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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차에 양동이 들고 몰렸다 숯더미 됐다…아이티 75명 참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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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아이티의 북부 해안도시 카프아이시엥에서 14일(현지시간) 유조트럭이 폭발해 최소 75명이 숨졌다. 수십 명의 주민이 전신 60%에 화상을 입었지만, 쥐스티니엥 대학병원은 의료 물자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남미 아이티의 북부 해안도시 카프아이시엥에서 14일(현지시간) 유조트럭이 폭발해 최소 75명이 숨졌다. 수십 명의 주민이 전신 60%에 화상을 입었지만, 쥐스티니엥 대학병원은 의료 물자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남미의 아이티에서 14일 밤(현지시간) 유조 탱크를 운반하던 트럭이 폭발해 인근 주민 최소 7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올해 7월 현직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갱단의 기승, 빈곤 등으로 신음해온 아이티는 또 다시 최악의 참사를 맞닥뜨렸다.

매체에 따르면 아이티의 북부 해안 도시 카프아이시엥 외곽의 한 마을에서 14일 자정께 휘발유를 실은 유조트럭이 전복됐다. 시 조사에 따르면 트럭은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넘어졌다. 위험을 감지한 운전기사는 즉시 현장을 벗어났지만, 현장 주변에 있던 주민들이 폭발에 희생됐다.

패트릭 알마너 부시장은 “최소 75명이 사망했다”며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명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수십 명이 전신에 60%가량의 화상을 입고 인근 대학병원 등으로 이송됐다. 부상이 심각한 6명은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형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중남미의 아이티 북부도시에서 14일 자정(현지시간) 유조트럭 전복사고로 폭발이 일어나 최소 75명이 사망했다. [트위터 캡처]

중남미의 아이티 북부도시에서 14일 자정(현지시간) 유조트럭 전복사고로 폭발이 일어나 최소 75명이 사망했다. [트위터 캡처]

목격자들에 따르면 트럭 운전기사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극심한 연료 부족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망치와 양동이를 들고 순식간에 유조탱크로 몰려들었다. 인파가 몰린 상황에서 차량에 불이 붙으며 큰 폭발이 일어났다. 불기둥은 최소 100피트(약 30m) 상공까지 치솟았고, 인근의 가옥 약 50채도 화마에 삼켜졌다.

지역 정당 코디네이터인 피렐리 카티우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휘발유를 얻으려던 사람들이 화염에 휩싸였다”며 “너무나 큰 비극”이라고 말했다. 지역 기자 매켄즈 도빌러스는 “어떤 가족은 5명이 산채로 불에 타거나 숯더미가 됐다”고 말했다. 불은 이튿날 정오까지 계속되다가 완전히 꺼졌다.

갱단 장악한 아이티, 석유 가격 급등

중남미 아이티의 북부 도시 카프아이시엥에서 14일(현지시간) 유조트럭 폭발사고가 일었다. 전소된 트럭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남미 아이티의 북부 도시 카프아이시엥에서 14일(현지시간) 유조트럭 폭발사고가 일었다. 전소된 트럭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카프아이시엥은 아이티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사고가 난 외곽 지역은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빈민 지역이라고 한다. 지난 7월 조베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혼란에 빠진 아이티는 극도의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다.

갱단이 주요 항구를 장악, 연료 선적을 하려는 유조트럭들을 통제하면서 유가는 급등하고, 주유소는 폐쇄됐다. 암시장에서 석유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거리에서 휘발유 가격은 갤런(약 3.8ℓ)당 25달러(약 2만 9000원)까지 치솟았다. 아이티인은 하루 평균 2~4달러를 번다고 한다.

부실한 의료 시스템 탓에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인근 쥐스티니엥 대학 병원의 한 간호사는 AFP 통신에 “우리는 심각한 화상을 입은 다수의 환자를 돌볼 수단이 없다”고 호소했다. 병상은 물론 혈청ㆍ거즈 등 기초 의료 물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들은 병원 바닥에 누운 채 고통 속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주유소 앞에 오토바이 수십대가 몰려들었다. 대통령 암살 이후 갱단이 연료 유통을 제한하면서 아이티는 극심한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주유소 앞에 오토바이 수십대가 몰려들었다. 대통령 암살 이후 갱단이 연료 유통을 제한하면서 아이티는 극심한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생존자 가족은 “남자 형제가 밤 늦게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화상을 입었다”며 “신께 그가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리엘 앙리 아이티 총리는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부상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야전병원 두 곳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아이티의 비극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있다. 올해 7월 대통령 암살에 이어 8월에는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 2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가옥 수 만채가 파괴됐다. 갱단이 도시를 장악하면서 수 백명이 납치되는 등 치안도 불안한 상황이다. 10월에는 미국 선교 단체 직원 17명이 납치됐다. 이 가운데 5명은 풀려났지만 나머지는 아직 억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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