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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의 SOS...中불법어선 막는 韓해경함, 또다른 작전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일 새벽 인천국제공항. 에콰도르 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외국인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이들은 스페인어로 “고맙다. 또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한국에서 열흘간의 여정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이들은 갈라파고스 군도를 지키는 에콰도르 해군 소속 장교들이다.

지난 10일 새벽 다니엘라 안드라데 대위(왼쪽에서 세번째) 등 에콰도르 해군 함정 실무진들은 열흘간의 교육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사진 해양경찰청

지난 10일 새벽 다니엘라 안드라데 대위(왼쪽에서 세번째) 등 에콰도르 해군 함정 실무진들은 열흘간의 교육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사진 해양경찰청

에콰도르 해군 장교들이 한국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에콰도르 대사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군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는 매년 8~9월쯤 중국 불법 조업 어선이 대규모로 출몰했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어류를 잡기 위해 모(母)선과 작은 어선들, 탱커선 등으로 이루어진 300여 척의 선단이 해역을 자유로이 오가며 상어 등을 남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육지영토의 5배 가까이 되는 해양영토를 지키기엔 에콰도르 해군력은 역부족이었다.

중국 불법 조업 어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에콰도르 정부는 2019년 한국 해양경찰에 경비함정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해경은 에콰도르 해군과 맺은 해양안전 협력을 위한 업무 협약에 따라 방안 모색에 나섰다. 마침 지난해 3월 해양경비법이 개정되면서 길이 열렸다. 이전에는 퇴역 군함은 고철 판매만 할 수 있었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용도 폐기된 함정을 개발도상국에 무상으로 줄 수 있게 됐다.

불법 조업 300척 나포한 베테랑 선박 

지난해 해양경찰청 퇴역 경비함 2척이 에콰도르로 떠나기 위해 대형 수송선에 선적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지난해 해양경찰청 퇴역 경비함 2척이 에콰도르로 떠나기 위해 대형 수송선에 선적하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해경은 2019년 퇴역한 경비함정 5척 중 제주해경 소속 302함과 303함 등 300t급 함정 2척을 골랐다. 외관을 정비하고 수리해 에콰도르에 보내기로 했다. 300척이 넘는 불법 조업 선박을 나포하고 200여척을 해상에서 구조한 ‘베테랑’ 선박이었다. 한 척당 29억원을 들여 만들었으나 사용 연한이 30년 가까이 되면서 항해를 멈춘 이들이었다. 지난해 12월 함정 2척은 3만t급 대형 수송선에 실려 에콰도르 최대 항구인 과야킬항으로 떠났다. 에콰도르 해군은 이 두 함정에 ‘LG-35 플로레아나 함’과 ‘LG-36다윈함’이란 이름을 붙였다. LG는 경비함정(Lancha Guardacoastas)이란 뜻이다.

뜻밖의 문제에 다시 SOS

한국 해경 함정 2척은 퇴역 후 에콰도르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사진 해양경찰청

한국 해경 함정 2척은 퇴역 후 에콰도르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사진 해양경찰청

그러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한국산 경비 함정은 에콰도르 함정의 엔진과 가동 방식이 달랐다. 리모델링 중엔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한국어로 적힌 함정 매뉴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스페인어로 번역한 탓에 에콰도르 승무원들이 함정 운영방식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갈라파고스 군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터라 선박이 매연 등 환경 저해요소를 유발할 경우 군도 출입이 제한되는 점도 문제였다. 결국 에콰도르 해군은 다시 한국 해경에 도움을 청했다. 해군 인력을 보낼 테니 함정운용 등 관련 기술을 전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지난달 29일 에콰도르 해군이 국내에서 함정 운용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지난달 29일 에콰도르 해군이 국내에서 함정 운용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지난달 29일 다니엘라 안드라데 대위를 비롯한 에콰도르 해군 실무진 5명이 입국했다. 해경이 양도한 경비함정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었다. 이들은 여수 해양경찰교육원, 부산 해양경찰정비창, 울산해양경찰서 등을 차례로 방문해 함정운용 시뮬레이션교육, 엔진과 함정 수리, 실제 운용 중인 함정의 정비 노하우를 배웠다. 중소 경비함정을 만들고 있는 조선소도 견학했다.

에콰도르 군인들은 귀국하면서 “함정을 양도하고 교육까지 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교육 중 대위로 진급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청동 거북선을 선물로 받은 다니엘라 안드라데는 “이제 함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에 대한 감을 잡은 것 같다”며 “온라인 연결을 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한국 해경과 긴밀히 협조해 에콰도르 해양경비대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육받은 동안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고 한다.

해양경찰청은 이번 연수를 기점으로 함정 양여 관련한 후속 조치를 이어갈 방침이다. 해경 관계자는 “에콰도르는 한국전쟁 때 쌀과 물자를 지원해주고 한국의 포니 승용차 6대를 최초로 수출한 나라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며 “향후 퇴역 경비함정 3∼4척을 매년 남미 국가에 무상으로 양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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