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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투석 좀" 울며 전화 300통 돌린다…이게 韓 의료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70대 A씨는 지난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는 15년째 혈액투석을 받아온 말기 신부전증 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투석이 가능한 격리 병상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마냥 대기해야 했다. 당장 월·수·금 정기적으로 받아오던 투석을 못하게 됐다. 몸에 요독(尿毒·소변으로 배출되는 노폐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병상대기 4일째에 이르자 체온이 39도까지 오르더니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보건당국의 병상배정 연락은 오지 않았다.  

A씨 아들·딸 삼남매가 일을 중단하고 전국 병원에 전화를 수십통씩 돌렸다. 이틀 뒤 가까스로 한 요양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하지만 투석을 받던 중 쇼크로 심근경색이 왔다. 투석은 2시간 만에 중단됐다. 담당의는 “폐가 너무 손상돼 더이상 치료가 힘들다”며 “대형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병상이 나오지 않아 옮겨가지 못했다.

A씨 가족은 “(아버지께서) 다행히 의식을 차리시긴 했는데 너무 위태로운 상태”라며 “큰 병원으로 옮겨져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혈액 투석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혈액 투석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에 의료대응이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만성 신부전증 ‘콩팥병’ 환자들이 위기다. 월·수·금이나 화·목·토 이틀 간격으로 투석해야 하는데 병상이 없다. 투석이 밀리면 며칠 안에 상태가 심각해진다. 요독 뿐 아니라 폐에 물이 차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호흡곤란, 장기손상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이달 초 한 70대 혈액투석 환자가 병상 대기 중 심정지가 와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제야 응급실로 옮겨졌고, 뒤늦게 투석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하루도 안 돼 끝내 숨졌다.

"우리 엄마 좀 받아주세요" 울며불며 전화 300통

김모(39)씨의 통화내역. 어머니의 병상을 찾기 위해서 119, 병원, 보건소 등과 4시간동안 50여 번 통화했다. 사진 김씨

김모(39)씨의 통화내역. 어머니의 병상을 찾기 위해서 119, 병원, 보건소 등과 4시간동안 50여 번 통화했다. 사진 김씨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호자들이 확진자를 받아주는 인공신장실을 직접 찾으려 수백 통씩 전화를 돌린다. 김모(39)씨는 “보건소와 병원, 신장학회 등을 합쳐 전화를 300통도 넘게 돌렸다”며 “병원 리스트를 뽑아 놓고 ‘제발 우리 엄마 좀 받아달라’고 울며불며 말해봤지만 투석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 B씨(60대)는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병상 대기 3일째 B씨의 호흡이 가빠졌다. 산소포화도도 떨어졌다. 김씨는 황급히 119에 신고했다. 출동한 구급대원이 B씨가 평소 투석하던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대원이 ‘투석만이라도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다행히 B씨는 마지막 투석일로부터 6일째 되는 날 겨우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경기도 평택 박애병원에 입원, 투석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특화병원은 가동률 97%... 대기만 20~30명

김씨가 투석 환자인 어머니의 병상을 찾기 위해서 전화를 돌리며 적었던 메모. 안 되는 병원 옆에 X표를 쳐 놓았다. 사진 김씨

김씨가 투석 환자인 어머니의 병상을 찾기 위해서 전화를 돌리며 적었던 메모. 안 되는 병원 옆에 X표를 쳐 놓았다. 사진 김씨

투석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에 대비해, 정부는 작년 12월 평택 박애병원을 투석 특화병원으로 지정했다. 이달 초엔 용인 강남병원 등을 추가했다. 그러나 최근 추가된 병원들은 아직 환자를 받을 충분한 준비가 안 된 상황이다. 자연히 기존 병원으로 몰린다. 이미 지난달 말 병상 가동률이 97%에 육박했다. 박애병원은 60개의 격리투석병상을 운영 중이다. 현재 대기 중인 환자가 30명 가량이다. 김씨는 “(병상대기 중엔 정말) 우리 엄마가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심했다”고 전했다.

유성봉 평택 박애병원 진료단장은 “오전, 오후뿐만 아니라 저녁 타임까지 3교대로 투석을 받게 하고 일요일 외래까지 열었는데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신장학회 차원의 의료 지원이 있지만 이미 한계치고 더는 받을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보건소, "보호자가 병상 알아보는 게 빨라"

답답하긴 일선 보건소도 마찬가지다. 응급 환자들에게 줄 병상이 없어서다. “눈앞이 캄캄하다”고 한다. 일부 보건소는 아예 투석환자 보호자들에게 ‘확진자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이 있는지 따로 알아보라’고 요청하는 곳도 있다. 환자 보호자가 먼저 병원 수배를 하면, 거꾸로 보건소에 연락해 병원과 연결해주는 일이 생긴다. 이런 거꾸로된 병상 구하기가 현재 우리 의료체계가 처한 현실이다.

시아버지가 확진된 C씨는 “보건소에서 ‘차라리 병원에 차든 뭐든 타고 가서 눌러앉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C씨의 시아버지는 신부전증으로 아들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았다. 하지만 이마저 기능이 떨어져 투석 중이다. 또 다른 신부전 확진 환자 보호자 역시 “보건소에서 ‘지역 병원에 전화를 돌릴 테니 보호자는 다른 타지역 병원에 전화를 돌려 달라’고 했다”며 “병원과 연락이 되면 보건소에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투석치료는 그만큼 간절하다. C씨는 최근 포털사이트 맘카페에 다급한 글을 올렸다가 한 병원 신장내과 의사가 거꾸로 보호자에게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다. 그는 “신장내과 의사가 퇴근한 간호사까지 깨워 응급실 내 음압병동에서 투석을 2시간 도와줬다. 천운이었다”며 “다른 보호자들을 보니 이제 사방팔방에 매달려서 투석을 받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래 전문 투석실 만들어야"

11월 24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 병원인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 상황실 현황판에 병상가동률이 97%를 가리키고 있다. 뉴스1

11월 24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 병원인 경기도 평택시 박애병원 상황실 현황판에 병상가동률이 97%를 가리키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거점 인공 신장실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철우 대한신장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는 “투석을 못 받아 사망하는 환자가 전국에 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며 “박애병원은 이미 마비 상태다. (정부가) 지역별로 거점 인공 신장실을 만들어 두고 발생하는 투석 확진자를 관리해야 한다. 인력과 장비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애병원의 유 진료단장은 “투석 환자들은 병원 시설을 이용해야 해 재택치료가 불가능하다”며 “확진자를 받는 외래 전문 투석실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경증인 환자를 투석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 치료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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