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 한국에 새 정부 들어서면 예측 힘든 방향으로 행동 가능성” [중앙일보-CSIS 포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반도 비핵 평화의 길

‘한반도 비핵 평화의 길’이란 주제로 열린 2세션에서 한·미 석학들은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나온 참석자들의 주요 발언.

◆빅터 차 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북핵 문제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상당히 높은 순위에 있다고 하면서도 모호성을 보인다. 북한이 비핵화에 관심과 진지함이 있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한국이 ‘무기화하지 않은 핵 체계’를 보유하는 문제는 핵우산을 제공하는 미국 입장과는 상충한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관심을 보인다면 핵우산과 군사훈련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텐데, 이는 확장 억지 전략을 강화하는 문제와 상충한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21 참석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앙일보-CSIS 포럼 2021 참석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관련기사

◆고유환 통일연구원장=북한과 미국은 비핵화 목표에 동의하면서도 접근 방법에서 차이를 보여왔다. 협상 진전은 비핵화 개념, 최종 상태 설정 등과 관련한 북·미 간격을 어떻게 좁힐지에 달렸다. 1992년 한·중 수교로 적대관계를 해소한 사례에서 착안하면 북·미 수교로 북한 비핵화를 추동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종전선언은 교착 국면을 풀기 위한 촉매제로서 제안한 것이다.

◆카트린 카츠 CSIS 한국 석좌 연구위원=북한의 위협 관리 부분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4년(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과 달리 우방과 긴밀하게 논의해 왔다. 북한은 현재 협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 아무것도 받지 않고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합훈련 등으로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억지력을 한국에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인도적 지원은 비핵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형태로 할 수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핵 문제가 일종의 림보(불확실) 상태에 빠져 있는데, 내년 5월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북한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하며, 전략적 관리를 하는 정책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양보하거나 추가적 압박을 가하지도 않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한다면 제재 강화 같은 추가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11년부터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 포럼. 한국과 미국의 전·현직 대외 정책 입안자들을 비롯한 양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동북아 정세와 미래 아시아 평화의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다. 포럼은 서울과 워싱턴에서 번갈아 열리는데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1962년 설립된 CSIS는 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제적인 싱크탱크다.

아래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개회사 전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정상화와 평화를 염원하면서 이렇게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랜 친구인 존 햄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소장, 빅터 차 한국 석좌, 마이클 그린 일본 석좌, 모두 반갑습니다. 한국의 송민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신각수 전 주일대사‧고유환 통일연구원장, 박명림 연세대 교수, 그리고 이재명‧윤석열 대통령 후보 캠프의 외교안보팀 좌장인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을 포함한 양국의 모든 참가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저는 1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21세기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팬데믹은 국제연대와 협력을 통해 가장 취약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끝나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오미크론의 확산을 지켜보면서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백신 민족주의는 선진국의 자살행위”라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의 비판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이른바 기존 질서의 주도 세력인 미국과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는 중국이 글로벌 공공재를 충분히 공급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20세기 초 영국을 제치고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미국은 당시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충분한 공공재를 제공하지 못해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극심한 경제난에 처한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탄생했고,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비판한 경제학자이자 마셜플랜의 설계자 킨들버거의 이름을 딴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 빠진 것입니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미‧중 모두 각자도생의 자국 우선주의에 사로잡혀 공공재 공급을 등한시할 경우 전 세계가 다시 한번 ‘킨들버거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오미크론 위기는 그 불길한 징후입니다.

미국은 지난주 중국의 신장 인권탄압을 이유로 내년 2월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중국은 “미국은 잘못된 행동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습니다. 두 나라의 갈등은 세력조정이 끝나고 ‘새로운 균형(New equilibrium)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미중 대결에서 미국이 승리할 경우 미국은 과거처럼 ‘관대한 패권국’이 되기 어려울 것이고, 패배한 중국은 ‘위험한 이웃’이 될 것입니다.

미중 두 나라의 압도적인 영향력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한국은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국가 비전과 국익을 규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강‧동맹‧국제연대로 지혜롭게 대처하면 미중의 존중을 받고 교량 역할을 하는 중추국(pivot state), 중견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강대국의 눈치나 보면서 그때 그때 유리한 쪽으로 편승하는 식으로는 양쪽에서 공격받는 파쇄국(shatter zone state)로 전락하게 됩니다. 안보와 경제를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대통령 임기 5년은 중차대한 변환기이며 향후 100년 한국의 국운을 좌우할 시기라고 할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입니다. 경제의 대외의존도 85%, 에너지 수입의존도 97%, 곡물 자급률 24%입니다. 안보와 경제가 외부 충격에 모두 취약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력 10위, 기술력 5위에  세계 정상의 K콘텐트를 가진 나라입니다.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중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고, 다른 중견 국가들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어떤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습니다. 한국도 싱가포르처럼 “모두와 친구 하기, 누구와도 적대하지 않기(friend to all, enemy to none)”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어느 누구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북 분단에 남남 갈등이 겹쳐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데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목적지도 없고, 지도도 없이 항해에 나선 형국입니다. 이러면 국내에서는 정책추진 동력을 잃고, 상대국에 대한 협상력이 반감되고,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초래하게 됩니다. 내년 3월 9일에 선출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남남 통합에 나서야 하는 절박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회 안에 상설협의체를 둘 것을 제안합니다. 정파를 초월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일관된 외교 안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입니다.  추가적인 자원 투입 없이도 한국의 외교안보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게는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미동맹이 튼튼해야 남북관계도 잘 풀리게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서로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기적같이 찾아온 독일 통일도 미국과 관계가 좋았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더 좋아지려면, 미국이 그토록 원하는 한일관계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말고, 일본은 분명히 사과하는, 미래지향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전후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가져온 드골-아데나워 모델, 1998년 김대중-오부치모델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구상에서 북한을 제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국가는 오직 미국뿐입니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중국, 베트남처럼 가난에서 벗어나 눈부신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유엔 제재 국면에서 중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지원은 그저 연명시켜줄 정도의 도움에 불과합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을 내놓을 테니 인민생활과 관련된 다섯 가지 제재를 풀어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달렸습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올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에도 그 해 6월30일 판문점 남북미 3국정상 접촉, 10월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접촉을 이어갔습니다.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레드라인은 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북한이 미국과 협상할 의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이런 사정을 잘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북한과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브레진스키 전 미국국가안보보좌관은 1997년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잠재적, 정치적 화산’에 비유했습니다. 미국이 이 상태를 방치하면 북한은 머지않아 100기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게 됩니다.

만일 여기에 대응해서 한국, 일본이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장을 하고, 중국이 핵을 증강할 경우 베트남, 대만의 핵무장도 시간문제입니다. 아시아 전체가 그야말로 핵 도미노 상태에 빠지게 되고 정치적, 군사적 화산이 됩니다. 공들여 지켜온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됩니다. 이것은 미국도 원치 않는 일일 것입니다.

북한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진지한 협상의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협상하면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려는 과욕은 거둬들여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북한과의 협상은 끝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라는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여 있는 상태입니다. 북한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과감하고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핵무기가 많아도 인민의 생활이 나아질 수는 없습니다.

한국은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분단국이며, 미중 세력경쟁의 한 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국제정치학의 석학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로 한국과 폴란드를 꼽았습니다.

그는 저서 ‘강대국 정치의 비극’에서 한국 국민에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지정학적 환경에 살고 있다. 모든 국민이 영리하게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생존과 직결돼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우리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국익 우선주의와 전략적 유연성의 원칙을 지키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부 통합이 절실합니다. 그래야 개방국가, 통상국가, 세계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자주의를 통해 강대국의 경쟁을 완충시킬 수 있습니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해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하려면 먼저 우리가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토론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이 통합적 틀에서 제시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