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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한국 vs 뉴욕' 여경 체력시험 어디가 더 힘들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자 경찰이 현장 대응에 실패하면 빠짐없이 나오는 얘기가 있다. 경찰 체력검사 합격 기준이 남자보다 낮아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2019년 서울 대림동에서 주취자를 제압 못 한 여경 사건에서도, 지난달 인천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에서도 그랬다.

[정글] 외국 각 경찰의 체력 검사

하지만 여경의 체력시험 통과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미국과 영국 등 구미 선진국들은 남녀 구분을 없애는 대신, 합격 기준 자체를 낮춰가는 추세다. 여성에 대한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는 다수의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다. 어떤 사회적·문화적 배경이 우리와 다른 기준을 만들어냈을까.

경찰 채용에서 여경 비율이 느는데 비해 체력검사 기준은 남성보다 낮은 걸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경찰 체력시험에서 남녀 체력기준의 차이는 꽤 큰 편이다. 사진은 2016년 부산경찰 공채에서 한 여성 지원자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 당시 부산 경찰은 여성 5명을 채용했는데 1122명이 지원해 22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후 여경 채용 비율은 점점 높아져 올해 전국 상반기 경찰공무원 순경 공채에서 남성은 1961명, 여성은 739명을 채용했다. 경쟁률은 각각 15대 1, 19.2대 1을 기록했다. 송봉근 기자

경찰 채용에서 여경 비율이 느는데 비해 체력검사 기준은 남성보다 낮은 걸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경찰 체력시험에서 남녀 체력기준의 차이는 꽤 큰 편이다. 사진은 2016년 부산경찰 공채에서 한 여성 지원자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 당시 부산 경찰은 여성 5명을 채용했는데 1122명이 지원해 22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후 여경 채용 비율은 점점 높아져 올해 전국 상반기 경찰공무원 순경 공채에서 남성은 1961명, 여성은 739명을 채용했다. 경쟁률은 각각 15대 1, 19.2대 1을 기록했다. 송봉근 기자

남녀 기준 차이 큰 우리 경찰 체력시험

우리 경찰은 체력검사에서 총 5개 종목으로 지원자의 신체적 능력을 측정한다.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좌우 악력 ▶팔굽혀펴기다. 종목당 10점이 만점이다. 총점 최고점수는 50점이다. 남녀 간 점수 기준은 다르다.

한 여성 경찰지원자가 만점 기준에만 딱 도달해 50점 만점을 받았다고 해보자. 이를 남성 기준으로 바꾸면 25점이 나온다. 법령상 불합격 기준인 총점 19점보다는 높은 점수다. 하지만 이 여성 지원자는 1000m 달리기 때문에 불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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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기준으로 1000m 달리기에서 턱걸이로 만점을 따더라도 남성 기준으로는 1점이다. 경찰 체력검사에선 한 종목이라도 1점을 얻으면 불합격이다. 현행 남성 체력검사 기준을 여성에게 적용하면 합격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여경 합격자 체력검사의 하한선은 어디일까. 총점 20점을 얻어야 합격 자격이 있으니 종목당 4점을 얻는 것이 이론상 합격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원자에 따라 종목별 편차가 있을 수 있으므로 5점이 ‘안정적 하한선’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기록은 다음과 같다. 100m 19.4초, 1000m 5분 25초, 윗몸일으키기 1분 30회, 좌우 악력 29㎏, 팔굽혀펴기 1분 26회. 남성 기준으로는 총점 10점으로 불합격에 해당하는 점수다.

우리는 경찰 체력검사 기준표가 복잡하다. 종목별 기록에 따라 점수가 세세하게 나뉜다. 이때문에 종목 당 하나를 더 하느냐 못 하느냐가 당락을 가리기도 한다. 지원자들이 젖먹던 힘까지 짜내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체력적으로 최소 기준을 충족하느냐에 따라 합격ㆍ탈락으로 나누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박선영 목원대 경찰법학과 교수는 “윗몸일으키기 하나를 더 하느냐, 못 하느냐로 점수를 나누고 당락을 결정하는 건 경찰 직무 적합성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경찰청 경찰관 채용 체력검정. 연합뉴스

우리는 경찰 체력검사 기준표가 복잡하다. 종목별 기록에 따라 점수가 세세하게 나뉜다. 이때문에 종목 당 하나를 더 하느냐 못 하느냐가 당락을 가리기도 한다. 지원자들이 젖먹던 힘까지 짜내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체력적으로 최소 기준을 충족하느냐에 따라 합격ㆍ탈락으로 나누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박선영 목원대 경찰법학과 교수는 “윗몸일으키기 하나를 더 하느냐, 못 하느냐로 점수를 나누고 당락을 결정하는 건 경찰 직무 적합성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경찰청 경찰관 채용 체력검정. 연합뉴스

이런 차이 때문에 어떤 이는 여성 경찰이 많아질수록 치안력이 약화한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체력과 직무능력의 연관성이 입증돼야 한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의외로 우리처럼 ‘체력장’ 방식으로 체력검사를 치르는 곳은 많지 않다.

직무 연관성에 초점 맞춘 뉴욕 경찰의 ‘코스식 시험’

미국은 주별로 경찰 체력검사가 제각각이다. 뉴욕 경찰의 경우, ‘종목식 점수제’인 우리와 달리 ‘코스식 시험’을 본다. 지원자는 6.35㎏ 조끼를 입고 6단계의 코스를 하나씩 수행해 4분 28초 안에 결승점을 통과하면 합격이다. 남녀 간 차이 없이 동일하다.

미국 뉴욕 경찰은 체력시험을 직무기준시험(Job Standards Test)라고 부른다. 경찰 직무를 수행할 최소한의 체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취지다. 사진은 체력시험에서 한 흑인 경찰이 시범을 보이는 모습. NYPD

미국 뉴욕 경찰은 체력시험을 직무기준시험(Job Standards Test)라고 부른다. 경찰 직무를 수행할 최소한의 체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취지다. 사진은 체력시험에서 한 흑인 경찰이 시범을 보이는 모습. NYPD

6단계 코스는 각각 장애물 넘기, 계단 오르내리기, 신체 저항 테스트, 추격 달리기, 피해자 구조, 방아쇠 당기기로 구성된다. 지원자는 시작 구호 전 무릎 꿇어 권총 사격자세를 취한다. 시작 구호와 함께 15m를 달려 183㎝ 펜스를 넘는다. 이후 계단 오르내리기로 진행한다. 6칸짜리 계단을 세 번 오르내린다.

다음은 신체 저항 테스트다. 밀고 당길 때 무게로 부하가 걸리는 장치를 이용한다. 신체 저항 장치를 당겨서 4차례 반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밀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장치엔 23㎏ 추가 달렸다. 핸들에는 36㎏을 부하가 걸린다고 한다. 다음은 추격 달리기다. 바닥에 놓인 코스를 따라 183m 거리를 달린다. 커브가 많아 속력을 크게 올리기는 어렵다. 이후 피해자 구조로 옮겨간다. 80㎏ 마네킹을 11m 끌면 된다.

마지막 코스는 방아쇠 당기기다. 지름 23㎝ 원 안에 총구를 넣고 주손으로 16번, 반대 손으로 15번 방아쇠를 당긴다. 원에 두 번 닿으면 실격이다. 이 모든 코스를 4분 28초 안에 주파해내면 된다.

뉴욕 경찰의 체력시험은 경찰 직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방아쇠 당기기는 코스의 마지막 단계에 배치해 지친 상태에서 흐트러짐 없이 방아쇠 당길 수 있느냐를 테스트한다. NYPD

뉴욕 경찰의 체력시험은 경찰 직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방아쇠 당기기는 코스의 마지막 단계에 배치해 지친 상태에서 흐트러짐 없이 방아쇠 당길 수 있느냐를 테스트한다. NYPD

뉴욕 경찰의 체력검사는 경찰 직무적합도가 높은 방식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박선영 목원대 경찰법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마네킹 끌기, 계단 오르기, 장애물 넘기 등 경찰이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신체적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을 치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같은 미국이지만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뉴욕과 달리 종목식 체력검사를 치른다.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악력, 장애물 달리기 등 4종목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남녀 기준이 따로 있지 않다. 종목당 8점 만점으로 한 종목 0점을 맞거나, 총점이 20점이 안 되면 실격한다.

종목별 합격선 기준은 악력 52lbs(약 24㎏), 윗몸일으키기 31개, 팔굽혀펴기 26개, 장애물 달리기 24초다. 한국의 여경 합격선과 비교해보면, 악력은 5점 기준 24㎏으로 29㎏인 우리보다 낮고, 윗몸일으키기는 1개 많으며, 팔굽혀펴기는 같다. 남자 지원자도 우리 여자 경찰 체력시험 수준만 통과하면 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우리와 비슷한 종목을 시험보지만 통과 기준은 낮은 편이다. SFPD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우리와 비슷한 종목을 시험보지만 통과 기준은 낮은 편이다. SFPD

범죄 통계를 보면 샌프란시스코 거리는 우리보다 훨씬 위험하다. 한국의 2020년 10만명당 주요 강력범죄는 살인 0.6건, 강간 10.3건, 강도 1.3건이다. 샌프란시스코는 각각 살인 5.5건(3.3배), 강간 25.6건(2.5배), 강도 274.8건(211.4배)으로 크게 차이 난다. 치안 환경을 볼 때 더 강력한 체력검사 기준을 요구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주요 선진국은 체력검사 기준 낮춰가는 추세

다른 나라 역시 경찰 체력검사에서 최소한의 기준만 요구하는 추세로 변해가고 있다. 영국 경찰은 15m 왕복 오래달리기 한 종목만 치른다. 체력 측정 기기를 이용해 밀고 당기는 힘을 측정하는 시험은 2016년 폐지됐다. 왕복 오래달리기는 남녀 구분과 연령 구분 없이 단 하나의 기준만 적용된다. 직무에 따라 기준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표준 직무 기준은 5레벨 4회다. 횟수로는 15m 거리를 총 35회 뛴 것과 같다. 우리 인천소방공무원 여성 기준과 비교하면 35회는 5점을 얻는 수준이다. 하지만 영국은 20m인 우리보다 5m 더 짧고, 시작 속도도 7.8㎞/h로 8.0㎞/h인 우리보다 조금 느리다.

프랑스 경찰 체력시험은 군대 유격훈련과 비슷한 코스를 빨리 주파해야 한다. 코스가 까다롭고 남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프랑스 국가경찰

프랑스 경찰 체력시험은 군대 유격훈련과 비슷한 코스를 빨리 주파해야 한다. 코스가 까다롭고 남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프랑스 국가경찰

프랑스 경찰 체력시험은 우리처럼 남녀 기준이 다르다. 다만 뉴욕 경찰 같은 코스식 시험과 왕복 오래달리기, 총 2종목을 치른다. 코스식 시험은 뉴욕 경찰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코스로 구성된다.

남성은 40㎏, 여성은 25㎏ 가방을 들고 20m 옮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다음 팔굽혀펴기를 하는데 남성은 5개, 여성은 3개를 실시한다. 이후 남성 71㎝, 여성 61㎝ 허들을 3개 넘고 5m 길이 평균대를 통과한 뒤 한발씩 점프하는 구간을 통과한다.

이후 양발 번갈아 뛰기를 각각 5번하고, 1.2m 높이의 장애물을 2회 뛰어넘는다. 4m 길이 수평 사다리를 건너고 3m 포복 전진을 한 뒤 지그재그 달리기를 하면서 마무리된다. 남녀 모두 50초 이내로 들어오면 만점이지만, 합격선은 남성 1분 37초, 여성 1분 49초다. 코스 자체와 기록 모두에 남녀 기준이 다르다.

왕복 오래달리기는 여성이 통과 기준이 4단계 15초, 남성은 6단계 30초다. 여성 기준을 횟수로 환산하면 약 41회다. 이를 인천소방공무원 여성 기준과 비교하면 8점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지만, 초반 페이스가 조금 느린 편이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다만, 만점은 여성 11단계, 남성 14단계로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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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중앙 경찰조직인 경시청과 지방 경찰이 조금씩 다르지만 종목별 점수제로 뽑는다는 점에선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서구와 달리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사이드스텝 등 ‘체력장’에 가까운 종목을 채택한다. 또한 서구와 달리 아직 여성할당제, 즉 성별 분리 모집을 유지한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사례를 종합해 보면, 미국과 영국은 남녀 합격 기준을 통일하는 대신 점점 체력시험 기준을 낮춰가는 추세다. 반면 프랑스는 남녀 기준을 달리하면서 높은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여성 분리모집을 유지하며 남녀 기준도 다르게 하고 있다. 종목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 체력검사는 여성 차별적” 판결 잇따라

서구 선진국이 경찰 체력검사 기준을 낮추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0년대 들어 경찰 체력검사 종목과 기준이 직무와 관련성이 없고 여성에게 차별적이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지방법원은 “지방경찰은 여성에게 차별적인 경찰 체력검사를 폐지하고, 차별받은 여성 경찰에게 220만 달러를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2003~2012년 시행한 체력검사가 문제가 됐다. 당시 펜실베이니아주 경찰의 체력검사 종목은 300m 달리기, 2.4㎞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제자리높이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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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목의 통과 기준은 300m 달리기 1분 7초, 2.4㎞ 달리기 16분 54초, 팔굽혀펴기 제한시간 없이 13개, 윗몸일으키기 1분 30개, 제자리 높이뛰기 36㎝였다. 이 시험에서 남성의 통과율은 94%였지만 여성은 71%에 그쳤다. 낮은 여성 합격률 탓인지 펜실베이니아주 경찰 중 여성 비율은 2019년 기준 6.7%로 미국 전체 여경 비율인 12.8%의 절반 수준이다.

펜실베이니아주 지방법원은 이런 체력검사가 1964년 제정된 미국 민권법 제7장을 위반했다고 봤다. 민권법 제7장은 인종, 피부색, 성, 종교, 출신 국가를 이유로 하는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직무 연관성이 없으면서 여성에게 불리한 영향을 주는 체력검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선영 교수는 “남녀는 상체 근력에서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며 “팔굽혀펴기와 같은 체력시험은 경찰 직무와 연관성이 없으면서 남성에게만 유리한 시험이라는 게 주요 선진국 법원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호주 등 선진국에선 현장에서 필요한 신체 능력을 테스트하되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과거 미국에선 이와 정반대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1978년 오클랜드의 한 여성이 경찰 체력검사가 성차별이라는 소송을 건 적이 있다. 당시 오클랜드 경찰은 90m 달리기, 183㎝ 벽 기어오르기, 63㎏ 마네킹 15m 끌기 등의 코스를 2분 30초 안에 마쳐야 하는 체력검사를 시행했다. 이 여성은 183㎝ 벽 기어오르기에 실패한 뒤 이 코스가 경찰 직무와 관련이 없고 여성 차별적이라고 주장했다.

총기가 허가된 미국은 한국보다 경찰이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도 경찰의 체력기준은 높아지기보다 최소한의 요건을 넘으면 되는 쪽으로 바뀌어간다. 사진은 지난 4월 미국의 한 경찰관이 총기를 들고 용의자에게 접근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총기가 허가된 미국은 한국보다 경찰이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도 경찰의 체력기준은 높아지기보다 최소한의 요건을 넘으면 되는 쪽으로 바뀌어간다. 사진은 지난 4월 미국의 한 경찰관이 총기를 들고 용의자에게 접근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당시 오클랜드의 체력검사는 여성 지원자에게 잔인했다. 남성의 시험 통과율은 85%였던 데 반해, 여성은 15%에 그쳤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벽을 타고 넘는 신체 능력은 경찰 직무와 관련이 있다며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는 남녀의 타고난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건 성차별이라는 판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2018년 콜로라도주 법원은 여성 경찰 12명이 체력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경력에 불이익을 받거나 해고를 당한 데 대해 250만 달러를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2012년 텍사스주에서도 체력검사에서 탈락해 경찰에 채용되지 못한 여성 18명에게 70만 달러를 보상하고 검사 기준을 바꾸라는 판결이 나왔다.

고용상 차별을 금하는 미국 민권법 제7장과 같은 규정은 다른 나라에도 존재한다. 영국 평등법 제2장, 프랑스 노동법 L112-45조, 독일 기본법 제3조가 비슷한 법률이다. 이를 근거로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소송이 잇따랐다. 그 결과 체력검사 기준을 직무 연관성이 있도록 조정하거나 여성 차별적 기준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 체력검사, 어떻게 바뀌나

우리나라도 체력 검사에 대한 논쟁이 계속 이어져왔다. 그 결과 수차례 검사 종목이 변경됐고, 가중치 역시 바뀌어 왔다. 우리 경찰은 정부 수립 이전인 1946년부터 여경을 채용했지만 체력검사가 도입된 건 1993년이었다.

여자 경찰관이 생긴 지 70년이 넘었다. 1946년 79명이었던 여경 수는 2020년 기준 1만6084명으로 늘었다. 사진은 1972년에 열린 여경 공채 1기 졸업식. 중앙포토

여자 경찰관이 생긴 지 70년이 넘었다. 1946년 79명이었던 여경 수는 2020년 기준 1만6084명으로 늘었다. 사진은 1972년에 열린 여경 공채 1기 졸업식. 중앙포토

처음엔 100m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3종목이었다. 2008년 좌우 악력이 추가됐고, 2011년 제자리멀리뛰기가 폐지되고 1200m 달리기와 팔굽혀펴기가 도입됐다. 2012년부터는 1200m 달리기가 1000m 달리기로 바뀌면서 현행 체력검사 종목이 완성됐다. 체력검사가 전체 경찰 채용 전형에 차지하는 비중도 1993년 5%에서 2004년 10%, 2014년 25%로 점차 높아졌다.

2000년대 초반 체력검사보다 문제가 됐던 건 우리 경찰의 성별 분리 모집 제도였다. 법령상 명문화된 건 아니지만, 경찰청은 경찰대 신입생 모집, 순경 채용에서 여성을 정원의 10~12% 비율로 뽑아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부터 “여성 채용 비율을 낮게 두는 건 지나친 제한으로 성별에 의한 차별행위”라며 성별 분리모집 폐지를 권고해 왔다.

하지만 경찰청은 “경찰은 물리력·강제력이 필요하고 남녀 신체 능력의 차이가 있어 여경을 둘 수 있는 부서는 제한적이다. 여성 채용 비율을 늘리면 조직 운영뿐 아니라 치안 역량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이 권고를 무시해왔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가 남녀 차별 없는 채용을 위해 체력검사 기준을 새로 짤 것을 권고했다. 여론 역시 남녀 기준이 다른 체력검사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찰청은 2019년 연구 용역을 통해 직무 적합성이 높고 남녀 공통 적용이 가능한 체력검사를 찾기 시작했다.

경찰이 새로운 체력검사를 2023년부터 도입해 2026년 전체에 적용한다. 뉴욕 경찰과 흡사한 코스식 시험이다. 남녀 기준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경찰청 제공

경찰이 새로운 체력검사를 2023년부터 도입해 2026년 전체에 적용한다. 뉴욕 경찰과 흡사한 코스식 시험이다. 남녀 기준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경찰청 제공

경찰은 지난 6월 남녀 기준이 다른 종목별 점수제 시험에서, 남녀 기준이 동일한 코스형 시험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일부 도입, 2026년 전면 도입되는 이 시험은 앞서 말한 뉴욕 경찰의 체력검사를 벤치마킹했다. 벽 넘기, 계단 오르내리기, 밀고 당기기, 피해자 구조, 방아쇠 당기기 등 대부분 과정이 뉴욕 경찰 시험과 거의 흡사하다. 조끼를 착용하고 체력검사를 치르며 남녀 동일 기준을 적용해 특정 시간 내로 들어오면 합격인 방식도 같다.

이런 채용 방식은 기본적인 체력 수준만 보는 것인지라 실제 현장 대응력 향상을 위해선 별도의 직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찰 내부에선 경찰학교 교육 4개월, 현장실습 4개월에 그치는 부실한 신임 순경 교육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 왔다.

박선영 교수는 “체력검사의 합리화와 함께 실제 대응력을 향상할 수 있는 훈련 역시 이뤄져야 한다”며 “동시에 매뉴얼대로 처리해도 징계를 받는 일이 많아 경찰이 대응에 소극적인데 이를 바꾸기 위한 여건도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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