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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 공대 점수면 연고대 문과" 이과생 문과침공 현실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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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10일 오전 울산 중구 학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대학 배치 참고표를 살펴보고 있다. 2021.12.10/뉴스1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10일 오전 울산 중구 학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대학 배치 참고표를 살펴보고 있다. 2021.12.10/뉴스1

올해 대입에서 이과 수험생이 상위권 대학 인문계 학과에 대거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처음 ‘통합수능’으로 치러지면서 문·이과 수험생이 함께 경쟁하게 돼서다. 비슷한 성적대에서도 문·이과 선택과목에 따라 합격선이 크게 달라지면서 역차별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14일 입시업계에 따르면 이과 학생이 인문계 학과에 지원하는 이른바 ‘교차지원’이 크게 늘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최근 모의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이과 수험생 28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6.8%가 인문계 대학을 선택했다. 원서접수 대행사 유웨이어플라이의 모의지원 서비스에서도 이과 수험생 중 약 23%가 인문계 대학에 지원했다. 7%였던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만기 유웨이평가연구소장은 “예년보다 교차지원 상담을 받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교차지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통합수능으로 이과 수험생이 상위권 대학 인문계 학과에 진학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진 수학 가·나(각각 이과·문과) 응시 여부에 따라 자연·인문계 학과에 지원할 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문·이과가 같은 수학 시험을 치르고 선택과목만 다르다. 대학들도 일부 자연계 학과를 제외하면 과목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과 수험생이 주로 선택하는 수학 ‘미적분’ ‘기하’와 과학탐구의 표준점수가 문과생이 선택하는 과목보다 전반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문과생은 만점을 받아도 표준점수가 144점이지만 ‘미적분’을 택한 이과생은 만점이 147점이다. ‘윤리와 사상’을 택한 문과생의 만점은 68점이지만 ‘지구과학Ⅰ’을 본 이과생 만점은 74점이다.

수능에서 모든 문제를 맞혀도 선택과목 차이로 문·이과생은 10점 넘게 표준점수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 이영덕 대성학력연구소장은 “표준점수 10점 정도면 서울 중위권 대학과 상위권 대학의 합격을 가를 만큼 큰 점수 차이”라고 말했다.

“올핸 복불복 입시, 교차지원에 선택과목 변수 있어 합격선 예측불허”  

입시업계에서는 이과 학생이 교차지원하면 서울 상위권 대학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 대성학원 분석에 따르면 표준점수 387점을 받은 수험생의 경우, 자연계에서는 건국대·동국대 공대에 진학할 수 있지만 교차지원을 하면 연세대·고려대의 일부 인문계 학과 진학이 가능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문계 학과 진학을 고민하는 이과 수험생도 늘고 있다. 김모(18)군은 “서울 중위권 공대에 갈 수 있는 점수를 받았는데 상위권 대학 경영학과도 합격할 수 있다”며 “유명 대학을 선택할지, 취업이 잘되는 공대를 갈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과 수험생들은 입시 경쟁에 비상이 걸렸다. 주요 대학의 자연계 학과들은 문과 수험생이 거의 응시하지 않는 미적분이나 과학탐구를 지원 요건에 포함하고 있다. 문과→이과 교차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이과 출신 경쟁자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만기 소장은 “이과 상위권 수험생이 인문계로 몰리면서 상경계열 등 일부 학과는 경쟁률과 합격선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는 올해 입시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올해는 교차지원에 선택과목 변수까지 있어 어느 성적대가 합격할지 예측이 안 된다”며 “정시가 너무 복잡해져서 ‘복불복’ 입시가 됐다”고 말했다.

교육 당국은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9일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과목 선택에 따라 유불리가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과목별 유불리 점수 정보 공개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현행 선택과목 제도를 유지하는 한 유불리를 상쇄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영덕 소장은 “사회탐구 응시자 점수를 높이고 과학탐구 점수를 낮추는 보정을 하는 방법이 있지만 보정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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