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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매운면, 야끼우동, 비빔짬뽕, 물짬뽕…전국 짬뽕 자랑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104) 

맛있는 귀농귀촌 - 면요리(1)


달력을 보니 아뿔싸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벌써 연말이라니. 괜한 조바심에 곰곰이 올해 뭐했나 싶은데 별로 한게 없다. 그래서 작년에 뭐했나 수첩을 열어 보니 역시 작년에도 특별히 한 게 없다. 재작년도 별반 다른게 없었다. 그랬더니 안심이 된다. 그동안 별 거 없이 살아 놓고는 새삼스레 뭘 한게 있나 살펴 보는게 이상한 거다. 올해도 별일 없이 탈 없이 잘 지냈다.

그래도 뭐 하나 남는게 있을텐데 하며 노트북을 열어 보았다. 하나 있었다. 음식들이다. 구글 클라우드에 빼곡이 올려져 있는 사진들을 보니 온통 음식이다. 모두 농촌에 가서 일을 하며 먹었던 음식들이다. 일부러 맛집이라고 멀리까지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저 가다가 들렀던 곳이지만, 그 때 함께 수저를 들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남아 있으니 소중한 사진들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특이하게 면 요리 사진들이 많다. 작년과 다른 게 밥보다는 면을 더 많이 먹었다. 올해는 면식수행을 했나 보다. 기억나는 면 요리를 소개하련다.

철원 동송막국수. [사진 김성주]

철원 동송막국수. [사진 김성주]

해마다 연초엔 강원도 철원군에서 나를 불러 청년농 지원사업 심사를 맡긴다. 철원의 청년들은 대부분 도시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귀농·귀촌인이다. 특이하게 상당수가 민통선 안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다. 철원 파프리카가 활성화된 것에는 이들의 수고가 컸다. 청년 농부들에게서 철원 농업의 빛나는 미래를 본다. 매우 대견한 친구들이다.

겨울 철원군은 너무 춥다. 그래서 꼭 점심에는 막국수를 즐긴다. 영하의 날씨를 뚫고 들어가 살얼음이 뜬 막국수를 먹는 즐거움을 아는가.  막국수는 춘천, 철원, 인제, 홍천과 같은 내륙 지역의 막국수와 강릉, 양양, 삼척과 같은 바닷가의 막국수가 조금 다르다. 메밀과 전분을 얼마나 배합하느냐에 따라 찰기와 향이 달라진단다. 지역마다 다른 맛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춘천은 막국수와 닭갈비가 어울리고, 인제에서는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트레킹하고 내려와 먹는 막국수가 일품이다. 양양과 삼척과 같은 바닷가 막국수는 김 가루를 많이 뿌려주는 특징이 있다.

강릉 메밀 순면막국수. [사진 김성주]

강릉 메밀 순면막국수. [사진 김성주]

100% 메밀로만 막국수를 내는 집이 강릉에 있다. 나무 분틀로 직접 면을 뽑아낸다. 주인장이 메밀면 위에 슬쩍 간장과 들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며 먹으라고 주는데 향이 기가 막히다. 고수는 들기름도 치지 않고 먹는다는 주인의 말에 양념을 더 치려는 욕구를 꾹 눌렀다. 사실 몇 년 전에도 와서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진짜 맛이 없었다. 그새 내가 늙었나 보다.

메밀국죽은 메밀쌀을 된장과 막장을 넣어 죽으로 쑨 것이다. 국물이 많아 국으로도 보이고, 칼국수면을 넣어 주니 면요리로도 보인다. 근데 진짜 아무 맛도 없다. 곤드레나물을 넣었다고 해도 맛을 못 느낀다. 쓰디쓴 된장국이랄까. 게다가 메밀은 보리보다 더 까칠하다. 그러나 먹다 보면 음식 투정이 사라진다. 어려웠던 시절 강원도 산촌민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메밀이 없으면 옥수숫가루로 만든 올챙이 국수를 먹었다. 산간 지방에서 많이 나는 옥수수를 전분으로 내어 걸쭉한 반죽을 구멍 난 바가지에 담아 눌러 내린 것을 뜨거운 물에 삶은 것이 올챙이 국수이다. 끈기가 없으니 면발이 툭툭 끊어져 내리니 생긴 게 올챙이 같다고 해 올챙이 국수이다. 이 또한 특별한 맛은 아니다. 하도 싱거워서 간장 양념을 듬뿍 치게 되는데 간을 맞추다가 너무 짜져서 물을 들이켜게 된다. 그래도 정겹다. 평창과 정선의 시장 골목에 앉아 올챙이 국수와 함께 배추전, 메밀전병, 수수부꾸미를 세트로 먹으면 강원도 사투리가 절로 나온다. 맛있드래요.

그래도 올챙이 국수는 적어도 세 번은 먹어봐야 제맛을 알 수 있으니 평양냉면보다 어렵다.

속초 회냉면. [사진 김성주]

속초 회냉면. [사진 김성주]

냉면은 서울과 경기쪽에 유명한 식당이 많지만 적어도 비빔냉면은 강원도 동해바다 쪽이 강세이다. 왜냐하면 함흥냉면이라는 것이 함흥으로부터 직렬로 이어지는 곳이 속초니 말이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속초와 강릉 쪽에 많이 살았다. 그래서 이곳에 가면 함흥냉면 집이 많다. 특히 명태회 무침을 올린 회냉면이 일품이다. 명태 말고 가자미를 쓰는 곳도 꽤 있다. 맨 위의 고성에서 아래 삼척까지 이어지는 강원도 동해 라인을 따라 답사를 하면 막국수와 회냉면이 왔다 갔다 한다. 물론 강원도 끄트머리에서 막국수와 냉면이 끊어지고 경북에서는 국수로 이어지다가 부산에 가서 밀면으로 냉면이 재탄생한다.

서산 간장 냉면. [사진 김성주]

서산 간장 냉면. [사진 김성주]

냉면과 명태가 만나 생긴 것이 회냉면이라면 냉면과 생선회가 만난 생긴 것은 물회다. 물회는 회를 국수처럼 말아 먹는 것이다. 어떤 집은 물회 안에 소면을 넣어주기도 한다. 오징어 물회는 오징어를 국수처럼 썰어 넣는다. 필자는 넓은 의미에서 물회도 냉면으로 본다. 물냉면처럼 시원한 육수가 찰랑거리는 물회가 있으면 육수 없이 회와 양념장, 채소가 잔뜩 들어간 비빔냉면과 비슷한 비빔 물회가 있다. 물론 차게 먹어야 하기에 얼음이 반드시 있다.

여름에 막국수, 냉면, 물회라면 겨울에 자주 찾는 국수는 아무래도 우동이다. 뜨끈한 육수에 담아 먹는 것으로는 잔치국수, 칼국수, 라면 등등이 있겠지만 나는 우동을 좋아한다. 육수가 멸치이건 가다랑어이건 소고기이건 MSG이건 우동이 좋다. 우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감칠맛과 함께 부드러운 면발 때문인 것 같다.

서울이나 부산에 있으면 가츠오부시로 육수를 낸 일식 스타일의 우동을 주로 먹지만 농촌으로 가면 진한 멸치 육수를 사용한 우동을 찾는다. 그런데 소도시로 가면 특이한 우동들이 있다. 일부러 찾아가는 우동이다.

충청북도 옥천에 가면 꼭 먹는 우동 요리는 ‘물쫄면’이다. 이름이 웃기다. 그래도 국수의 성격을 잘 설명한다. 멸치 우동 육수 안에 쫄면을 넣어서 물쫄면이다. 쫄면의 단단한 면발이 진한 멸치 육수에 담겨 입 안을 긴장시킨다. 쫄면이 면을 뽑다가 우연히 실수로 생긴 질기 면인데, 물쫄면은 실수로 비빔쫄면이 육수에 잠기게 되어 만들어진 것 같다. 실수로 만들어진 창의적인 우동이다. 그래서 나는 물쫄면을 우동계의 비아그라, 3M 포스트잇으로 부른다. 물쫄면이라 부르는 이 음식은 옥천과 영동에서만 봤다.

통영 우짜. [사진 김성주]

통영 우짜. [사진 김성주]

물쫄면만큼 창의적인 우동이 통영에도 있다. 우동과 짜장의 콜라보인 ‘우짜’다. 우짤라고 이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동에 짜장 소스를 부은 것이다. 비주얼이 매우 안 좋다. 비비면 비빌수록 안 좋다. 우동의 연갈색 투명한 육수에 검은 짜장이 번진다. 진짜 우짜게 될라고 이런지 모른다. 그런데 맛있다. 통영 주민들은 우짜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우짜 식당을 찾아 달라는 내 부탁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지역 주민의 표정이 기억난다.

남원 짬뽕. [사진 김성주]

남원 짬뽕. [사진 김성주]

요즈음에는 짜장면보다는 짬뽕을 더 쳐주는 것 같다. 값도 짬뽕이 천원 정도는 비싸다. 지역을 다니다가 끼니때가 되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면 그냥 중국집에 가라고 권하고 싶다. 기왕이면 허름한 집을 가보라. 신세계가 열린다. 기본적으로 업력이 20년 이상 된 집이 많다. 그 지역에서 나는 산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향토성이 짙다. 바닷가는 해물이 좋고, 내륙은 버섯과 야채가 좋다. 여기서 잘하는 중국집을 소개하는 건 무의미하다. 직접 현지에 가서 둘러 보다가 동네 수퍼 아저씨나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면 된다. 짬뽕은 아줌마보다는 아저씨들이 더 좋아하니까 중년 남성에게 묻는 게 유리하다.

짬뽕은 당연히 칼칼한 육수가 가득하게 담긴 국물 면요리이다. 그런데 이 짬뽕 또한 지역마다 변주가 있어 놀랍다. 경상북도 예천에 가면 매운면이라고 있다. 볶음짬뽕이라고 해야 할까. 항아리 뚜껑 같은 접시 가득히 국물이 없는 짬뽕이 나온다. 이름도 단순하게 매운면이라고 불린다. 이것을 먹으려면 시내의 중국집에 가면 되는데 예천 중국집의 특징은 OO반점이 아니라 OO식당이다. 외관이 백반집 같아 보여도 중국집이고 대체로 맛있다.

이 음식이 그대로 대구로 가면 야끼우동으로 불린다. 그리고 경상북도 거창과 전라북도 정읍에 가면 비빔짬뽕으로 팔린다. 국물이 자박한 비빔짬뽕은 집마다 맛과 느낌은 조금 다르다. 전라북도의 비빔짬뽕 내지 볶음짬뽕은 같은 지역의 물짜장과 비슷하다. 물짜장도 생소할 것이다. 전주나 군산, 남원에 가서 물짜장을 찾으라. 나름 지역 전문가 냄새를 풍길 수 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지리산에 올라가다 보면 운봉읍이라고 제법 큰 거리가 있다. 지리산 중턱 오지로 보여도 인구들이 꽤 있고 귀농·귀촌 장소로 선호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냥 배고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할아버지가 웍질을 하던 중국집에서 인생 짬뽕을 맛본 적이 있다. 재료나 불맛 모두 특이할 게 없지만 초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첫 짬뽕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갑자기 어릴 적 살던 서울 청량리의 거리가 막 떠올랐다. 전화국 옆 중국집에서 이 맛을 느꼈었는데 여기서 이 맛을? 아마 40~50년 전의 조리법을 썼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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