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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 편승 ‘망사용료 부과법’…졸속 입법이 ‘부메랑’ 될수도 [Law談-구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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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급부상으로 인터넷 트래픽 양이 크게 늘었다. 이에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업자(ISP)와 콘텐트사업자(CP) 사이에 트래픽 증가를 둘러싼 이해 관계의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법적 분쟁으로도 이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소송이다.

망 사용료를 둘러싸고 통신 사업자와 콘텐트 사업자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망 사용료를 둘러싸고 통신 사업자와 콘텐트 사업자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일부 국회의원 등은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이라는 프레임 하에 망사용료 강제 부과 법안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위 법안들의 전제나 개념의 정확성 및 위 법안들이 법 체계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 향후 국내 CP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심각하다.

전제의 오류…‘망 이용 대가’ 개념의 불명확성 및 부당성

국회에 제출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들은 ‘망 이용에 대한 대가’ 또는 ‘망 이용 대가’(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안), ‘통신망 이용료’(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망 사용료’(김상희 민주당 의원안) 등 표현은 다르지만, 제안 이유에서 모두 CP가 ISP의 정보통신망 이용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전기통신사업법 어디에도 망 이용 대가 또는 이와 유사한 표현을 정의하고 있지 않다. 개정안들도 이러한 대가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과연 CP가 최종 이용자에게 콘텐트를 전송하는 것이 ISP의 전기통신 역무를 이용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최종 이용자는 인터넷상의 데이터 등을 송·수신하기 위해 ISP에 이용 요금을 지불한다. 이러한 이용 요금은 기술 및 콘텐트의 발전에 따라 점차 상승해 왔다. 즉 최종 이용자가 ISP에 비싼 이용 요금을 지불하는 것은 인터넷에 있는 양질·고품질의 콘텐트를 즐기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CP의 콘텐트는 이러한 최종 이용자의 요청이 없는 한 절대로 최종 이용자가 가입한 ISP의 망을 통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기통신 역무의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최종 이용자가 ISP의 인터넷접속 역무를 이용해 콘텐트를 전송받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CP가 어떠한 전기통신 역무를 이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전 세계 수많은 이용자가 한국 CP인 하이브의 BTS 관련 콘텐트를 요청·이용한다고 해서 하이브가 전 세계 각국의 ISP에 대가를 지급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당연하다.

SK브로드밴드는 민법의 부당이득반환 법리에 의거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청구를 위한 반소를 제기했다. 지난 9월30일 반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으로 향하는 소송인단. SK브로드밴드 제공

SK브로드밴드는 민법의 부당이득반환 법리에 의거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청구를 위한 반소를 제기했다. 지난 9월30일 반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고등법원으로 향하는 소송인단. SK브로드밴드 제공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 위반 우려 

개정안 중 전혜숙 의원안과 김영식 의원안은 특정 행위를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로 규정하기 때문에 위반 시 행정 제재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김상희 의원안도 의무 위반 시 곧바로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정 명령 등 행정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수범자가 용어나 의무사항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논의한 대로 개정안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접속 역무, 정보통신망의 이용과 제공이라는 용어는 법체계에 비춰 명확하지 않다.

각 개정안의 요건을 더 들어가 보면, 개정안들은 ‘정당한 이용 대가’ (김영식 의원안), ‘부당하게’, ‘정당한 이익’, ‘차별’, ‘정당한 사유’ (전혜숙 의원안, 김상희 의원안) 등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을 제시하고 있다. 김영식 의원안에 대한 국회 입법조사관의 검토보고서 역시 ‘정당한 이용 대가’라는 용어가 죄형법정주의 및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다른 개정안들의 용어 사용에도 유사하게 참고될 수 있을 것이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지난달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에서 열린 미디어 오픈 토크에서 망 사용료 논란 등에 관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지난달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에서 열린 미디어 오픈 토크에서 망 사용료 논란 등에 관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평등원칙·사적 자치 원칙 위반 우려

전혜숙 의원안을 제외한 나머지 2개 법안은 ‘제22조의7에 따른 부가통신사업자’, 즉 현재 같은 법 시행령 제30조의 8에서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의 하루 평균 국내 이용자 수가 100만명 이상이고, 같은 기간 국내 트래픽 발생량이 전체 국내 트래픽 발생량의 100분의 1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에게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만일 개정안들의 전제가 최종 이용자에게 콘텐트를 전송하기 위한 대가를 지급하고 이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라는 것이라면, 인터넷상 모든 이용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모든 CP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개정안들의 기준처럼 특정 CP의 국내 이용자 수와 트래픽 발생량이 많다고 해서 계약 체결 및 내용 결정의 자유를 제한당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또 법원의 판결은 ‘개별적·구체적 사안’에 관해 원고와 피고의 ‘의사 표시’를 해석함으로써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확정하는 것인 반면, 법률은 ‘일반적·추상적 사안’에 관해 수범자에게 적용되는 ‘규범’이다. 헌법상 보장된 사적자치의 원칙, 계약 및 영업의 자유에 비춰 볼 때 법률로써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비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내 CP에 부메랑 될 수도

국회 등에서는 국내 CP가 국내 ISP에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하는 반면, 해외 CP는 이를 지급하고 있지 않다는 역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개정안 모두 제안 이유에서 이러한 사정을 지적하고 있다.

최종 이용자에 대한 콘텐트 전송을 별도의 전기통신 역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내 CP도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없으며, 해외 CP가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을 ‘역차별’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같은 논리에서 국내 CP가 전 세계 각국으로 뻗어 나가고 있지만, 각국의 최종 이용자가 이용하는 ISP에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들의 전제대로라면 국내 CP도 외국의 ISP에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국내 CP와의 역차별을 방지함에 있어 타당한 논리인지, 나아가 국내 CP를 도와주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애국심을 내세우거나, 세계 최초임을 자랑하기 위해 졸속 입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로담(Law談) 칼럼 : 구태언의 Tech & Law

기술혁신의 시대에 법 규제는 어떤 철학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전통 산업과 혁신가들의 갈등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해법을 준비해야 하는지 바람직한 관점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크앤로우 부문장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크앤로우 부문장

※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크앤로우 부문장(대한특허변호사회 회장)/대한변협 지식재산권·IT 전문변호사/벤처기업협회 자문위원/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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