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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아이 돌봄 공백 없는 혁신적 시스템 구축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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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12면

[SPECIAL REPORT]
코로나 블루, 마음도 위중하다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왜 소리가 안 들리죠?”

“아, 선생님 마이크가 안 켜졌네요. 그 아래 버튼 보이시죠? 그거 누르세요.”

“그런데, 어디서 위잉~위잉~ 소리가 계속 들리네요. 어떻게 이거 좀 해결해주시겠어요?”

“혹시 옆에서 휴대폰으로 동시 접속하셨나요? 그럴 경우 소리가 도는 하울링 (howling) 현상이 생깁니다. 컴퓨터와 휴대폰 중 하나는 끄셔야 합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막 확산하려던 무렵 병원 세미나 현장에서 의사들끼리의 대화다. 미리 비대면 회의 세팅을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시작하고 나면 시스템상의 소소한 문제들이 생겨 해결까지 15분 이상 걸렸다. 낯선 화상 회의에 다들 불편했다. 그냥 마스크 잘 쓰고 대면 미팅으로 하면 안 되겠냐고 투덜거리는 선생님도 계셨다. 회의를 밥 먹듯이 하는 병원 문화에서 회의 형식의 변화는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대면-비대면 혼합 회의로 타협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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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년 9개월이 지났고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다. 최근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연말 분위기가 우울하다. 그러나 우리는 감염병 세상이 가져다준 비대면 사회에 어느새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이제는 2~3명 만나는 회의도 전혀 거부감 없이 온라인으로 한다. 누구나 온라인 링크를 쏘아 줄 수 있고 어느 누구도 불편함 없이 링크를 열어 장소 불문하고 회의에 참여한다. 큰 저항이 없다. 시스템에 익숙해졌고 편리하고 신속하다. 그래서 회의 수는 더 많아지고 회의 참석 인원은 전보다 배가 됐다.

아이들에게는 비대면 사회가 어떨까. 온라인 수업이 익숙해져 어쩌다 학교 가는 날은 낯설고 반갑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재훈이는 2학기 개학해서 처음 외래에 내원했다.

“요새 가끔씩 등교한다며? 친구들 만나니까 좋겠구나.” 학교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하는 재훈이에게 내가 물었다. “뭐… 별로요. 월, 수 2번 학교 가는데 좀 어색해요. 매일 가면 모를까 어쩌다 한 번 가는 거니까요. 어차피 선생님이 애들하고 말도 못 하게 하고… 재미없어요.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나아요.” 재훈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재훈이는 초등학교 1학년 학교 적응이 힘들어 병원을 찾았던 아이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집중하지 못해 담임선생님께 지적을 많이 받았고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었다. 매사에 느리고 물건도 잘 잃어버렸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와 사회성기술 훈련을 병행했던 아이다.

1학년을 힘겹게 보낸 후 지난해 초 2학년에 올라갔는데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학교에 거의 가지 못했다. 재훈이 엄마는 집에서 화상 수업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컴퓨터 수업 화면에 집중하지 못하고 손과 발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엄마는 아들 옆에 의자를 두고 나란히 앉아 아이가 컴퓨터 수업 화면에 집중하도록 단속을 했다.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재훈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 차라리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머님, 재훈이가 학교 안 가는 게 오히려 마음이 놓이신다고요?”

“네… 얘가 집에서 이렇게 집중 못 하고 학습 못 따라가는 모습을 보니 1학년 담임선생님이 재훈이에 대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재훈 엄마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이가 수업 중에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옆에서 제가 도와줄 수도 있고 즉각 관리해 줄 수 있으니 제 마음이 편하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지적받고 친구들하고 문제 생긴 이야기 안 들어서 좋구요.” 엄마는 아이가 등교 안 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안도하는 것 같았다.

반면, 초등학교 4학년 희성이는 2학기 개학 후 위드코로나로 등교한 소감을 묻자 재훈이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학교 가니 너무 좋아요. 친구들과 축구도 했어요.” 희성이도 같은 ADHD로 치료 중이다. 증상이 경미해서 행동요법과 부모교육 몇 차례만으로도 많이 좋아진 상태이다. 지난 2년간 학교에 가지 못해 심심하고 속상하다고 노래를 불렀다. 희성이는 친구 관계가 좋고 반에 단짝 친구도 있다. 학교가 재밌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확진자 증가로 다시 등교할 수 없게 되자 급격히 우울해 했다.

“친구들과 온라인으로라도 만나서 대화하지 그래?” 풀이 죽은 희성이에게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그렇죠? 그래도 되죠? 근데 엄마는 제가 컴퓨터 앞에 있으면 게임하는 줄 알고 맨날 뭐라 하거든요.” 희성이는 엄마에게 눈을 살짝 흘기며 억울한 듯 말했다.

발달장애인 활동지원 확대 절차 복잡

“게임할 수 있지 뭐.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팀 짜서 게임한다면 좋을 것 같아. 장소가 사이버일 뿐 친구와 교류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게임한다면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게임이 더 좋을 것 같아.”

“네. 밖에서 노는 게 더 좋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놀게요. 엄마 들었지? 선생님은 친구들과 게임해도 된다고 하시잖아.” 희성이는 든든한 우군을 얻은 듯 목소리가 커졌다.

앞의 사례 재훈이처럼 학교에서 적응이 힘들 경우 비대면 사회가 오히려 기회가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재훈이 엄마의 말처럼 본인이 옆에 앉아서 잘 관리해 줄 수 있으니 다행인 걸까? 엄마가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안 받아도 되는 것에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재훈이의 경우 상황을 피하고 있는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재훈이 엄마가 옆에서 아이의 학습을 도와주고 관리해 주는 것은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조절하고 참는 능력은 길러 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시기는 재훈이에게 주변의 부정적 평가를 멈추게 한 방패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자신의 조절 역량을 좀 더 함양할 시간을 번 것이다.

며칠 전(12월 10일) 통계청은 ‘한국의 사회동향 2021’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학습 환경 변화로 나타난 교육 격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안타깝게도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온라인 수업에서 이해하지 못한 학습 내용을 그대로 넘어간 아이들의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맞벌이 부모의 경우 집에 있는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아동돌봄 취약층도 크게 늘었다. 특수교육지원이 필요한 발달장애 자녀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1년 전 서울의 한 아파트 화재로 15세 발달장애 소년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19가 퍼지고 학교 등교가 전면 중단되면서 특수학교에 가는 시간에 집에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잠시 동생을 돌보기 위해 집에 소년을 혼자 두고 나간 사이 그런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례와 비슷한 발달장애인들의 참사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두 달 사이에 자가격리와 복지센터 휴관으로 갈 곳을 잃은 발달장애인 3명이 추락사한 사건들이 있었다. 국가에서는 발달장애인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하루 3~4시간 정도밖에 제공되지 않는다.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 아이들에게는 비대면 사회가 단지 불편함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활동지원서비스를 늘리기 위한 절차가 너무 복잡해 결국 부모가 생업을 그만두고 장애 아이를 돌봐야만 하는 현실이다. 국가는 가속화된 비대면 사회에서 어떤 대책보다도 최우선적으로 아이들과 발달장애 자녀들의 돌봄 공백을 최소화할 혁신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비대면 사회는 더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팬데믹으로 인해 단시간에 우리 안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지구촌 전체가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다. 가상공간인 메타버스(metaverse)에서 팬미팅을 하고 입학설명회를 한다. 혼자 밥 먹는 아이의 모습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고 온라인 활동이 모든 영역에 걸쳐 확대된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고, 어떤 아이들에겐 위기가 될 수 있다. 이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아이들이 이끌 세상은 어른들이 상상하지 못할 미래가 될 것이다. 어른들의 저항과 방해만 없다면 말이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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