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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드라마 ‘도깨비’는 왜 환생을 말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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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지난달 첫눈이 내렸다. 비도 섞여 오니 도깨비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모양이다.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도깨비’를 뒤늦게 TV에서 보았다. 작은 아이가 열심히 보기에 옆에 있다가 다 보았다. 메밀꽃밭은 아련했고, 떨어지는 단풍잎은 로맨틱했고, 음악은 감동적이었고, 인물들은 예뻤고, 짧은 대사는 명료하면서 통통 튀었다. 무엇보다 전생·내생·업·인연 등 불교 용어에, 결국 삶과 죽음, 죄와 벌, 신과 구원의 스토리에 빠져들었다. 이 글은 도깨비 이야기, 불교의 환생, 한국정치를 상상 속에서 하나로 묶어 본 것이다.

드라마 대사 중 일부가 귀에 익지 않았다. ‘무로 돌아가 평안하리라’ ‘사고무탁’과 같은 사극 톤의 대사 탓이었다. ‘무로 돌아간다’는 말은 불교의 무와 공이 아니라 완전한 죽음을 말한다. 도깨비 신처럼 900년 넘게 홀로 불멸을 살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면, 차라리 소멸이 낫다고 생각한 거다.

전생에 못한 사랑 현생에 이뤄
남녀 간에도 하나된 마음 필요
국민 통합하는 리더십은 없나

이 드라마에 정치는 없다. 주인공 김신(공유)은 전생에 무신이었고, 누이는 왕비였으니 정치의 한복판에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피의 정치와 전쟁을 잊고 러브 스토리가 된다. 김신은 개선장군으로 귀환했지만 간신 박중헌(김병철)의 농간으로 대역죄인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한다. 그는 분노와 슬픔 속에서 죽지만 백성의 염원으로 30년 만에 도깨비로 살아나 복수한다. 그리곤 불멸의 몸으로 세상을 떠돈다. 정치·전쟁·피가 다 싫어진 도깨비 김신은 무로 돌아가기 위해 신부 찾기에 올인한다.

왜 환생인가. 불교와 김은숙 작가의 자비다. 전생에 다 못한 일을 금생에는 이루라고 기회를 또 한 번 주는 거다. 저승사자로 환생한 왕, 인간으로 환생한 왕비 모두 업보를 충실하게 치른다.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은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집 없어도 씩씩하고 당차다. 착하기도 하다. 작지만 아름다웠던 결혼식 얼마 후 유치원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다. 희생은 순간의 선택이니 신도 예견할 수 없었다. 업(業)도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막지 못했다. 삼신할미의 점지, 엄마의 지극한 사랑, 은탁의 선행이 선택의 찰나에 모였다. 한참 뒤 환생한 은탁은 도깨비와 재회하며 드라마는 끝난다.

은탁이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주자 도깨비는 박중헌을 벤 다음 이별의 지극한 슬픔을 안고 사라져 가서, 9년 동안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천을 헤맨다. 도깨비는 이렇게 기도했을 거다. “우주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제 신부가 존속하는 한 제가 살아 있게 하소서. 그녀를 만나 사랑을 이룰 때까지.”

‘신부’의 자리에 ‘아저씨’를 넣으면 은탁의 기도문이 된다. 이는 14대 달라이라마가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행한 노벨 평화상 수상기념 강연(1989년 12월 11일) 끝에 나오는 다음 기도문을 살짝 바꾼 거다. “우주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생명이 존속하는 한 제가 살아 있게 하소서. 세계의 고통을 물리칠 때까지.”(『달라이라마의 정치철학』 영문)

도깨비와 달라이라마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모두 환생을 믿는다. 달라이라마는 전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그의 자비는 온 생명을 향하고 있다. “제 다음 생은 어디든 제가 쓸모가 있는 곳이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전생에 다 못한 숙제가 금생의 책무가 된 것이니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식으로 환생을 이해한다. 그에게 가장 큰 비극은 중국의 티베트 압제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줄이면서 티베트 망명정부에 명실상부한 삼권분립을 수립했다. 중도 정치의 효용성을 믿고 자유·평화·자치를 위해 노력해왔다. 시진핑의 역사결의도 그의 비폭력적 자유 투쟁을 막지 못할 거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흉한 자는 박중헌이다. 그의 권력욕과 간악함은 왕과 왕비도 둘로 쪼개고 왕비를 죽인다.

내생을 믿지 못하면 금생이라도 잘해야 한다. 역사의 신은 새 대통령에게 이리 명한다. “살아서는 수인(囚人)이 되기 싫고 죽어서는 역사의 죄인이 되기 싫으냐. 그럼 아래를 소명으로 받들어 기도하며 꼭 행하라.”

‘국가권력은 줄이고, 국민을 통합하게 하소서. 삼권분립을 완전케 하소서. 박중헌 같은 간신은 내치게 하시고, 적도 친구로 만드는 포용의 리더십을 주소서. 강국들의 힘과 욕망은 통찰하게 하시고, 북한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도 남남갈등부터 해소케 하소서. 전부 행할 테니 부디 이 땅의 대통령에게 내린 저주는 풀어주소서.’

분열의 정치가 가시면 국민들은 자신의 업에 매진하다가, 때가 되면 평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전에 펑펑 내리는 눈을 보고 싶다. 9월의 달빛 아래 눈처럼 하얀 메밀꽃 향기는 또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