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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슐랭 토크] ‘뿔소라물회’가 맛있수다…제주 먹여 살린 해녀의 밥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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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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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이~ 호오이~’ 지난달 1일 오후 3시 제주시 도두동 앞바다. 돌고래가 내는 듯한 높은 톤의 숨비소리가 연신 바다를 울렸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며 1~3분 정도 숨을 참은 후 물 밖에서 내뱉는 소리다. 잠수하면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공기 중 산소를 들이마시는 생명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날 짧지만 강한 숨비소리를 토해낸 주인공은 55년간 물질을 해온 해녀 양순옥(68)씨다.

이날 양씨가 잡아 올린 세 자루의 망태기 안에는 뾰족뾰족 뿔이 난 뿔소라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는 70㎏에 달하는 뿔소라의 양에 놀라는 표정을 보며 “놀라지 말라”고 했다. “10년 전만해도 하루 100㎏을 넘게 잡는 날도 자주 있었다”고 했다. 2006년 제주시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잠수’ 타이틀을 가진 대표 해녀다운 여유가 느껴졌다.

최우수 해녀 출신 … 55년 경력의 대상군 해녀

양순옥 해녀의 ‘뿔소라물회’에는 두툼하게 썬 자연산 뿔소라와 전복, 갖은 야채가 가득 올라간다. 계절에 따라 성게와 해삼을 곁들인 후 된장 베이스의 비법 냉육수를 끼얹어 완성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양순옥 해녀의 ‘뿔소라물회’에는 두툼하게 썬 자연산 뿔소라와 전복, 갖은 야채가 가득 올라간다. 계절에 따라 성게와 해삼을 곁들인 후 된장 베이스의 비법 냉육수를 끼얹어 완성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양씨는 제주 토속 해산물 요리를 주로 하는 순옥이네 명가의 총주방장이자 대표이기도 하다. 이른바 ‘오너 셰프’인 양씨는 뿔소라나 자연산 전복, 해삼과 미역 등 일부 해산물 재료를 직접 잡은 것을 사용한다. 후배 해녀인 강정선(62)씨는 “순옥이 언니는 제주해녀 상군 중의 ‘대상군’이라 한번 물질에 나서면 남들의 곱빼기 일을 해 젊은 해녀들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상군’은 10m 이상의 깊은 바다를 주무대로 하는 물질 실력이 가장 뛰어난 해녀를 말한다. 상군급 해녀는 한 번에 3시간에서 7시간까지 물질을 하며, 많게는 300~400차례에 걸쳐 잠수를 한다. ‘대상군’은 상군 해녀 가운데서도 으뜸이 된다는 명예가 담긴 존칭이다. 강씨는 “3~5m 깊이에서 물질하는 똥군(하군)에서 5~10m 깊이를 넘나드는 중군이 되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폐활량 등 선천적 신체조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중군에서 상군이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된장육수에 미역과 전복 가득 올린 ‘물회’

바다에서 물질을 마친 후 뭍으로 나오는 양 해녀(오른쪽). 프리랜서 장정필

바다에서 물질을 마친 후 뭍으로 나오는 양 해녀(오른쪽). 프리랜서 장정필

양씨가 가장 추천하는 요리는 ‘뿔소라물회’다. 두툼하게 썰어낸 자연산 뿔소라와 전복을 가득 올리고, 된장 베이스의 비법 냉육수를 끼얹어 낸다. 아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자연산 미역과 각종 야채와 과일을 채 썰어 함께 넣는다. 계절에 따라 제철인 성게와 해삼을 곁들이기도 한다.

뿔소라 물회를 맛있게 먹는 법은 따뜻한 밥과 함께 먹는 것. 뜨끈한 쌀밥 한알 한알마다 차가운 된장 육수가 맛을 코팅한듯한 느낌이다. 싱싱한 생물 뿔소라가 입안에서 오도독 오도독 춤을 추는 듯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뿔소라와 곁들이는 게우젓은 가히 ‘밥도둑’이라 할만하다. 게우는 전복내장의 제주어로 제주 전통의 젓갈이다. 따로 손질한 전복의 내장을 며칠간 냉장고나 서늘한 곳에서 숙성시킨 후, 생 뿔소라 살을 썰어 함께 비벼 낸다. 여기에 다진마늘 조금과 설탕 조금, 고명으로 홍고추를 얹어내면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맛볼 수 있다. 농익은 전복내장의 짭짤한 바다향과 오드득 거리는 뿔소라가 함께 입안으로 들어가면 밥 한술이 저절로 따른다.

뿔소라는 날것 그대로 즐겨도 좋지만 굽거나 삶아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뿔소라 구이는 과거 제주의 해녀나 가족이 즐겨 먹었던 영양가 높은 보양식이다. 잡은 뿔소라를 껍질째 그대로 불에 얹어 구워내는 것만으로 단백질을 보충해줬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소라 속에 소주를, 일본 등에서는 청주 등을 넣어 직화로 구워내기도 한다. 소주 대신 참기름 베이스의 소스를 넣어도 소라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속살도 부드러워진다.

뿔소라 구이 ‘바다가 주는 자연의 맛’

뿔소라구이. 프리랜서 장정필

뿔소라구이. 프리랜서 장정필

양씨 남편인 부태신(68) 제주시 도두어촌계장은 “소라구이는 제주바다가 주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맛”이라며 “과거 해녀 어머니들이 뿔소라를 잡아 판 돈으로 아이들 학자금을 대고, 일본에 수출까지 해 제주도를 먹여 살렸다”고 말했다.

부 어촌계장이 귀띔해준 뿔소라 구이 먹는 비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껍질째 뜨겁게 구워진 소라를 바로 들면 손에 화상을 입거나 고온의 국물에 입천장이 벗겨질 수 있어서다. 다 구워진 뿔소라가 적당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식으면 젓가락을 이용해 살을 찌른 후 소라 방향대로 끄집어내면 된다. 주의할 점은 손이나 수저로 내장 부분을 꼭 떼야 한다. 뿔소라 내장은 쓴맛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뿔소라꼬치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뿔소라꼬치는 일종의 산적(散炙)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제사음식이지만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높아 식당에서도 팔곤한다. 한 꼬치를 만들려면 보통 3~4마리의 뿔소라가 필요한데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뿔소라 살을 삶은 후 썰어 꼬치에 끼워 기름에 튀기듯 구워내면 감칠맛이 폭발하는 별미가 된다.

양씨는 “해녀들이 목숨 걸고, 숨 참으며 잡아낸 뿔소라가 좋은 먹거리로 더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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