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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살지마" 주례사···조영남이 그런건 이경실 주문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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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42>믿기지 않는 신학대 졸업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를 다니던 시절의 조영남씨. 조씨는 졸업은 했으나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다. [사진 조영남]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를 다니던 시절의 조영남씨. 조씨는 졸업은 했으나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다. [사진 조영남]

시작할 때는 굉장했다. 중앙SUNDAY 연재를 총체적으로 계획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편집진 대표 기자와 나 그렇게 둘만의 계획이었다. 먼저 20호짜리 캔버스에 내가 접했던 사건들과 인물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쭉 적어봤다. 물론 그 중엔 빠진 사람도 있고 추가된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지막 챕터를 정할 땐 정말 의기양양했다. 왜냐. 얼마 전에 배달된 모 월간 잡지에 삼성의 설립자 이병철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꼼꼼하게(일찍이 중국 대륙의 국부이신 손문 선생이 자고로 큰 인물들은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꼼꼼히 세밀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라 했다) 인간은 무엇인가, 종교는 무엇인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왜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성경에 썼는가, 뭐 이런 걸 무려 24가지나 친필로 적어 담당 천주교 정의채 신부님께 물었고 나는 옳다구나 이 문제를 정의채 신부님과 대비해가면서 나 조영남이 답변하는 것으로 써내면 대박일 것이라 생각해 내 속으로 끝편은 걱정 없다 하는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이병철 회장님의 질문은 차동엽 신부(2019년 선종)가 답해 2011년 중앙일보에 보도된 후 이듬해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으로 출판된 적도 있다. 어쨌든 이번 편을 써내고 다음엔 후기(끝말) 식으로 써내면 끝이다.

이병철 회장, 타계 직전 24가지 질문

부랴부랴 이병철 기사가 실린 잡지를 찾아 한번 들추어 보았다. 아! 그런데 큰일이다. 왜 큰일이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24문제 중에 단 한 가지도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첫 질문이 ‘神(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이고 마지막 24번째 질문이 ‘지구의 종말은 정말 오는가’(2019년 월간조선 4월호)이니 빌어먹을! 내가 그런 질문에 무슨 재주로 답변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와! 그런데 답변을 하는 정의채 신부님은 참으로 대단하셨다. 정말 신부 같아 보였다. 영혼 같은 극히 SF 적 질문에 일일이 매 꼭지마다 대답을 해주셨는데 그건 내가 미국 플로리다에서 신학대학에 다닐 때 징그럽게 들었던 답변과 매우 흡사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 학교를 어떻게 졸업했는지 모르겠다. 누가 믿겠는가. 나는 처음 1년 동안은 윌리엄 교수와 또 한 명 도서관학 담당이셨던 몸집 큰 여교수(이름은 잊었다)를 밤에 잠들기 전 매일 밤 어떻게 죽일까, 주먹으로 때려서 죽일까, 찔러서 죽일까, 별의별 공상을 다 해봤다. 너무 증오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잠시 다녔다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보잘것없는 학교였는데 보수 침례 계통의 학교라서 규율이 엄했다. 삼엄했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남학생의 머리털이 귀를 덮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 하고 여학생과 앉을 때도 한 책상 걸러(꼭 요즘 코로나 시대의 영화관 같은) 앉아야 한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매일 채플(공동 예배시간)이 있는데 머리끝이 의자 끝에 닿으면 어김없이 개인 로커에 빨간 딱지가 날아오는 것이다. 그런 훈육 담당이 윌리엄 교수였고 도서관학의 여교수는 리포트를 수업 끝 벨소리가 난 후에 제출했다고 무효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우리나라 같았으면 외국 학생이 처음 들어왔으면 얼마나 배려를 해줬을까? 그래서 나는 1년을 더 꿇어야 했다. 빨간 딱지가 여러 장 붙어 있으면 그 학생은 소리소문없이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잘린 것이다. 인정사정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맨날 사랑이 어쩌고 구원이 어쩌고 예배를 드린다. 내가 만약 노래라도 할 줄 몰랐다면 나는 몇 달 못 가서 퇴학감이었다. 신학교에서는 늘 채플이 있기 때문에 그 학교에 성가를 잘 부르는 학생이 있느냐 없느냐가 큰 관건인데 나는 노래 잘하는 유일한 동양 학생으로 이름이 났기 때문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이외에도 나는 잘릴 수 있는 기회가 수두룩했다. 우선 구약성경에 첫 장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어쩌구 할 때 나는 질문을 했다. 왜 동양에는 김씨 이씨 조씨가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엔 성이 없느냐(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교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걸핏하면 교수들이 물었다. 나의 질문이 비종교적일 때마다 나한테 묻곤 했다. 이병철 어르신의 질문처럼 너는 신의 존재를 믿느냐. 나의 대답은 아이 돈 노 써! 너는 예수님이 너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믿느냐.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I don’t know Sir!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기에 정직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왼쪽)은 1987년 타계 직전 신과 인간에 관한 24개 질문을 세상에 남겼다. 그에 대한 가톨릭 정의채 몬시뇰(오른쪽)의 답변이 2019년 한 월간지에 실렸다. [중앙포토]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왼쪽)은 1987년 타계 직전 신과 인간에 관한 24개 질문을 세상에 남겼다. 그에 대한 가톨릭 정의채 몬시뇰(오른쪽)의 답변이 2019년 한 월간지에 실렸다. [중앙포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졸업생 중에 목사를 안 하겠다는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교수가 너는 실컷 공부를 해놓고 왜 목사를 안 한다는 거냐. 내가 대답했다. 나는 목사 체질이 아니다. 만일 내가 설교를 하다가 옆문 쪽으로 들어오는 예쁜 여성을 본다면 나는 설교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횡설수설할 것이다. 그러자 반 학생 전체가 크게 웃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동급생들이 나한테 와서 “야! 나도 마찬가지야. 인마”라고들 했다. 이런 녀석들이 지금 미국 남부 지방에서 유명 목사로 활약 중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다닐 때까지(가수가 되기 전까지) 나는 소위 모태신앙 출신답게 학교와 교회당만 왔다 갔다 했다. 지금은 12월이다. 그때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전국적인 축제였다. 종교를 초월한 대축제였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엔 명동엘 나가는 것이 축제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명동이 인파로 미어져 사람들 무리 속에서 떠밀려 다니는 셈이었다.

내가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여의도 전도 대회 한참 후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물론 한때였지만 비행기에서 김포공항을 향해 갈 때 하늘에서 서울의 모양을 내려다보면 빨간색 천지였다. 교회 탑에 붙은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가 온통 빨간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빌리 그레이엄 지도자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와 밀라노 그리고 내 동생 영수가 공부하던 독일의 몇몇 도시를 방문하면서 심각한 상황을 목격한다. 못 볼 걸 본 셈이다. 파리의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을 보면서 시작된 일인데 벌써 30여 년 전인데도 그랬다. 성당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의 단골 관광장소로 이미 변해 있는 것이었다.

이게 웬일인가! 밀라노에 가서도 독일에 가서도 모든 성당들은 동사무소 같은 장소로 변해 있었다. 성불사에 불국사처럼(?) 변해 있었던 거다. 그때 나는 아하! 종교도 기울어질 수 있구나, 유행일 수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이 내용이 무슨 소용 있으랴만 요즘엔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보면 붉은 십자가 표시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주례 청탁 오면 “나만큼만 살아봐라”

마찬가지다. 나 역시 늙어 죽어가는 몸이 되었다. 나보다 먼저 죽은 친구들도 숱하게 많다. 남자의 경우 딱 두 가지 타입이다. 한가지 부류는 돈을 벌다가 죽는 부류, 또 한가지는 돈을 잔뜩 벌어놓고 죽는 경우다. 번 돈을 다 쓰고 죽는 사람을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지금으로선 두 번째 언저리쯤에서 끝막음을 할지 모른다.

정선희가 말했듯이 나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다. 나 혼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몇 년 전 이경실이 나한테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다. 물론 몇 번 사양했다. 어떻게 감히 주례를 할 수 있느냐,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왔는데, 그랬더니 이경실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럼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 그래서 주례를 섰고 그대로 시키는 대로 했다. 이제 만약 누가 나한테 주례를 부탁해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나처럼 만큼만 살아봐라.” 또 돌멩이 짱돌 날아오는 소리. 휙휙 휭휭 퍽퍽!

이병철 어르신이 궁금해하셨던 지구에 종말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당최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딱 하나(그것 외에는 확실히 아는 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언젠가 내가 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죽어보면 이병철 어르신의 24가지 질문에 제대로 답하게 될 것 같다.  〈계속〉

P. S. 맞아 죽어도 이젠 한 번만 더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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