌보기도 하고, 당연히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전과 달리 ‘엄마니까, 아내니까, 가족이니까, 친하니까’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일방적 돌봄의 굴레를 한 사람에게 지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심각한 인권 문제다.

이제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서로를 돌보는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시작이 나와 주변이고, 가족관계에서도 ‘당연’을 넘어 평등한 가족 돌봄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이 필요한 관계가 아닌, 각자는 자신을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남편이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 혹은 아내가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해주는’ 생색내기가 아닌 ‘기꺼운’ 돌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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