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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직전 개최국의 도리”란 靑…中인권 규탄엔 ‘도리도리’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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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2022 베이징 겨울 올림픽 로고 옆을 지나는 중국 베이징 시민. AP=연합뉴스

지난 9일 2022 베이징 겨울 올림픽 로고 옆을 지나는 중국 베이징 시민. AP=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베이징 보이콧 ‘거리두기’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선수단은 참가하지만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호주 방문 중인 지난 13일 “미국 등 어느 나라로부터도 (보이콧)참가 권유를 받은 바가 없고, 한국 정부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대표단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대통령의 직접 언급은 무게감이 다르다.

정답은 없다. 미ㆍ중이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보이콧 동참을 하는 쪽도, 하지 않는 쪽도 득실이 명확하다. 어떤 선택이든 잃는 것은 있고, 어느 쪽의 실을 더 감수할 만 하느냐의 문제다.

미국은 당장 “보이콧 결정 전 동맹들과 협의했다”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명했다. 이런 반응을 정부가 예상 못했을 리 없다. 그러니 그로 인한 결과도 감당하면 된다.

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캔버라 국회의사당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캔버라 국회의사당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다만 정부의 입장에는 중요한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인권이다.

靑 “평화올림픽 기여 도리”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의 발언 직후인 14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독특한 위치에 있다. 한반도 상황이 굉장히 엄중하던 시기에 평창 올림픽에 북한의 참여를 끌어냄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됐다. 베이징 올림픽도 한반도 평화의 올림픽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직전의 올림픽을 개최했던 국가로서 그렇게 되도록 만들 수 있고, 이를 위해 기여하는 도리와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박 수석의 발언 어디에도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의 이유로 든 신장에서 이뤄지는 반인도범죄 등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부에는 어떻게든 베이징 올림픽에 북한을 끌어내 평화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만 도리이자 의무이고,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수호하고 증진하는 것은 도리와 의무가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북한과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작아지는 모습을 보였던 문 정부이기에 더 그렇다.

이와 관련, 지난 16일 외교부 당국자에게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게 미국이 제기한 인권 문제에 동의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그보다 더 큰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인지 물었다.

세계인권의 날인 지난 10일 헐리웃에서 중국 내 인권 문제를 비판하며 베이징 올림픽에 반대하고 보이콧을 촉구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AFP=연합뉴스

세계인권의 날인 지난 10일 헐리웃에서 중국 내 인권 문제를 비판하며 베이징 올림픽에 반대하고 보이콧을 촉구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AFP=연합뉴스

그는 “정부 대표단 참석도 현재 정해진 바가 없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선 인권 문제 때문에, 이에 대한 입장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검토하고 있다거나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보이콧 거부 佛 “인권 규탄은 계속”

미국이 반인도범죄를 이유로 댄 이상 인권 문제에 대한 판단이 나와야 보이콧 여부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대표단 참석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으니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한 검토에 대해서도 말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앞뒤가 바뀐 답이나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달랐다. 장미셸 블랑케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지난 9일 올림픽 보이콧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중국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검찰은 지난 7월 신장 내 위구르족의 강제노동 피해와 관련된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수사를 맡은 건 ‘반인도범죄 전담팀’이었다. 프랑스가 중국 내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예였다.

청와대가 말하는 ‘직전 개최국’으로서의 도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평창 직전에 겨울 올림픽을 치른 러시아(소치)는 도핑 문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제재를 받아 평창 올림픽에 국가 자격으로 선수단도 보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차기 개최국은 폐막식에서 오륜기를 건네받는 하이라이트를 맡지만, 직전 개최국은 특별한 역할이 기대되지는 않는다.

너무 다른 2018 vs 2022

또 평창 올림픽이 열렸던 2018년과 지금의 정세는 너무나 다르다.

당시엔 핵무력 완성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에 관심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평창을 택했고, 미국 역시 호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합훈련 연기 등 문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북한이 보다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기술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미국이 그 많은 제재를 예외로 해주지 않았다면 정부가 공들인 이벤트인 금강산 합동 문화제나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부터 북한 대표단의 방남까지 원활히 이뤄지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북한 대표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북 단일팀 입장시 박수치고 있다. 중앙 포토

지난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북한 대표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북 단일팀 입장시 박수치고 있다. 중앙 포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북한은 IOC의 제재로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자국 소속으로는 선수단조차 보낼 수 없다. 이미 보이콧을 선언했으니, 미국 관료 중 누구도 참석하지 않는다. 베이징 올림픽이 북ㆍ미 간 관여의 기회가 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고려할 가치가 없는(moot) 질문”(15일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이라는 답이 나오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이유가 올림픽이라는 계기만 놓고 당시와 상황을 동일시하며 ‘평창 어게인’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면 이는 큰 외교적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추동하는 게 문 정부의 ‘종전선언 급발진’이라면 더 그렇다.

특히 지금은 임기 말이다. 북한을 어떻게든 끌어내 차기 정부에 대화의 분위기를 넘겨주겠다는 청와대의 의도와 정반대로 ‘한국은 미ㆍ중 사이에서 선택을 해버렸다’는 더 큰 부담만 떠넘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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