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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미국서 '한국 핵무장론' 번지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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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한 지난 10월 7일자 미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문. 다트머스대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교수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따른 한·미 동맹 약화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의 핵개발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지 홈페이지 캡쳐]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한 지난 10월 7일자 미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문. 다트머스대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교수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따른 한·미 동맹 약화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의 핵개발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지 홈페이지 캡쳐]

북한 비핵화가 꼬이면서 한국의 핵무장을 원하는 국내 여론이 7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해외의 시각은 어떨까. 2016년 가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NFU)' 원칙 선언을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있다. NFU란 "핵 공격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거나 이에 대해 보복할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원칙이다. 적국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공격하더라도 재래식 무기만 쓸 경우 핵으로 반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러자 외교·안보 참모 대부분이 그를 만류했다. 동맹국이 미국의 핵우산을 믿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애슈턴 카터 국방부 장관은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가 거세자 오바마는 결국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접는다.

바이든의 '핵 선제 불사용' 추진에 #핵 개발이 논리적 대응이란 인식도 #종전선언 거두고 대책 강구해야

 이런 NFU가 5년 만에 무덤에서 되살아났다. 오바마 정권 때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올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NFU를 재추진한 것이다. 이로써 다음 달 나올 예정인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에 이 원칙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런 분위기 탓에 한국의 핵무장을 예상하는 미국 내 전문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 외교·안보전문지 포린어페어스가 지난 14일 공개한 전문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0명 중 7명이 10년 내 핵무장 가능성이 큰 나라로 한국을 지목, 이란(20명) ·일본(8명)에 이어 세 번째로 꼽혔다. 이뿐 아니라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독려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온다. 지난 10월 초 미 다트머스대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두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따른 한·미 동맹 약화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카터 전 장관을 비롯, 많은 미 전문가 입에서 한국의 핵무장 이야기가 나오는 건 왜일까. 이는 북한 비핵화가 멀어진 상황에서 미국의 NFU 추진 등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핵무장으로 귀결될 걸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NFU가 원칙으로 굳어지면 동맹국에 대한 핵우산 공약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영국·프랑스·일본·호주 등 미 동맹국들이 NFU를 막기 위해 맹렬히 로비한 것도 이 탓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뛴 흔적은 안 보인다.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 대한 위협이 커질 텐데 말이다. 오죽하면  미 동아시아 전문가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이 "(한국은) 90%의 외교적 에너지를 종전선언에 회의적인 바이든 정부를 설득하는 데 쓴다"며 "한국은 핵 억지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겠는가(중앙일보 12월 17일자).
 이렇듯 바다 건너에선 한국의 핵무장론이 고개를 드는데도 국내에선 별다른 움직임도, 목소리도 없다는 사실은 유감이다. 남북 교류에 목을 맨 현 정부가 핵무장 논의를 본격화할 리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대선후보들이라면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검토해 볼 만하지 않은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핵확산금지조약(NPT) 10조에는 “모든 가입국은 이 조약과 관련된 특별한 사태가 자국의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 탈퇴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은 '특별한 사태'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당랑재후(螳螂在後).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는 자신을 잡으려는 참새가 뒤에 있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정작 자신에게 덮치는 위험은 간과함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한국이 딱 이 모양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핵 선제 불사용을 원칙으로 삼으면 우리에게 닥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망 없는 종전선언에 대한 집착은 하루빨리 거두고 자체 핵무장이든, 핵미사일 배치든 알맹이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