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강수의 시선

죽음의 중지

중앙일보

입력 2021.12.16 00:32

업데이트 2021.12.1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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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 8일 대전 현충원 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묘지 모습. 전날이 3주기였다. 군 동료들이 가져온 막걸리 한통이 보인다. 왼쪽 하얀 국화 화분은 육사 동기생인 박지만·서향희씨 부부가 보냈다. 조강수 기자

지난 8일 대전 현충원 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묘지 모습. 전날이 3주기였다. 군 동료들이 가져온 막걸리 한통이 보인다. 왼쪽 하얀 국화 화분은 육사 동기생인 박지만·서향희씨 부부가 보냈다. 조강수 기자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는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된다. 12월31일이 지나고 새해 0시부터 전국에서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진 나라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의 파업, 죽음의 실종, 죽음의 중지에 대한 우화다. 처음엔 신의 축복, 선물로 여겨졌던 죽음의 중지는 악몽으로 변한다. 죽음의 결정적 소멸이 불가피하게 복잡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도덕적 문제들을 가져오면서다. 교회가 반발한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이 없고 신도 없다며. 환자들이 무한정 머물게 된 병원은 병상 부족에 직면하고 장례업계는 대량 실직 사태에 따른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한다.
 뒤따르는 재앙 수준의 결과는 잊고 전제 구조만 차용해 죽음의 중지를 실현하면 딱 좋을 대상이 있다.  '수사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먼저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꼽힌다. 2018년 12월 7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오피스텔 13층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다 책임지고 간다며 생을 마감하고 난 후 공소권 없음에 이어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 사건이 2년만에 무혐의로 끝났으니 하는 말이다. 마침 고인의 3주기를 맞은 다음날(8일) 대전 현충원을 찾았다. 묘비가 천지빼까리였고 한 귀퉁이에 장군의 무덤이 있었다. 민간인 친구가 누런 막걸리를 뿌리며 넋두리처럼 내뱉았다. "재수야. 춥다. 오랫만이다. 같이 살았으면 좋을텐데..."
누군가 놔두고간 추모 글귀 가운데 "(군인이) 전장이 아닌 충성을 다 바친 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이라는 대목이 눈에 박혔다.
 수사에 관한 한 늘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말썽이다. 청와대 하명수사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어명이니 사약을 받으라는 것과 반쯤 비슷하다. 2018년 12월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나온 이 전 사령관에게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수갑을 채우고 포토라인에 세웠다.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나흘 뒤 숨졌다. 높은 데 서보면 삶과 죽음의 거리는 아득해 보이나 바닥에 닿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다.
 "수사 과정에서 모멸감을 느낀 것도 있지만 정치적 목적을 갖고 죄인으로 몰아간 데 대한 분노가 더 컸던 것 같다. 특히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며칠 뒤 다시 나오라고 통보하며 김관진 국방장관 등 윗선 보고 여부에 대한 집중 조사를 예고하자 강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석동현 변호사)
 그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 사찰 혐의는 엄중해 보였다. 2014년 4~7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적사항, 무리한 요구사항, 성향, 진도 현장 및 안산 합동분향소 분위기 등을 파악해 세월호 사태의 조기 종결이나 사태 해결, 대통령이나 여당의 지지율 회복에 필요한 각종 제언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실상은 미미했다. '진도 지역 실종자 가족들이 가족들을 위한 구강청결제 대신 죽염을 요구했다'거나 '자녀 생일에 따른 미역국 등 지원 요구' 등 공개된 정보들을 모은 것에 불과했다. 2019년 11월 재수사에 나선 대검 산하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이 올해 1월 무혐의 결정한 이유다. 이는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2018년 11월 "세월호 참사 당시 정국 조기 전환을 위한 출구 마련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회복을 위해 민간인 사찰을 주도했다"며 기무사 참모장 등을 재판에 넘긴 것과 대척점에 서 있다. 이러다보니 재판은 늘어진다. 현재 세월호 유족 사찰 건으로 장성 3명 등 5명이 3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이중 2명은 1심조차 끝나지 않았다. 재판도 오래 끌면 형벌이다. 사법부 적폐 사건으로 지목된 양승태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거래 의혹 역시 기소한지 3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1심이 진행중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이 중지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영장실질심사 당일인 2015년 4월 9일 8명의 명단이 적힌 리스트만 남기고 숨지는 바람에 진실이 묻혔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이기기는 어렵다. 며칠 전 대장동 사건의 키맨인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본부장도 세상을 등졌다. 김학의 전 법무 차관의 성접대 의혹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 수사 지시 역시 불법 출금 사건 수사 무마로 불똥이 튀었다.

수사받던 이재수, 숨진 뒤 무혐의 #성완종 리스트 있지만 진실 묻혀 #대장동 키맨 유한기도 세상 등져 #잘못된 사법시스템 때문 아닌지 #

 공동체의 1차적 의무는 살맛나는 세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 그런가? "세상은 정말 우연과 과오에 의해 지배되는 인정없는 왕국" (『자살에 관한 모든 것』)일 뿐인가. 잘못된 수사·사법시스템이, 우리의 무관심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사자(死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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