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12cm…남녀가 춤출 때 이상적인 키 차이라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70)

처음 댄스를 배울 때는 오래 된 선배나 춤 잘 추는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면 그것이 정설인 양 받아 들였다. 그중 하나가 “남녀의 키 차이는 12cm가 이상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12cm커야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키가 160cm 초반인 나는 140cm 대 여성을 만나냐 한다는 말이 된다. 내 또래의 여성은 대개 150cm 대이므로 140cm대 여성은 찾기 어렵다. 반대로 여성으론 좀 큰 키인 170cm 대라면 남자는 180~190cm 대를 만나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키가 큰 여성은 상대 남성 파트너를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키 작은 남성이나 키 큰 여성은 아예 댄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좌절감을 안길 수 있는 문제였다. 지금은 남녀의 키가 더 커졌고 키가 큰 여성이 많다. 어쩌란 말인가?

우리나라 댄스 계엔 남녀의 이상적인 키 차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불필요하게 상식화 되어 있다. [사진 pxhere]

우리나라 댄스 계엔 남녀의 이상적인 키 차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불필요하게 상식화 되어 있다. [사진 pxhere]

이 설의 유래를 찾아 어느 책, 어디 누가 얘기한 것인가를 찾아 봤다. 그 당시만 해도 춤추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라 어렵지 않게 소스를 찾게 되었다. 우리나라 댄스계에서 잘 알려진 원로였다. 12cm의 근거에 대해 물었다. 자기와 아내인 파트너의 키 차이가 12cm라는 것이었다. 가장 춤추기 좋고 보기에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녀 12cm 차이를 충족시키는 조건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댄스를 운동이나 취미, 여가 활동으로 즐기려는 일반인에게는 좌절을 안기는 일이었다.

나는 댄스하는 남녀의 키 차이에 대해 유럽 선수를 주목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 커플을 자주 보는 데 인터뷰할 때마다 반드시 이 문제를 놓고 그들의 답을 주시했다.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빌라나, 마시모, 피노처럼 키는 170cm 내외로 작지만, 당시 세계적인 선수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로베르토 빌라와 마시모는 직접 만날 일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둘 다 파트너의 키가 비슷하다며 키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선수도 그런데 일반 동호인이라면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객관적인 답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키 문제는 우리나라 댄스계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학원에서 동호인끼리 파트너를 정할 때도 그렇지만, 경기 대회에 나갈 때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야 둘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학원 강사도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고 경기 대회에서 점수를 매기는 심사위원도 당연히 남녀의 이상적인 키 차이라는 그림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동호인 수준에서 남녀의 키 차이 정도는 큰 문제없이 댄스를 즐길 수 있다. 다만 여성이 남성보다 크거나 하면 덩치도 큰 편이어서 리드하는데 힘이 더 든다는 정도의 애로 사항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춤에 능숙한 여성은 남성이 키가 작더라도 별 무리 없이 잘 춘다.

경기대회에 나가다보니 그동안 댄스 계에 잘못 알려진 정보를 제대로 알게 됐다. 모던댄스의 시작 방향이 반드시 오른쪽일 필요가 없다는 것도 대표적인 예다. [사진 pxhere]

경기대회에 나가다보니 그동안 댄스 계에 잘못 알려진 정보를 제대로 알게 됐다. 모던댄스의 시작 방향이 반드시 오른쪽일 필요가 없다는 것도 대표적인 예다. [사진 pxhere]

댄스스포츠의 본 고장은 영국이다. 나라마다 지방마다 춤이 달라 같이 추기 어렵던 것을 영국 사람들이 통일시켜 체계화했다. 그 국제 댄스 기구로 ISTD, IDTA, BATD 같은 기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용어의 해석에 대한 오류도 있다. ISTD는 ‘Imperial Society of Teachers of Dancing’의 약자이다. 1904년 영국에서 설립돼 오늘날 댄스스포츠 기초 체계를 만든 권위있는 국제 민간 기구다. 그런데 ISTD가 ‘영국 황실무도교사협회’라고 번역되고 있다. 지금도 각종 책자 등 인쇄물이나 인터넷 자료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자격증을 딴 사람이 많다. 명함이나 이들의 프로필에는 ‘영국 황실무도교사협회’라고 쓴다. 영국 황실이라면 상당히 권위 있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백작이나 후작, 공작 등 귀족의 작위는 아니더라도 그런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것이다. 영국 황실에서 얼마나 관여하고 운영하는지 관심도 생겼다. 한편으로는 어딘지 영국 황실이 그런 조직까지 관여할 것 같지 않다는 의구심도 생겼다. 그래서 영국 황실에 대해 알아보니 영국 문화원을 연결해줬다. 영국 문화원에서 온 답변은 ‘ISTD’는 영국 황실과는 관계없고 ‘Imperial’의 오역은 100년 전 영국은 ’대영제국(The British Empire)‘이었으므로 거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답이었다. ’Imperial‘의 해석은 ’황제의‘라는 뜻도 있지만, ’제국의‘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그냥 ISTD라는 약칭을 가진 영국댄스협회 정도로 해석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ISTD 본부에 직접 메일을 보내 알아봤다. 거기서도 같은 대답이었다. 영국에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갔을 때 마침 ISTD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일본인 지인에게 물어 보니 일본에서도 황실로 해석하지는 않고 그냥 ’ISTD‘로 쓴다는 답이 왔다. 당시 대학에서 제자들에게 댄스 강의를 하던 교수에게도 물어 봤더니 그동안 의심 없이 ‘영국황실무도교사협회’라고 가르쳤고 바로 잡아야겠다는 반응이었다. 만약 오역이 잘못 전수되서는 안 되지만, 나중에는 영국 황실에서 정식으로 허위 사칭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BATD도 있다. 'British Association of Teachers of Dancing'의 약자다. 역시 영국황실무도교사협회 명함을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기구는 스코틀란드 글라스고우에 본부를 둔 시험기관으로 1892년에 만들어졌다.

IDTA는 ‘International Dance Teachers Association’의 약자로 국제댄스스포츠지도자협회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잉글랜드 브라이튼에 주소를 두고 교습과 시험을 주도하는 기구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댄스교습 기관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영국황실과 관계 없다.

이들 기구가 실시하는 시험은 영국 현지에서도 하지만, 기구에 따라 한국에서도 현지 심사관 또는 국내 인증받은 심사관이 파견되어 심사를 하고 있다. 이들 세 기구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다.

경기대회에 자주 나가면서 알게 된 사실도 있다. 그전에는 모던 댄스는 반드시 오른쪽 모서리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왈츠에서 예비보-내추럴 턴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가장 중요한 동작이라며 반드시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수많은 선수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경기 대회에서는 모두가 시작하는 지점이 같다면 서로 엉킬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공간을 두고 다른 지점에서 다른 휘겨로 시작해도 되는 것이다. 심지어 반대 방향 모서리부터 시작해도 된다. 앞쪽 모서리 부분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댄스를 제대로 모른다거나 감점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시작하지 않더라도 심사위원은 플로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춤을 추는 선수의 기량을 충분히 테스트할 수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