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19년 3월 23일' 그날의 진실…김학의 불법출금 재판 5장면 [2021 法ON 스페셜①]

중앙일보

입력

法ON

法ON’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김학의 불법출금 수사외압' 첫 재판일인 8월 23일 서울 서초동 고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김학의 불법출금 수사외압' 첫 재판일인 8월 23일 서울 서초동 고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올해 1월 4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 한 건이 접수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3월 23일 새벽 출국을 시도할 때 가짜 사건번호가 적힌 허위 공문으로 불법적인 긴급 출국금지(출금)를 당했다는 게 골자였다.

검찰 수사로 이 일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드러났다. 출입국 업무를 총괄했던 차규근 당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됐던 이규원 검사(현 대전지검 부부장검사)가 먼저 기소됐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의 별장 성 접대 의혹 등을 밝히겠다고 출범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조율하며 사실상 당일 긴급 출금 과정 전반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우여곡절 끝에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의혹이 하나 더 추가로 불거졌다. 앞서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2019년 4월부터 이규원 검사의 불법 출금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다가 윗선의 개입으로 수사가 무마됐다는 의혹이다. 외압 의혹의 장본인은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이다. 안양지청에서 2019년 수사를 담당했던 부장검사는 장준희 인천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로, 핵심 인물들이 재판에 넘겨진 뒤 자신이 이 사건 공익신고자라고 공개했다.

19일 중앙일보 [法ON]이 2021년 한해 서초동 법정에서 가장 관심을 받았던 사건 중 하나인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을 핵심적인 다섯 장면으로 정리했다.

#1. 우여곡절 끝 친정권 검사장·靑실세 기소…직후 수사팀 해체

올해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형사3부장)은 수사 착수 석 달만인 지난 4월 1일 차규근 전 본부장과 이규원 검사를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팀은 이후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성윤 고검장(기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불법 출금 전반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이광철 전 비서관에 대한 혐의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고검장은 검찰에 전문수사자문단과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일반 시민과 전문가들이 수사팀의 기소 타당성을 판단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 이후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이 고검장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하지만 5월 10일 수사심의위는 이 고검장의 바람과 달리 8대4 압도적 표차로 이 고검장을 기소하라고 권고했다. 이틀 뒤 수사팀은 이 고검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헌정 사상 초유 '피고인 서울고검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지만, 문 대통령은 되레 피고인이 된 그를 서울고검장으로 승진시켰다.

문재인 정부의 '실세 비서관'으로 통했던 이광철 전 비서관에 대한 기소는 더욱 험난했다. 친정권 성향의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이 임박한 상황이라 당시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법무연수원장)은 수사팀의 이 전 비서관 기소 보고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반발해 사건을 총괄 지휘해 온 오인서 수원고검장이 사의를 표했고, 수사팀은 후속 인사에서 해체됐다. 검찰 내에선 "이광철이 주도한 이광철 기소 무마 '방탄 인사'"라는 자조 섞인 반응까지 나왔다. 인사 부임 직전까지 기소 의견을 대검에 보고한 이정섭 수사팀은 결국 수원지검 마지막 근무일이던 7월 1일 이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2. 이규원·차규근·이광철 반격 "출금은 정당했다…윗선 지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왼쪽부터)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10월 1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회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왼쪽부터)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10월 1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회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차 전 본부장과 이 검사는 5월 7일 먼저 시작된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선일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됐다. 재판에서 이들은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이 검사 측은 "당시 봉욱 대검 차장검사로부터 사전 지시를 받아 긴급출금 요청서를 발송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봉 전 차장은 이 검사 측 주장에 대해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차 전 본부장 측은 “심야에 긴박한 상황에서 적법절차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점을 정당하게 평가해달라”며 절차상 어떠한 위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검사, 차 전 본부장 사건과 병합돼 함께 재판을 받게 된 이광철 전 비서관은 10월 15일 법원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 비서관도 “출금을 승인한 대검 수뇌부 등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며 수사팀을 공격했다. 그는 “검찰이 피고인들을 현미경으로 샅샅이 살핀 데 반해 봉 전 차장에 대해서는 망원경을 들어 언론 보도를 철저히 차단했다”며 언론 탓도 했다.

검찰 측은 당시 “수사팀을 해체한 것이 누구냐”며 반발했다.

#3. 헌정 사상 초유 '피고인 서울고검장' 재판 시작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불법으로 막으려 했다는 의혹의 수사를 무마하려던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2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불법으로 막으려 했다는 의혹의 수사를 무마하려던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2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 사상 초유의 ‘피고인 서울고검장’의 재판은 8월 23일 시작됐다. 이성윤 고검장 사건도 같은 재판부에 배당됐지만, 재판부는 사건을 합치진 않고 병행 심리하기로 했다.

이 고검장 측은 첫 재판에서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을 공격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고검장 측 변호인은 "공소장에 따르더라도 김 전 차관 출금 과정에 대한 개입은 이 고검장과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의 사건 변론을 도맡아 온 이광범 LKB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도 직접 나서 "공소사실이 불명확하거나 길게 작성된 자체가 자신감 없는 공소장"이라며 "핵심은 몇 가지 안 되는데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4. 재판 나온 공익신고자 "대검 보고 뒤 수사 중단 지시"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 공익신고자 장준희 부장검사. 중앙포토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 공익신고자 장준희 부장검사. 중앙포토

이 고검장은 10월 20일 처음으로 직접 법정에 출석했다. 이날 공익신고자인 장준희 부장검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 고검장의 면전에서 “안양지청에서 대검 반부패부에 수사 진행 및 계획을 보고한 뒤 수사를 진행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에서 안양지청 수사가 진행됐던 2019년 6월 19일 대검 반부패강력부에 ‘검사 이규원의 (불법 출금) 혐의 발견 및 추가 수사 계획’ 보고서를 보고한 뒤 다음 날 수사 중단 외압을 받은 상황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다. “저와 수사팀은 이규원 검사의 범죄는 이미 99% 입증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 장 부장은 "(대검에 보고한 이후) 대검에서 이 보고서를 보고받지 않은 것으로 할 테니 보고하지 말라고 했다”라고도 증언했다.

#5. 중단된 수사…애먼 이성윤 공소장 유출 논란만 

이정섭 수사팀이 이 사건 공판을 직접 챙기고 있긴 하지만, 아직 모든 관련자들에 대한 의혹이 풀린 건 아니다. 이정섭 수사팀은 지난 6월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면서 피고인들의 상급자인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적시했다.

변경된 공소장에 따르면 차 전 본부장은 당시 법무부 차관이었던 김오수 검찰총장에게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 사실을 알리고 출금하겠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차 전 본부장은 같은 내용을 당시 이용구 법무실장(전 법무부 차관)에게도 전달했다. 이 전 실장은 이를 검찰국장이었던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에게, 윤 검사장은 이를 다시 조국 전 민정수석에게 전했다. 이에 조 전 수석은 즉시 이광철 전 비서관에게 전화해 "대검 진상조사단 측에서 출금 요청하면 법무부가 이를 받아서 바로 출금해주겠다고 한다"며 "빨리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고 조치가 이뤄지도록 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검찰 측은 밝혔다.

하지만 수사팀 교체 이후 윗선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없고 애먼 이성윤 고검장의 공소장 유출 논란만 커지고 있다. 이를 수사하는 공수처는 10여개 언론사 기자 수십명의 통신 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알려지며 '언론 사찰' 논란에 휩싸였다.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6월 10일 오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보석 출소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뉴스1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6월 10일 오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보석 출소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뉴스1

법조계에선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을 ‘미란다 원칙’의 기원인 1963년 미국에서 발생한 에르네스토 미란다의 납치 강간 사건과 비교하며 '생각해볼 게 많은 사건'이라고 한다. 미란다 원칙이란 미국 경찰이 성폭행범인 미란다를 조사할 때 변호사 선임권 등을 고지하지 않아 연방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된 이후 '적법 절차'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은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김 전 차관은 출금 당시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성접대 의혹 관련 참고인일 뿐 당시 어떤 수사기관에도 범죄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가 아니었다. 긴급 출금은 출입국관리법상 범죄 피의자에게만 할 수 있는 조치다. 공익신고자인 장준희 부장이 공익신고서에서 “아무리 중한 죄를 저지른 국민이라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적법한 절차에 따른 수사와 기소, 재판을 거쳐 처벌해야 진정한 법치주의 국가라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올해 이 사건 재판은 지난 17일 마무리됐다. 내년 1월 12일 이 고검장의 공판기일이 잡혀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내년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김학의 수사’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검찰 수사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김학의 수사’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검찰 수사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