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의 코카콜라, 브랜드 절반으로 확 줄인 전자공학도 CEO

중앙일보

입력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CEO. 사진 코카콜라 홈페이지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CEO. 사진 코카콜라 홈페이지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공간(진열대)을 차지하기 위한 다윈의 생존 투쟁이죠.” 코카콜라의 제임스 퀸시(56)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코카콜라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파격 선언을 했다. 다이어트 음료 ‘탭’이나 주스 브랜드 ‘오드왈라’ 등 약 200개 브랜드가 그 대상이다. 퀸시는 12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브랜드 철수에 항의하는) 이메일을 많이 받았다”면서도 특단의 조치를 내린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유통업체는 한정된 공간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서다.

퀸시는 지난 2017년 5월 취임하면서 ‘뉴 코크(Coke) 신드롬’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당시는 창립 132년 역사상 최대 위기로 꼽혔던 시기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고 세계 각국에서 설탕 규제가 도입되자 탄산음료 소비가 줄면서 4년 연속 매출이 급감하면서다. 퀸시 취임 직전엔 미국 본사 직원의 20%가 구조조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퀸시의 등판을 두고 최적의 인물이란 평가가 나왔다.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실험 정신 때문이다. 포트폴리오 절반을 없애겠다는 결정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팬데믹, 기회를 봤다” 

지난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에 연사로 나선 제임스 퀸시(왼쪽). AP =연합뉴스

지난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에 연사로 나선 제임스 퀸시(왼쪽). AP =연합뉴스

코카콜라와 같은 규모나 브랜드 파워를 갖춘 기업 입장에서 과감한 혁신이란 사실 양날의 칼이다. 신규 소비자를 유인하려면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이미 대세를 형성한 기존 소비자의 반응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실제 코카콜라는 1985년 레시피를 바꿔서 내놓은 신제품 ‘뉴콜라’가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 끝에 철수했던, ‘뉴콜라 참사’의 역사도 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불어닥친 팬데믹의 빈틈을 퀸시는 놓치지 않았다.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모든 기업의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봤다”고 말했다.

퀸시는 코카콜라의 포트폴리오를 과감하게 줄이는 한편 코카콜라 브랜드 확장에도 거침이 없었다. 지난 2018년 다이어트 콜라의 패키지를 바꾸고 오렌지 바닐라 맛을 추가하는 등 콜라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에너지콜라와커피콜라도 잇따라 출시했다. 오후 시간 커피나 에너지 음료를 찾는 이들을 공략하겠다는 포부였다. 실제 올해 미국 에너지 음료 시장은 5년 새 23% 커져 192억 달러(약 21조 5300만원) 규모에 달한다. 퀸시는 당시 “콜라를 에너지 음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에너지콜라는 그러나 출시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퀸시는 “우리가 소비자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정확하게 공략했을까요? 아니요”라면서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에너지콜라의 경우 (팬데믹이 미국을 강타했던) 2020년에는 시장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래서 우리는 (에너지콜라가) 천천히 사라지도록 하기보다는 (그 시점을) 당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패하면? 언제든 원점으로 갈 수 있어”

코카콜라. AFP=연합뉴스

코카콜라. AFP=연합뉴스

이런 실패에도 퀸시를 향한 시장의 믿음은 굳건하다. 음료 전문 매체 ‘비버리지 다이제스트’의 편집장 듀안스탠포드는 “퀸시는 브랜드에 대한 실험을 허용했다. 지난 몇 년간 이렇게 빨리 새로운 콜라 브랜드를 내놓기는 어려웠다”며 “그게 바로 퀸시의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믿음엔 분석적이면서도 실용주의적인 퀸시의 면모도 한몫한다. 리버풀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인 퀸시는 “나는 마음으로는 엔지니어이자 이성주의자”라고 했다.

퀸시는 최근 또 다른 ‘위험한’ 실험에 나섰다. 지난 2005년 출시된 ‘코카콜라 제로슈거’를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레시피와 패키지를 변경한 것. 이 브랜드는 콜라 포트폴리오에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지만, 퀸시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 4월 “제로슈거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여전히 점유율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며 “일반 코카콜라와 같은 맛을 구현하기 위해 레시피를 바꾸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시도는 성과로 이어졌다. 제로슈거는 50개국 이상에서 출시됐고 지난 3개월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 3분기 콜라 제품군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6% 증가해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는 “사람들은 (해보지도 않고) 뭔가 잘못되는 거 아닌지 걱정하는 경향이 있고 결국 뭐가 옳은 건지 잊게 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뉴콜라’와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뭐가 있겠어요. 원점으로 돌아가야죠. 언제든 후퇴할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