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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자 아닌데, 직장선 손배 압박” 백신 미접종 8%의 항변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방역패스를 강화하면서 미접종자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백신 미접종자는 앞으로 식당·카페에서 '혼밥'만 가능하며 PC방 등은 아예 출입이 불가하다.

17일 0시 기준 전국의 백신 2차 접종률은 81.7%다. 성인 접종자는 92%가 넘어간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코로나 완치자 등을 제외하면 자발적 의사로 백신을 거부한 이들의 수는 더 적어진다. 이들은 각종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왜 백신을 거부하고 있을까. 그 ‘8%’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직장서 소송 경고까지..." 미접종자 3인 속앓이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 글로벌 IT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소정(45·가명)씨는 “지금 코로나 백신을 맞는 건 내 몸에 되레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백신을 맞지 않았다. 20대 시절 약을 잘못 복용해 큰 부작용에 시달렸던 이씨는 이후 각종 수술이나 약물 등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씨는 백신 출시 이후 정말로 코로나19 전파 차단에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어느 수준인지 등 각종 자료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계속해서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돌파 감염이 속출하자 그는 백신을 맞지 않기로 정했다. 대신 “충분한 임상 실험을 거치고 부작용에 대한 데이터가 쌓인 뒤, 내 몸에 맞게 처방된 백신은 맞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신은 사회적 비난과 낙인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내 몸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맞는 게 옳다”고 했다.

#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백성현(40·가명)씨는 뇌출혈 부작용을 걱정해 백신을 맞지 않고 있다. 그는 5년 전 지주막하 출혈 수술을 받고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올해 여름 예비군 신분으로 얀센 백신 접종 대상이었던 백씨는 담당의에게 백신을 접종해도 되는지를 물었으나, “부작용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맞는 건 본인의 선택”이라는 답을 들었다.

백씨는 ‘내가 백신을 맞고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결국 백신을 포기했다. 지난 9월 슬로베니아의 한 20세 여성이 얀센 백신 접종 후 뇌출혈과 희소 혈전증으로 사망한 뒤, 얀센 백신이 원인으로 지목돼 사용이 중단된 뉴스도 접했다.

하지만 최근 회사에서 ‘미접종자가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법적인 손해배상과 징계 처리를 하겠다’고 공지하면서 백씨는 백신 접종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그는 “지인을 못 만나거나 영업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건 감내할 수 있지만 마치 미접종자가 확산의 원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내체육시설 단체 회원들이 지난 3일 백신패스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 이들은 정부 지침이 '제5공화국 시절 공포정치'를 떠올린다며 이같은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실내체육시설 단체 회원들이 지난 3일 백신패스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 이들은 정부 지침이 '제5공화국 시절 공포정치'를 떠올린다며 이같은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백신 접종을 둘러싼 갈등은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시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시위. [AFP=뉴스1]

백신 접종을 둘러싼 갈등은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시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시위. [AFP=뉴스1]

'백신 패스' 논란 결국 법정으로

# 변호사 윤정구(42·가명)씨는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전까지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주변에 선언했다. 그 이유는 백신의 효용과 정부 지침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는 정부의 방역 수칙을 충실히 따랐고, ‘음모론’ 같은 걸 믿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1차 접종만으로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을 100%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불신이 시작됐다. 윤씨는 “정부가 백신을 맞으면 안전하다니까 믿고, 오락가락한 방역지침에 아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건 일종의 ‘허딩 이론(herding·소들이 앞서 달려가는 소떼를 쫓아가다 낭떠러지에 빠지는 것을 일컫는 경제 용어)’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백신 부작용 사례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함께 백신에 대한 불안감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명순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성인남녀 1082명(만 19세 이상 69세 이하)을 대상으로 지난달 22~29일까지 실시한 ‘단계적 일상회복 경험에 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추가접종과 지속접종 의향이 없는 이들의 39.8%가 ‘백신접종이 안전하지 않게 느껴져서’라고 응답했다. ‘지난 접종 경험이 불만족스러워서’(33.7%), ‘백신접종의 효과가 크지 않게 느껴져서’(11.2%)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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