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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언론사찰…이성윤 보도한 본지 기자등 10여명 통신조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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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본지 기자들을 비롯한 다수 언론사 기자들의 통신 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과 관련한 ‘황제 조사’ ‘에스코트’ 논란과 ‘공소장 보도’ 등 김진욱 공수처장과 현 정부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줄줄이 수사 또는 내사하면서 출입기자들의 통신 자료를 본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본관 전경.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본관 전경. [연합뉴스]

공수처, 최소 5개 매체 기자 10여명을 무더기로 통신조회했다

14일 현재 통신사 확인 결과, 공수처는 올해 상반기부터 중앙일보 사회부 법조팀 취재기자 3명을 상대로 총 11차례에 걸쳐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통신 자료 조회는 수사 기관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특정 휴대전화 번호 정보를 통신사에 요구하면 통신사가 가입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 등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공수처는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들을 상대로 ▶5월 1건 ▶6월 1건 ▶8월 6건 ▶10월 3건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회 주체는 공수처 수사과와 수사2부, 수사3부였다.

공수처는 또 이날까지 TV조선 기자 6명 15건, 문화일보 기자 3명 8건 등을 비롯한 다른 언론사 법조팀 기자들 다수에 대해 통신 자료도 무더기로 조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일보 역시 복수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10차례 이상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 밖에도 공수처는 ‘조국 흑서’ 저자 김경율 회계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을 지낸 변호사의 통신자료도 들여다봤다고 한다.

공수처 “언론사찰 아냐”…법조계 “공소장 수사 자체가 언론 겨냥”

논란이 커지자 공수처는 지난 13일 “현재 공수처 수사대상 주요 피의자 중에는 기자들과 통화가 많거나 많을 수밖에 없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어 이들의 통화내역을 살핀 것”이라며 언론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피의자들과 취재 목적으로 통화한 기자들임이 확인되는 경우 당연히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수사대상 사건들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주요 수사 사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주요 수사 사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법조계는 하지만 공수처가 ‘이성윤 황제 조사’나 ‘공수처장 관용차 에스코트’ ‘이성윤 공소장’ 보도 등 정권의 핵심 인사나 공수처 고위직을 비판한 기사의 보도 경위를 내사 또는 수사 대상으로 입건해 조사한 필연적 결과로 분석했다. 언론 보도 경위 파악을 위해 통신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기자인 줄 모르고 조회했다”란 공수처의 해명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한 공수처를 포함한 최소 5곳 언론사 소속 10명 이상의 기자들이 대상으로 무더기로 저인망식으로 통신자료를 조회(그물을 넓게 펼치고 밑바닥부터 훑는 기법)한 것을 놓고도 ‘신종 언론사찰’이란 비판도 나온다.

공수처의 언론 보도에 대한 뒷조사가 문제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TV조선이 지난 4월 1일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무마’ 혐의를 받고 있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김진욱 공수처장이 5급 비서와 관용차량을 보내 에스코트한 의혹을 보도했을 때도 내사 명목으로 뒷조사를 벌여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TV조선이 공수처 인근 경기도 과천 우회도로 건물 CCTV 영상을 입수해 ‘황제 조사’ 의혹을 보도하자 공수처 수사관들을 보내 건물주 측에 CCTV 영상 입수 경위를 파악했다. 이에 TV조선 측은 지난 6월 3일 공수처 송모 수사관 등 2명이 현장에서 조사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해 후속 보도하기도 했다.

공수처는 최근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며 그 사유로 “언론 등을 동원한 지속적인 수사방해 행위를 시도할 것”이라고 적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발 사주 수사 과정상의 위법 논란 등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수사방해 행위’로 비난하는 내용을 영장에 적은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언론 보도 경위에 대한 수사를 벌인 것 자체가 이성윤 수사팀과 기자들과 통화를 들여보려는 게 목적 아니냐”며 “공수처가 애초에 이를 수사나 내사한 것 자체가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수원지검 수사팀도 ‘공수처 TV조선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 중인 안양지청에 “수사기관이 수사권을 이용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라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낸 바 있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로 재판에 넘겨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3월 7일 오후 5시 11분쯤 경기도 과천 공수처 청사 인근 도로에서 김진욱 공수처장 관용차인 검은색 제네시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CCTV에 촬영됐다. TV조선 캡처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로 재판에 넘겨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3월 7일 오후 5시 11분쯤 경기도 과천 공수처 청사 인근 도로에서 김진욱 공수처장 관용차인 검은색 제네시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CCTV에 촬영됐다. TV조선 캡처

윤석열 “민주국가서 있을 수 없는 일…배후에 文정권”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수처가 언론 사찰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문재인 정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맹공을 펼쳤다.

현직 검찰 간부는 “살인 사건이나 대장동 뇌물 사건 같은 중대사건도 아니고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언론사 기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 명백하다”며 “편파적인 정치적 사건으로 기자들 휴대폰을 턴 것은 언론 사찰이며 뚜렷한 사건의 실체 없이 정보수집용으로 사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까지 드러난 공수처의 통신 자료 조회 대상자는 비판적인 언론에 집중돼있고, 심지어 같은 기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조회하는 현상도 나타난다”며 “이는 공수처의 해명보다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감시하려는 의도에 더 힘이 실린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언론사찰’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행태는 아니더라도 본래의 제도(통신 자료 조회 제공) 취지와 맞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지난 13일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사에 재갈을 물리려는 대단히 심각한 언론탄압이자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며 김진욱 처장 등을 대검에 수사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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