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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취재기자도 통신조회…공수처 ‘사찰의혹’ 정치권 확산

중앙일보

입력

12월 14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12월 14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취재기자 등 민간인에 대한 마구잡이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 수개월간 종합지와 경제지, 방송사, 통신사 등을 막론하고 최소한 28명의 취재 기자를 대상으로 60여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검찰과 법원, 공수처를 취재하는 법조 기자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 사례만 드러났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취재를 담당하는 정치부 야당 취재 기자들까지 조회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으로도 논란이 확산됐다.

종합지·경제지·방송사·통신사 28명 상대 66건 조회…더 늘 듯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중앙일보 외에 TV조선, 조선일보, 문화일보, 헤럴드경제, CBS노컷뉴스, 뉴시스, 채널A(타 매체는 조회 건수 내림차순) 소속 기자 최소 28명이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공수처로부터 총 66건의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중앙일보 기자 5명을 상대로 공수처는 수사과, 수사2부, 수사3부를 통해 17건을 조회했다. 이 가운데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취재하는 정치팀 소속 기자 1명(세 차례)이 포함돼 있었다. 나머지 4명은 공수처를 포함해 법조를 취재하는 사회1팀 소속이다. 채널A에서도 국민의힘을 취재하는 정치팀 기자 1명에 대해 두 차례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한다.

통신자료란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에 따라 사법부나 수사기관, 정보기관이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통신사나 포털 등에 요구할 수 있는 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해지일 등을 뜻한다. 법원의 허가 없이 통신사실을 조회할 수 있어 사찰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이 경우 통신사 등은 통신자료 제공 사실을 이용자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도 없어, 이용자가 직접 공개를 요청하지 않으면 조회당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다. 언론 사찰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공수처는 “공수처 수사대상인 주요 피의자 중에는 기자들과 통화가 많을 수 있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의 통화내역을 살폈을 뿐이고 피의자들과 취재 목적으로 통화한 기자인 것으로 확인되면 수사 대상에서 배제했다”며 사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 4월 28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특혜채용 의혹 수사에 착수한 것을 시작으로 공수처 사건의 주요 피의자들이 통화한 대상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 필요상 통신자료를 제공받은 것이란 취지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김진욱 공수처장을 포함해 현 정권 고위공직자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한 기자들을 사찰한 게 아니냐”라는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공수처가 수사·내사한 주요 사건 가운데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조사·에스코트 논란 및 이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사건은 모두 언론 보도로 촉발됐기 때문이다.

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관련한 고발 사주 의혹 및 장모 대응 문건 작성 의혹 사건 역시 언론 보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최근 대검찰청 감찰부가 영장 및 참관절차 없이 확보한 윤 후보 재직 당시 대검 대변인의 공용폰 포렌식 결과를 공수처가 압수하기도 했다. 대변인 공용폰은 검찰과 언론의 소통 창구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찰이 아니라고 단언하기에는 중대한 문제점 3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로 공수처에 비판적 보도를 이어왔던 중앙일보, TV조선,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소속 기자들을 집중적으로 조회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기자 개인별로 한 차례가 아니라 수차례(최대 5회 이상)에 걸쳐 반복 조회한 건 특정 기자에 대한 감시 목적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기자뿐만 아니라 공수처에 비판적이었던 김경율 회계사 등에 대한 조회도 동반됐다는 점 역시 그런 의심을 강화한다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공수처 수사 주요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공수처 수사 주요 일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물론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10여년 전부터 논란이 돼왔고 공수처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6년 5월엔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이 “국정원과 경찰, 검찰, 군 등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자료 무단수집 행위는 위헌이고, 근거가 되는 전기통신사업법 조항도 위헌”이라며 청구인 500명을 모아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5년째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센터 대표는 “수사기관 등이 통신자료를 조회할 경우 사전에 영장을 받는 걸 의무화하고 조회 이후엔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등 제도가 하루 빨리 보완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인권수사 표방 공수처까지…마구잡이 조회 심각”

이처럼 통신자료 조회 관련 논란은 수사당국 전반의 문제지만, 인권 수사를 선도하겠다며 탄생한 공수처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이 때문에 더욱 강력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이날 윤 후보 취재기자들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한 데 대해 국민의힘 중앙선대위의 김병민 대변인은 “언론사찰과 민간사찰을 한 공수처는 권력보위처인가”라며 “공수처는 통신자료 조회와 연관된 고위공직자가 누구인지, 혐의사실은 무엇인지, 어떤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수십 차례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인지 국민 앞에 사죄하고 해명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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