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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서역 토용, 황금 보검, 일본 토기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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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유성운 기자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유성운 기자

“중국 사람 중 진나라의 난리를 견디지 못하고 동쪽으로 온 자가 많았는데, 마한의 동쪽에 많이 살면서 진한과 섞여 살았다.” “석탈해는 왜국(倭國) 동북쪽 1000리 떨어진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다. 아진포(지금의 영일만) 어귀에 다다랐을 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궤짝을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거두어 길렀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삼국사기』의 이런 기록은 고대 한반도에 일찍부터 외부에서 이주민이 찾아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이동은 물자의 유통도 촉진하게 마련. 신라가 흥덕왕 9년(834년) 사치풍조를 막기 위해 에머랄드(瑟瑟), 비취모(翡翠毛), 공작의 꼬리(孔雀尾), 침향(沉香) 등 외국산 물품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교서를 내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 역시 외부와 교역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토용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토용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지난달말부터 열리고 있는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은 이처럼 고대 한반도와 외부의 교류 과정에서 남겨진 유물을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가까이 중국과 일본, 멀리 중앙아시아와 로마까지 다양한 시기와 장소를 거쳐 한반도에 유입된 외래계 문물 172건 253점(국보 2건, 보물 6건)을 선보인다.

중국 및 일본과의 교류 
우리 고대 역사서에 등장한 대표적 이주민은 위만. 그는 중국의 정치적 변동을 피해 무리를 이끌고 연나라에서 고조선으로 이동해 왕위를 빼앗았고, 준왕은 이에 밀려 한반도 남쪽으로 피했다고 한다.

이런 정치적 변동과 집단 이동은 한반도 곳곳에 유물로 드러난다. 전시에 선보인 검파형 동기, 명도전(明刀錢), 오수전(五銖錢) 등은 중국과 인적, 물적 교류가 대규모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한사군 중 4세기까지 존속한 낙랑군은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낙랑군 유적에서 출토된 낙랑토기 등은 이곳이 단순히 중국의 군현이 아니라 한반도와의 접촉 속에서 토착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로 해석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야요이 토기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야요이 토기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또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스에키 토기나 갑옷 등은 이 지역에 일찍부터 일본인들이 드나들었고 일부는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경주박물관 측은 "중국의 중원-낙랑·대방-한반도-일본 열도로 이어지는 교류 네트워크가 상시화됐다"고 설명했다.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
흥미로운 것은 한반도의 동쪽 신라에서 서역과 연관된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는 점이다.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토우는 터번을 쓰고 있고,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토용이나 원성왕릉의 무인상은 우뚝 솟은 코와 덥수룩한 턱수염을 하고 있다. 국제 상업 무대에서 활동한 소그드인(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거주한 이란계 민족)을 모델로 했다는 설이 많다. “알지 못하는 사람 4명이 어전에 나타나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모양이 괴이하고 의관도 다르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해(山海)의 정령(精靈)’이라 하였다”(『삼국사기』)는 처용 설화도 이 무렵 페르시아에서 온 이주민을 묘사했다는 학설이 있다.
이밖에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보검과 유리잔 등 신라의 교역 반경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서 확대됐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로 꼽힌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황금보검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황금보검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전시품을 보면 백제는 중국, 신라는 서역, 가야는 일본과 연관있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경주박물관 측은 "백제와 가야는 해로를 통해 중국, 일본과 교류가 많았고, 신라는 고구려를 통해 서역의 물건들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알려진 자료가 적지만 고분 벽화에서 다양한 서역계 요소가 묘사되어 있다"며 "삼국시대 외래계 문물이 이렇게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현상은 지정학적 위치와 한반도 내부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한층 복잡해진 각국의 정치, 외교활동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고대 일본 갑옷. 유성운 기자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에 전시된 고대 일본 갑옷. 유성운 기자

이동관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숫자가 250만명을 넘어섰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의 '3T 이론'에 따르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력 있는 사회가 발전한다고 한다"며 이번 전시에 대해 “그동안 우리 역사 전시가 고유성, 민족성, 대표성을 주로 다룬 것에서 벗어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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