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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준다니 30대도 희망퇴직…올해 은행원 4900명 짐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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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연말을 맞은 금융권에서 희망퇴직이 본격화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과 부동산 ‘패닉 바잉’으로 금융사의 실적이 크게 개선됨에 따라 희망퇴직 조건이 좋아지면서 3040세대도 퇴직 행렬에 속속 합류할 전망이다. 경영 환경이 악화할 때 희망퇴직을 받는 통상의 상황과 반대되는 ‘호실적의 역설’이다.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SC제일은행에선 지난 10월 말 496명이 떠났다. 지난달 말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농협은행에서도 452명이 손을 들었다. 지난해 말 희망퇴직을 실시한 하나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 4곳(국민·신한·우리·농협)의 올해 희망퇴직 인력은 2073명으로 지난해(1534명)보다 500명 이상 많다.

2021년 기중은행 희망퇴직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21년 기중은행 희망퇴직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 철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씨티은행의 희망퇴직 신청자는 2300여 명에 이른다. 전체 직원(3250명)의 70%에 해당한다.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 하나를 제외한 4대 시중은행에서 올해 짐을 싼 희망퇴직자만 4900명에 육박한다.

은행권의 희망퇴직자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올해 퇴직 조건이 좋아진 데다 대상 연령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SC제일은행 희망퇴직자는 지난 10월 최대 6억원까지 36~60개월분(월 고정급 기준)의 특별퇴직금을 받았다. 지난해 조건(최대 38개월)과 비교하면 퇴직금이 많게는 수억원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KB국민은행의 올해 희망퇴직 대상자는 1965~73년생으로 지난해(1964~67년생)보다 대상이 크게 늘어 40대 직원도 신청이 가능했다. 씨티은행은 최대 7억원 한도에서 정년까지 남은 월급을 100% 보상하며 창업·전직 지원금 2500만원도 추가로 준다.

지난달 희망퇴직 공고를 낸 BNK부산은행은 “10년 넘게 근무한 직원 누구나” 희망퇴직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히며 나이 조건을 아예 삭제했다. 퇴직금도 임금 32~42개월치를 지급해 지난해 조건보다 2개월치(중간 간부 기준) 더 늘었다.

시중은행 점포 얼마나 줄었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시중은행 점포 얼마나 줄었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4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노사는 내년 1월로 예정된 희망퇴직 조건을 조율 중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은행이 기록적인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4대 은행에서 대부분 희망퇴직 조건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희망퇴직은 실적 악화에 직면한 회사가 꺼내는 카드지만 은행은 오히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좋은 희망퇴직 조건을 내걸고 조직을 젊게 쇄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올해 (은행의) 수익이 크게 개선돼 경영 측면에서 대규모 희망퇴직 비용을 감수할 여력이 있다”며 “대출 규제에 따른 부동산 거래 감소 등을 고려했을 때 내년 경영 상황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희망퇴직 규모가 평년보다 크게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적뿐만 아니라 금융서비스의 비대면화와 그에 따른 오프라인 영업점 폐쇄도 희망퇴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시중은행 점포 수는 2016년 4144곳에서 지난 6월 3492곳으로 5년간 652곳 줄었다.

은행에서 시작된 희망퇴직 흐름은 보험업계까지 확대되고 있다. 상시 특별퇴직을 확대한 교보생명과 신한라이프는 퇴직금으로 각각 월 기본급의 최대 48개월치와 37개월치를 제시했다. 근속연수 15년 이상 직원(교보생명), 올해 12월 31일 기준 나이와 근속연수 합이 60이 넘는 직원(신한라이프)이 대상이다. 30대 직원까지 희망퇴직에 나설 수 있는 문도 열렸다. KB손해보험은 희망퇴직 대상자 범위를 1983년(만 38세) 이전 출생자까지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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