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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고추장 양념구이 오징어+삼겹살, 음식 ‘오징어게임’ 생존자는?[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백종원의 오징어 게임이 펼쳐진다
연탄 고추장 양념구이 오징어+삼겹살, 과연 살아남는 자는 누구?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2021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어류는 오징어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징어는 문화권에 따라 호오가 엇갈리는 식재료다. 전통적으로 영미권에서는 오징어는 식탁에서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다만 유럽에서도 지중해 연안 국가, 즉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같은 나라들은 오징어를 즐겨 먹었고 의외로 러시아에서도 먹는다. 물론 한국과 일본, 중국 해안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다. 회로, 찜으로, 구이로, 튀김으로 다양하게 먹는다. 물론 한국에서는 말린 오징어, 반건조 오징어를 빼놓으면 서운할 사람도 많을 거다.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그런 오징어가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트가 되어 온 지구를 떠들썩하게 하다니. 감개무량한 일이다. 아쉬운 건 드라마를 아무리 자세히 봐도 오징어를 먹는 장면은 한 번도 안 나온다는 것. 심지어 생선가게가 중요한 배경으로 나오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백종원의 사계’에서 준비했다. 동해안의 늦가을 별미 오징어.

요즘은 기후변화로 서해에서도 오징어가 잡히지만 오징어 하면 그래도 동해다. 한때 인공위성에서 보이는 인공 구조물은 만리장성뿐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인공위성을 타 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거짓말이라는 게 밝혀졌다.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고, 한국 동해안의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뿜는 불빛은 선명하게 보이더라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우리 조상들은 오징어를 많이 먹기는 했으되 그리 귀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 흔해서 그랬던 것 같다. 다산 정약용은 오측어행(烏鰂魚行)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백로와 오징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시에서 백로는 품행이 뛰어난 선비를 뜻하고, 오징어는 악당을 뜻한다. 타협을 모르는 백로는 오징어의 유혹에 전혀 넘어가지 않는다.

오징어가 화를 내고 먹물을 뿜으면서 / 烏鰂含墨噀且嗔
멍청하다 너야말로 굶어 죽어 마땅하리 / 愚哉汝鷺當餓死

안에 먹물이 있다는 게 속이 시커멓다는 뜻으로 해석된 것일까. 오징어 입장에선 억울할 뿐이다. 심지어 오징어를 부르는 옛 이름 중에는 오적어(烏賊魚)라는 것도 있었는데, 글자 그대로 ‘까마귀를 도둑질하는 물고기’란 뜻이다. 죽은 척하고 물 위에 떠 있다가 까마귀가 오징어를 먹으러 내려오면 오히려 다리로 까마귀를 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음흉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이 이야기는 한·중·일 3국에 모두 퍼져 있다). 이 역시 누군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니 오징어는 역시 억울하다.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어쨌든 도착한 속초 청초호. 백종원 대표 앞에 곱게 떠진 오징어 회가 누웠다. 오징어 회는 오징어를 돌돌 말아 얇은 국수처럼 써는 게 일반적. 일명 ‘오징어국수’라고도 불린다(같은 의미로 일본에서는 이런 오징어 회를 이카소멘이라고도 부른다. 이카는 일본어로 오징어를 말하고 소멘은 바로 소면). 하지만 속초 현희네 횟집은 생선 회 뜬 것처럼 얇고 넓게 회를 친다. 접시 뒷면이 비칠 듯 말 듯 한게 복어회를 연상시킬 정도. 국수 같은 회는 쫄깃쫄깃 씹는 질감이 좋고, 얇고 넓은 회는 부드러움이 앞선다.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회도 회지만 사실 이날의 목표는 연탄불에 구운 오징어를 맛보자는 거였다. 일단 통구이. 잘잘 씻은 생물 오징어를 다리의 빨판(흡반)만 칼로 훑어 제거한 뒤 바로 석쇠에 올린다. 내장이 몸속에 있는 그대로 굽는 것이 핵심. 뜨거운 연탄불 위에 놓이면 오징어 몸속의 내장과 먹물은 한데 녹아내려서 끓으며 걸쭉한 황토색 소스로 변한다.

잘 구워진 오징어 몸통을 이 녹아내린 내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크아. 감탄이 절로 난다. 횟집에서는 흔히 통찜을 안주로 내는데, 아무래도 거죽이 바삭할 정도까지 구워진 오징어 살 맛과 쪄낸 오징어의 살 맛은 처음부터 식감이 다르다. 찜은 구이를 이기지 못한다. “제철,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라고 백종원 대표도 거듭 강조한다. 캠핑족들에게 인기 있을 만한 메뉴.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오징어 내장의 진한 맛은 중국의 오랜 기록에도 남아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송나라의 명제(明帝) 유욱(劉彧)은 꿀에 채운 오징어 창자(蜜浸鱁鮧)를 너무나 좋아해 한번 먹으면 몇 되씩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 오징어 내장은 중국 한나라 무제도 좋아했는데, 날 내장이 아니라 땅을 파고 묻어 숙성시킨 뒤 먹는 것이 인기였다. 이 내장을 젓갈처럼 먹었는지, 아니면 다시 불에 익혀 먹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몸통보다 훨씬 진한 맛을 즐겼던 건 분명하다.

통구이에 이어 백종원 대표가 준비한 하이라이트는 특제 소스를 장착한 오삼불고기. 고추장과 간장, 물엿과 설탕, 파 마늘 등 갖은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고, 그 양념장에 손질한 오징어를 담가 석쇠에 굽는다. 이때 핵심은 양념장의 농도. 너무 묽으면 흘러내리고 너무 되면 골고루 발라지지 않는다. 오징어의 온몸에 잘 발라진 양념장 중 일부는 오징어 몸속으로 스며들고, 대부분은 오징어의 거죽에 달라붙으며 열기에 말라 막을 형성한다. 그 양념이 살짝 탄듯한 냄새를 풍기면서 고소한 오징어에 매콤달콤한 맛을 입힌다면….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오징어. 인터넷 캡처

여기에 삼겹살까지 추가하면 금상첨화. 원래 석쇠에 삼겹살을 끼우고 먼저 굽다가 삼겹살의 앞뒤로 양념장을 바른 오징어를 둘러준 뒤 통째로 불에 올려 같이 굽는 게 좋다. 석쇠를 위아래로 뒤집을 때마다 삼겹살에도 오징어 양념이 스미고,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은 오징어 겉면에 윤기를 입히고, 바다와 육지의 대표 단백질이 사이좋게 연탄불 위에서 하나가 된다.

맛을 봤다. 시중에서도 오삼불고기라는 메뉴는 그리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철판 위에서 오징이와 돼지고기를 파, 양파, 마늘 등과 함께 고추장 양념에 볶은 것을 말한다. 오징어와 삼겹살의 궁합이 좋기 때문인데, 석쇠에 구운 오삼불고기를 먹고 나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연탄불에 구운 오삼불고기를 함부로 먹으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철판에 볶은 오삼불고기가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백종원 대표와 화덕 앞에 모여든 제작진은 석쇠에 구운 오삼불고기 맛에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연출진 중 한 사람의 입에선 “저 다음 주부터 촬영 안 나올 겁니다. 연탄 오삼불고기 전문점 차리려고요.” 적당한 불 향과 양념 맛, 그리고 제철 오징이와 바삭한 삼겹살의 맛이 어우러진 기막힌 조화다. 이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동해안으로 달려가 불 위의 오징어 게임을 즐겨보시길.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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