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반대로 움직였다”는데…대기업 러브콜 쇄도 직원 20명 광고사

중앙일보

입력 2021.12.18 22:32

업데이트 2021.12.23 17:19

여기, 한 광고회사가 있다. 가만히 있는데 알 만한 기업들이 광고를 찍어 달라 연락해온다. 그런 전화가 매달 20~30건이다. 구성원이 20명이라 여력이 안 돼 들어온 의뢰 중 80%는 거절한다.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대표 인터뷰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회사에서도 요청이 온다.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해 달라는 거다. 최근엔 대기업에서 인수를 타진해왔다. 한 기업이 인수 뜻을 내비친 걸 알게 된 또 다른 기업은 그 세 배의 돈을 제시했다.

이 같은 러브콜을 받는 회사는 ‘돌고래유괴단’이다. 별 뜻 없이 술 먹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로 정한 이름이라는데, 이제는 ‘돌고래유괴단 스타일 광고’라는 말이 통용된다. 예측 불허 전개와 기존 문법을 무너뜨리고 뒤집는 유머러스한 화법이 특징이다.

돌고래유괴단이 제작한 광고. [사진 돌고래유괴단 블로그 캡처]

돌고래유괴단이 제작한 광고. [사진 돌고래유괴단 블로그 캡처]

광고모델이 곰에게 잡아먹히고 영정 사진으로 등장하는 광고(캐논)와 10분이란 긴 러닝타임에 어린아이 몸에 유명 배우 얼굴을 합성한 광고(그랑사가 연극의 왕)가 대표적이다. 송중기·이병헌·유아인·현빈 같은 톱스타들이 소위 ‘약빤’ 광고에 동참했다.

국내외 유명 광고제와 영화제 수상 소식이 이어진다. 불과 며칠 전 내놓은 광고도 화려한 캐스팅에 드라마 클리셰를 비틀고(맘스터치), 명곡 가사를 위트 있는 반전으로 풀어내(VOGO) 화제 몰이 중이다.

돌고래유괴단의 수상 목록. [사진 돌고래유괴단 블로그 캡처]

돌고래유괴단의 수상 목록. [사진 돌고래유괴단 블로그 캡처]

2007년엔 그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던 20대 청년들이었다. 이후 8년간은 별 성과를 못 내 빚을 3억5000만원까지 졌던 이들이 어떻게 현 위치에 오르게 됐을까. 2015년 캐논 광고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뒤 성공 가도를 달려온 이 회사의 신우석 대표(39)에게 지난 15일 비결을 물었다.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대표. [사진 돌고래유괴단]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대표. [사진 돌고래유괴단]

“감독 개인에게 권한과 책임 줬다”

광고 어떻게 만드나.
감독 한 명이 중심을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기존 광고업계에서는 광고대행사의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내놓은 기획을 시각화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감독이 직접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고, 편집한다. 예전에는 의뢰가 들어오면 내부 경쟁 PT를 통해 감독을 정했는데 요샌 의뢰가 너무 많아 프로젝트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감독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감독 개인이 오롯이 고민해 자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진 권한만큼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다. 결재받는 과정이 없다.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특유의 스타일이 유지되나.
나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재능 있는 감독에게 자기 것을 풀어놓고 아이디어를 개발할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다만 우리 광고가 흥행을 이어온 것을 봐왔기 때문에 감독들의 부담이 엄청나다.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있지만, 작품의 완성도에 집착한다. 지난해와 올해 데뷔한 감독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 신인 감독들이 최근 맘스터치와 VOGO 광고를 만들었다. 한 명은 20대고 한 명은 30대다.
구성원이 젊은 듯하다.     
원래 10명이었다가 올해 초 충원을 통해 20명이 됐다. 40대는 두 명뿐이고, 20대와 30대가 나머지 반반이다. 사실 신임 감독을 데뷔시키는 게 쉽지 않아, 업계에서는 외부에서 이미 경험을 쌓은 감독을 선호한다. 하지만 우리는 감독을 내부에서 길러 데뷔시킨다. 조감독들은 (가상의 광고주를 두고 기획하고 발표하는) ‘PT 데이’를 거치고 선배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스로 익히고 능력을 키운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특별히 하는 건 없고 어느 순간 핵심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이야기 앞뒤를 만들어 간다. 개인마다 발상의 방식이 다른데 영화나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MZ(밀레니얼+Z)세대를 딱히 의식하진 않지만, 현재의 트렌드가 뭔지 들여다보려 한다. 대중을 이해할수록 더 용기 있고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우리 팀은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가치를 두려 한다.
창의적인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겠다.
그가 가진 재능이 중요하지만, 우리와 결이 맞을지 그 사람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팀 전원이 지원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보고 면접 볼 사람을 뽑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엔 팀원 전원이 달려들어 압박 면접을 진행했다. 당장의 능력보다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에 비중을 두다 보니 합격자 중 (영화나 광고) 전공자는 20~30%밖에 안 된다.

이 회사 공개채용 경쟁률은 수백 대 1이다. 서류 전형엔 전공과 경력을 쓸 자리가 없다. 대신 기존 광고 중 ‘내가 만들었으면 더 잘 만들었겠다’ 생각하는 광고의 기획안 등을 써야 한다. 채용 공고 자격 요건엔 ‘광고주에 굴하지 않고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자’가 있다.

돌고래유괴단 채용 공고 일부와 1차 서류전형 지원 양식. [사진 돌고래유괴단 블로그 캡처]

돌고래유괴단 채용 공고 일부와 1차 서류전형 지원 양식. [사진 돌고래유괴단 블로그 캡처]

파격적 아이디어일 땐 광고주를 어떻게 설득하나.
이제는 설득할 상황 자체가 줄었다. 그동안 우리가 결과로 증명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고주가 우리에게 더 과감한 것을 원한다. 
톱스타를 많이 썼는데, 모델이 거부한 적은 없나.   
시나리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우선순위로 두고 제안을 하지만 그 과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하기로 했던 배우가 시나리오 수정을 요구해 우리 쪽에서 거절한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 캐스팅 비결을 물어오는 이들이 많은데 딱히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냥 우리가 제작해 온 작품들,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설득한다. 이제는 우리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고 출연료를 양보해주는 배우까지 생겼다. 감사한 일이다. 
광고 촬영 현장에 있는 신우석 대표. [사진 돌고래유괴단]

광고 촬영 현장에 있는 신우석 대표. [사진 돌고래유괴단]

“보는 사람이 투자한 시간만큼 돌려줘야”

광고판에선 대기업 계열의 광고사 영향력이 큰데. 
광고업계가 신인이 진입하기 힘든 시장인 것은 사실이다. 업계 구성원들이 워낙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인지 촘촘하게 구조가 짜여 있다. 그래서 우리처럼 작더라도 다른 개성을 가진 팀들이 많이 나와야 업계 자체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뭐라고 보나.
돈과 반대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그동안 업계가 작업 해오던 방식과 구조가 있는데, 우리가 돈을 보고 움직였다면 지금처럼 새로운 작업 방식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우리 광고는 러닝타임도 길지만, 작업 기간이 길어 1년에 제작할 수 있는 편수가 많지 않다. 감독들이 작품에 욕심이 많아 말려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내놓고 싶은 제작물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결국 그것이 의도된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유효한 선택이 됐다. 
향후 계획은. 
그간 없던 새로운 의미의 콘텐트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내년 3월 나올 것 같다. 영화·드라마도 준비 중인데 연락해온 OTT들이 있고 내후년쯤 개봉될 것 같다. 우리가 뭘 만들던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 생각한다. 보는 사람이 투자한 시간 만큼 뭔가를 돌려주는 것, 그게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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