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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행그리" 엉뚱천재…한국계 클로이 김 뒤흔든 짧은 악플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미국 패션지 행사에 참석한 클로이 김. AFP=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패션지 행사에 참석한 클로이 김. AFP=연합뉴스

성공은 때론 실패의 지름길이 된다. 어린 나이에 일군, 때이른 성공일수록 더 그렇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의 스타였던 한국계 미국인 스노우보딩 선수 클로이 김에게도 비슷한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 생인 클로이 김은 평창에서 하프파이프 부문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이 부문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세우며 ‘천재 소녀’로 불렸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게재한 클로이 김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금메달을 건 뒤부터 클로이에겐 성공이 숨막히는 동앗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압박이 너무 심했던 터라 은퇴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올해 만 21세인 그는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다. 두달 뒤로 바짝 다가온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도 성조기를 달고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그를 지켜보는 미국 국민의 마음은 흡사 한국 국민이 한마음으로 김연아 선수를 응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클로이 김의 2018년 평창에서의 금빛 경기. AP=연합뉴스

한국계 미국인인 클로이 김의 2018년 평창에서의 금빛 경기. AP=연합뉴스

다부지고 조금은 엉뚱한 구석도 있는 노력파 천재소녀라는 점에서도 클로이 김과 김연아 선수는 닮은 꼴이다. 2018년 평창에서 경기를 얼마 앞두고 자신의 트위터에 “아침으로 나온 샌드위치를 다 먹을 걸, 내 고집스러움 때문에 안먹었더니 아 진짜 지금 행그리(hangry)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행그리’는 “배고프고 짜증난다(hungry+angry)”는 합성어다. 행그리함을 이겨내고 그는 금빛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행복은 거기까지. 그는 NYT에 “금메달 따기 전까지는 그냥 경기하는 게 재미있었다”며 “모두가 나를 다 응원해주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았지만 금메달을 딴 뒤엔 ‘너가 계속 잘 하나 두고 보자’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올림픽의 저주’가 그에게 찾아온 셈이었다. 최악의 순간은 그에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전해진 악플 DM 메시지였다. “잘난 척하는 OO”라고 적힌 짧은 메시지는 10대 소녀의 멘탈을 뒤흔들었다.

아기 때의 클로이 김 선수. 그는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을 올리며 "나 어릴 땐 좀 귀여웠는데"라고 적었다. [Chloe Kim Instagram]

아기 때의 클로이 김 선수. 그는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을 올리며 "나 어릴 땐 좀 귀여웠는데"라고 적었다. [Chloe Kim Instagram]

엎친데덮친 격으로 훈련 중 발목 부상까지 겪었다. 하지만 영어 속담 중 ‘불행의 탈을 쓴 축복(blessing in disguise)’라는 말처럼, 그에겐 부상이 독 아닌 득이 됐다. 그의 전부와도 같았던 스노우보딩에서 한발 떨어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스노우보드는 잊고 학업에 열중했다. 프린스턴대에 진학해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시작했다. 그는 NYT에 “스노우보드를 하지 않았더라도 나를 아껴줬을 거라고 확신하는 이들을 만났고,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또래 남자친구인 에반 벌 역시 프로 스케이터 출신으로, UCLA 학생이다.

클로이 김과 남자친구, 그리고 둘이 함께 키우는 반려견 리즈. [Chloe Kim Instagram]

클로이 김과 남자친구, 그리고 둘이 함께 키우는 반려견 리즈. [Chloe Kim Instagram]

팬데믹 역시 그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애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타깃이 되면서 그는 특히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그는 NYT에 “부모님이 집밖을 나섰다가 공격을 당할까봐 너무 두려웠다”며 “하도 뉴스를 많이 보며 계속 울어서 남자친구가 ‘이젠 뉴스 금지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이러니컬하게 스노우보드에 대한 애정을 되찾게 됐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 역시 어린 시절 편견에 직면하면서 살아왔다. NYT에 따르면 미국인인 그에게 이웃들이 “아시아인이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의기소침했던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게 스노우보더로서의 재능이었다. 그는 금메달 컴플렉스와 악플의 아픔을 딛고 다시 스노우보드 부츠 끈을 조였다. 다시 경기에 출전한 그는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손쉽게 따냈다. NYT는 “클로이는 여전히 엉뚱하지만 그사이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한 선수로 성장했다”며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그의 도약을 기대해도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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