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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시간강사가 무슨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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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경력 의혹과 관련해 취재진에게 해명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경력 의혹과 관련해 취재진에게 해명하고 있다.

윤석열 "전공 보는 공개채용 아냐"

"강사 이상한 사람 됐다" 사과 요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경력 의혹을 해명하며 한 발언의 불똥이 대학 강사들에게 튀었다. 김 씨는 2007년 수원여대 겸임교수 지원서 등의 경력사항이 논란에 휩싸였다. 사과의 뜻을 밝히기 전 윤 후보는 “겸임교수라는 건 시간강사”라며 “시간강사라는 건 전공 이런 걸 봐서 공개채용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기자들에게 “시간강사는 공개 채용하는 게 아니니 가까운 사람 중 대학 관계자가 있으면 물어보시라”고도 했다.

 현직 시간강사들에게 물어봤다. 2019년 8월 법이 바뀌며 ‘시간강사’ 명칭은 ‘강사’가 됐다. 전국 대학 강사는 약 4만5000명. 한 지방국립대 강사는 “시간강사를 하려면 최소 학력이 석사 이상인데, 박사과정이거나 박사를 마친 분이 더 많다”며 “최소 3년에서 유학까지 10년가량 학부 외 공부를 하고 강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사를 전공을 보지 않고 추천으로 뽑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대학원생끼리 경쟁할뿐더러 학생 교육과 직결된 문제라 전공과 관계없이 뽑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했다.

 시간강사는 2019년 개정법에 따라 공개채용이 의무화했다. 이걸 모르는 윤 후보가 2007년을 염두에 두고 말한 걸까. 하지만 강사들의 설명은 달랐다. 한 강사는 “2007년에도 연구실적 등을 다 보고 학과에서 일정한 성과가 있는 분을 뽑았다”며 “법에 있진 않았지만, 학교마다 규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사가 대학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40%나 될 만큼 지금보다 역할이 컸다고 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후보가 겸임교수와 시간강사를 헷갈린 걸까. 윤 후보는 “외부 강사는 위촉하는 것”이라며 “학계에 누가 추천이 있고 하면 그 사람한테 그냥 위촉하는 거고 공개경쟁에 필요한 자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겸임교수라 해도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다른 지방 국립대 강사는 “겸임교수는 현장 실습 등 실기를 맡기 때문에 3년간 현장 경력과 성과가 필요하다. 대학에 따라 위촉하기도, 공채하기도 하지만 위촉도 대학이 필요로 하는 조건에 맞는 사람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추천하고 받아줬다면 학교 비리이고, 허위 경력을 낸 게 사실이라면 지원자의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강사의 처우는 열악하다. 총장 허가 등이 없으면 최대 주 6시간 강의할 수 있는데, 4시간이 일반적이다. 국립대는 시간당 9만원을 주는데, 사립대는 5~6만원 선이다. 방학엔 강의가 없어 4주분 임금을 받는다. 국립대 강사 연봉이 대개 1700만~1800만원 선이고, 사립대는 이보다 낮다. 강사들은 윤 후보의 발언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게 좋아 부업하는 분도 많은데, 대선 후보가 사실 확인도 없이 강사들을 통째로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윤 후보는 강사들에게 속히 사과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윤 후보가 ‘관행’을 언급한 점이다. 윤 후보는 “현실을 잘 보고 관행이라든가, 이런 것에 비춰 어떤 건지 물어보고 하라”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추천받아 겸임교수가 된 게 관행이면 괜찮다는 사고는 국민의 잣대와 동떨어져 있다. 한 강사는 “2007년 대학과 지금 대학이 다른가. 모두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다. 시골 동네에 의사가 없으면 자격 없는 사람이 의사라며 진료해도 되는 건가. 자격 있는 사람이 가르치는 게 상식이고, 편법을 관행이라 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조국 사태 때도 '관행'에 비판 쇄도

 관행이라는 반응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허위스펙 관련해서도 나온 바 있다. 정경심 교수 측은 “당시 입시제도 요구에 따랐을 뿐 불공정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국 백서』 저자들도 “관행이자 사회문제 탓”이라고 했다. 당시  ‘대입 스펙 품앗이’가 있었지만 허위가 개입한 일을 관행으로 치부한 태도가 더 큰 공분을 샀다. 더욱이 일반인은 권력자나 특정 계층만 공유하는 관행을 특혜로 받아들인다. 그 수사를 지휘한 윤 후보가 관행 운운하니 ‘내로남불’ 비판이 커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아들이 불법 도박을 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아들이 불법 도박을 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아들도 처벌 여부 가려야  

 가족과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아들의 불법 도박 문제도 드러났다. 2019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상습적으로 불법 도박을 했다는 보도에 이 후보는 인정하고 사과했다. 지지율 선두를 다투는 두 후보의 가족 의혹에 “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느냐”는 한탄이 나온다. 문제가 불거지면 사과하고 넘어가면 된다는 게 정치권의 관행인가.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면 의혹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 윤 후보는 부인 의혹 검증에 성실히 임하고, 이 후보는 자신이 밝힌 대로 아들이 형사처벌 대상인지 서둘러 판단 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