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는 지역 안정을 해치는 악성 종양.” (2017년 9월)
“중국 민주주의는 이제 불 붙은 모닥불, 미국 민주주의는 꺼져가는 불씨.” (2021년 12월)
중국이 세계와 싸울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해 온 ‘공산당의 거친 입’이 공식 석상에서 물러났다. 중국의 대표적인 국수주의 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의 후시진(胡錫進·61) 편집인이다. 후시진은 16일 웨이보에 “은퇴 수속을 밟아 더 이상 환구시보의 편집인을 맡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중국에서 유일하게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사람”이라며 그를 집중 조명했다.
![중국 환구시보 편집장에서 물러나는 후시진(胡錫進). [바이두 갈무리=뉴스1]](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11/10/e4a2bbc5-5e6b-4e20-b636-05142f79172a.jpg)
중국 환구시보 편집장에서 물러나는 후시진(胡錫進). [바이두 갈무리=뉴스1]
펑솨이 실종 사건에 등판
지난달 21일, 후시진이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 전세계 이목이 쏠렸다.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師)가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코치와 식사를 하는 모습을 그가 공개한 것이다. “펑솨이는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였다.
펑솨이는 앞서 같은 달 2일 웨이보에 장가오리(張高麗) 전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2주 넘게 행방이 묘연한 터였다. 중국 당국에 의한 실종설·구금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등장했다. 펑솨이의 신변 안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이어졌다. 그러자 중국 정부도 아닌 관영 매체 인사가 펑솨이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펑솨이 신변을 공개하며 “일부 서방 세력이 펑솨이의 폭로를 중국 체제를 악마화하는데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만 빼고…‘모두까기’
후시진은 독설로 국제사회에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가디언은 "싱거운 공산당의 공식 성명 속에서 후시진의 끊임없는 독설과 모욕은 돋보인다"고 평했다. 2017년 한국과 사드 배치 갈등을 빚을 당시 그는 사설에서 “한국이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 아니냐”고 비방했다. 그의 독설에서 유일한 예외는 중국 정부다. 중국 정부만 아니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퇴임 전날까지 후시진은 트위터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포스팅하며 “미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결과 발표에서 대만 대표 영상이 잘린 건 알고 있느냐”며 저격했다.
그는 베이징 겨울올림픽 전면 보이콧을 주장한 미 상원의원을 향해선 “정치적 쓰레기”(지난달 19일)라고 비난했고, 호주를 향해선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2020년 4월)이라고 조롱했다. 이런 표현을 서슴지 않는 후시진은 웨이보와 트위터에서 각각 2422만 명, 45만 명에 달하는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그의 한계가 없는 독설이 중국 안팎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얘기다.
가디언은 "후시진은 특히 군사 문제에 열정적"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5월 후시진은 “중국의 핵탄두를 1000기로 늘려야 한다”고 공개 주장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도 참여하는 (핵)군비 통제협정의 필요성”을 거론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하루 만에 나온 발언이었다.
이 같은 후시진의 폭탄 선언에 외신들이 중국 정부의 입장을 묻자, 화춘잉(華春瑩)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에도 언론의 자유가 있다”며 그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대답을 했다.
![지난달 21일, 후시진 편집인은 트위터에 동영상을 올려 중국 공산당 간부 장가오리의 성폭행을 폭로한 뒤 실종설이 불거졌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11/10/1042cfa8-c186-4061-bb41-af6396bf4472.jpg)
지난달 21일, 후시진 편집인은 트위터에 동영상을 올려 중국 공산당 간부 장가오리의 성폭행을 폭로한 뒤 실종설이 불거졌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中 ‘늑대외교’ 방불, 후시진의 입
일부 전문가는 후시진이 “중국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관’ 이상의 영향력을 가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전랑외교는 중국이 늑대 전사처럼 공격적인 압박 외교를 구사하는 것을 지칭한다. 전랑외교에 관한 저서를 쓴 미 블룸버그 통신의 피터 마틴 국방·안보 담당 기자는 올해 10월 미 아시아정책연구소 대담에서 “2008~2009년 이후 천천히 가속화되던 중국의 전랑외교는 2012~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에 들어 가속화됐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복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랑외교의 타깃이 국제사회가 아닌 국내 청중의 결집에 맞춰지고 있다면서다.
후시진은 그런 면에서 전랑외교의 부상 훨씬 이전부터 환구시보를 통해 중국식 민족주의를 전파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이다. 샹란신(相蓝欣) 스위스 제네바 대학원 국제정치학 교수는 “환구시보가 매일 들이미는 국수주의 감정은 통제하기가 어렵다”며 “오랫동안 중국 대중을 이끌어 온 점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 민족주의 설파 선봉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은 그의 거침 없는 발언을 메아리처럼 증폭시켰다. 후시진이 트위터·웨이보를 통해 전달하는 주장이나 환구시보의 논평을 외신이 인용해 보도하고, 이를 통해 해당 국가와 국제 사회에서 반중(反中) 정서가 점화되면 환구시보는 이를 재인용해 반박하며 양국 여론이 충돌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방탄소년단(BTS)의 ‘밴플리트 상’ 수상 일화가 대표적이다. BTS가 수상 소감에서 “한·미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언급한 것을 일부 중국 네티즌이 문제삼자, 환구시보는 이를 받아 “BTS가 전쟁에서 희생된 중국 군인을 존중하지 않고 중국을 모욕하고 있다”는 반응을 그대로 실었다. 이 문제를 놓고 양국 간 여론이 악화하자 외려 중국 외교부가 브리핑을 통해 갈등이 확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진화 메시지를 냈다. 이후 후시진은 “한국 언론이 중국 네티즌의 반응을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이라고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후시진의 이 같은 자신감 넘치는 행보의 배경엔 시 주석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진핑 언론 전략 충실한 인물”
후시진과 환구시보의 입지를 설명하는 일화가 있다. 2016년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베이징 본부를 방문해 수 많은 인민일보 계열사 신문 중 환구시보를 콕 짚었다. “내 사무실에 이 신문이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2019년엔 후시진이 있던 사무실을 직접 찾아 “선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기술을 수용하고, 당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새로운 플랫폼 점유할 것”을 당부했다.
이를 놓고 가디언은 “후시진이 시진핑 집권 초기 내놓은 언론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후시진은 환구시보 기자들이 개인 브랜드를 키우도록 장려하고, SNS를 적극 활용하면서 중국 공산당 노선을 안팎으로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와 같은 뉴미디어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중국 공산당은 2010년대 언론 자유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다. 환구시보도 이를 따라갔다. 중국 공산당은 2010년 5월 '인터넷 백서'를 발행해 모든 인터넷 이용자가 중국의 법과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다. 이듬해 중국 정부는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를 공항에서 체포하고 81일 동안 투옥하기도 했다. 당시 환구시보는 "아이웨이웨이는 역사에서 씻겨나갈 것"이라고 비난하고, 아이웨이웨이를 옹호하는 기사를 쓴 기자 원타오(文涛)를 해고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는 2016, 2019년 환구시보를 발행하는 인민일보 본사를 방문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11/10/f3c3ed9d-f130-4679-91c9-55b5800432dd.jpg)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는 2016, 2019년 환구시보를 발행하는 인민일보 본사를 방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천안문 시위대에서 ‘중국의 입’으로
후시진의 삶은 입지전적이다. 1960년 가난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세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군 장교 신분으로 난징국제관계학원·베이징외국어대에서 러시아 문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시절 천안문 사태(1989년 6월)가 일어났을 때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훗날 천안문 시위 참여를 “위험한 어리석음”이었다고 스스로 비판했다. 이후 그는 인민일보에 입사하며 ‘중국의 입’으로 거듭났다.
기자 시절 그는 보스니아 전쟁(1992~1995년) 특파원 경력을 전환점으로 꼽는다. 트위터 프로필 사진이 20년 전 보스니아 전쟁 취재 때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메모하고 있는 사진이라고 한다. 회고록에서 그는 “그곳에서 ‘중국 기자는 왜 각광을 받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며 “중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무시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를 놓고 “회고록에는 당시 후시진의 서방에 대한 열등감과 적개심이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평했다.
세르비아 中대사관 폭격 대서특필
가디언에 따르면,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서방 중심의 국제 뉴스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의 전략은 환구시보가 세를 확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99년 5월 7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의 일원으로 미군이 세르비아의 중국 대사관을 폭격, 중국 기자 세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미측은 “비극적 사고”라고 해명했지만, 환구시보는 이틀 뒤 특별호를 발행해 해당 사건이 고의적 테러일 수 있다는 의혹 제기 기사를 내보냈다.
특별호는 중국 내 반미 정서에 불을 붙였다. 공산당 엘리트들은 물론 중국 대중들까지 호응했다. 리자오싱(李肇星) 전 외무장관이 “저널리즘은 국경이 없지만 기자는 모국어가 있다”며 환구시보를 호평했다.
‘중국 최고’ 내건 후시진의 역설
하지만 ‘차이나 퍼스트’를 내걸었던 후시진이 이젠 ‘차이나 퍼스트’에 공격을 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가디언은 “중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강해질수록 후시진의 영역은 쪼그라드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 5월 후시진은 인도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치솟자 공감을 표했다. 그러자 일부 극단적 성향의 네티즌들이 “중국의 주요 라이벌인 인도를 너무 부드럽게 대한다”며 후시진을 공격했다. 여기다 지난해 말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고, 아들의 캐나다 이민 의혹 등이 더해지며 그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후시진은 지난 16일 웨이보를 통해 환구시보의 '특약 칼럼니스트'로 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식 직함은 내려놓지만, 여전히 그가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환구시보 해직 기자 원타오는 “그는 환구시보의 영혼”이라며 “후시진을 벗어난 글로벌타임스(환구시보의 영자신문)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