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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탐정 자격증 1만3000명…외형은 화려, 속은 빈 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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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회와 혼돈 공존하는 탐정 산업

탐정 산업 메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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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5일 신용정보법 개정(40조 5항) 으로 43년 만에 ‘탐정’이라는 두 글자의 사용금지 족쇄가 풀렸다. 그 후 1년 4개월 동안 탐정업에 새로 진입한 인원이 1000~2000명대라고 업계는 추산한다. 기존의 탐정까지 합치면 5000~6000명이 활동한다. 그렇다고 탐정 사무소가 덩달아 늘지는 않았다. 이들이 즉각 영업전선에 뛰어든 게 아니고 임대료 까먹는 사무실 대신 온라인과 현장 중심으로, 나 홀로 영업 대신 탐정 협회나 연맹을 매개로 한 협업·공생 관계 구축을 생존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어서다. 이같은 현상은 탐정 명칭 사용 외에는 법적·제도적 정비가 진전된 게 없고 코로나 장기화로 의뢰 건수와 수임료가 준 탓이 크다. 혼돈과 기회가 공존하는 과도기의 탐정업계를 들여다봤다.

협회·연맹 발급 자격증 2년간 급증
신규 진입만 16개월간 1000명 넘어
흥신소, 탐정 명칭 차용해 불·탈법
법·제도 정비해 제도권 흡수해야

윤리·보안의식 등 교육, 탐정사 140명 배출

지난 1일 오후 경기 화성시 동탄대로에 위치한 M타워 209호실로 찾아갔다. 탐정의 실상을 알기 위해 경력 10년의 임병수(47) 탑맨탐정사무소 대표의 사무실부터 탈탈 털기로 한 차였다. 책상 위의 방송용 마이크가 먼저 보였다. 그는 “내 이름을 딴 유튜브 탐정방송에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걸로 의대생 손정민군 사망사건 때 경찰 초동 수사의 문제점과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다”고 첨언한다. 한쪽 구석에 의사봉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올해 1월 창립한 ‘KCI한국탐정연맹’ 회의 때 사용한다”고 했다.

51세 아줌마 탐정 조인숙씨와 10년차 베테랑인 임병수 탑맨탐정사무소 대표.

51세 아줌마 탐정 조인숙씨와 10년차 베테랑인 임병수 탑맨탐정사무소 대표.

연맹을 창립한 이유는.
“국내 탐정협회 또는 연맹이 70여 개다. 지난해 말 이들에 민간 탐정사 자격증 발급권이 부여됐다. 자격증 심사 및 지도·점검 기관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다. 그런데 일부가 제대로 된 교육없이 흥신소·심부름센터 등 음성적 민간 조사업자들에게도 자격증을 장사하듯 마구 내주는 걸 봤다. 이러니 최근 송파구에서 발생한 전 여자친구 모친 살해 사건 같은 불상사가 벌어진다. 범인이 피해자 집 주소를 흥신소를 통해 알아냈다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고 연맹을 만들어 현장 실무와 법·윤리·보안 의식을 집중 교육 중이다. 140여 명의 탐정사를 배출했다. 국가가 자격증 업무만 할 게 아니라 탐정법을 제정해 주무 부처를 정하고 탐정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불·탈법의 싹을 도려내야 한다.”
수료생 중 여성 탐정도 있나.
“51세의 아줌마 탐정(조인숙씨)이 기억난다. 20여년간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육아도 담당해온 억척 주부다. 큰 애가 군대 가고 작은 애는 대학생이 되자 뭘 할까를 고민하다가 이리로 찾아왔다. 드라마 ‘구경이’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더라. 잠복 근무를 해보더니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빡세다고 했다.”

언뜻 캐비닛을 보니 수상한(?) 장비들이 즐비했다. 호신용 장비, 몰래카메라, 도청기, 위치추적기를 탐지하는 신형과 구형 장비, 안경형·차키형 카메라, 드론 등 10여 가지가 전부 탐정용품이라고 했다. “이 모형 권총은 액상 최루액을 넣어 발사하는 호신용이다. 직진으로 5m까지 나간다. 2G폰 형태 휴대폰은 무전기 기능도 탑재돼 있다. 전국 각지의 탐정 수십~수백 명이 한꺼번에 공조 통신할 수 있다. 탐지기를 사용하려면 도감청 관련 중앙전파관리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드론 역시 국가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사생활 침해가 예민한 분야라서다.”

코로나로 의뢰 사건이 줄었나.
“내 경우, 개인 유튜브 방송을 해선지 꾸준하다. 탐정만의 시장이 있다. 민·형사가 복잡하게 얽힌 ‘깡치사건’들이 많이 온다. 아는 형사들이 연결해 주기도 한다. 꼭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요청도 적지 않다.”
기억나는 최근 사건은.
"경기도 안산에 사는 60대 여성이 남동생의 사인 규명을 의뢰해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사인 미상’으로 나왔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지인들에게 둔기로 살해당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사안이다. 사건 현장에서 동생의 머리가 함몰되고 피가 낭자한 걸 봤다고 한다. 술병이 40병이나 널브러져 있었는데 누군가 조작한 거 아니냐는 의심이다. 또 하나는 엄마와 자녀들이 사설 구급차를 불러 아버지를 한달 열흘 동안 강서구의 한 정신병원에 가두고 재산을 빼앗아갔다는 의혹 사건이다. 간신히 병원에서 나온 아버지가 형사 고소와 함께 아들 주소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경기도 모처에 사는 걸 확인해 알려줬다. 솔직히 말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더 늘어났다. 권한이 많아진 경찰은 업무가 늘자 사건을 그냥 종결하는게 많다. 워라밸이 우선인 것 같다.”
탐정스러운, 미스터리 사건도 있나.
"도난당한 시가 300억원 짜리 피카소 그림 2점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 흔적을 추적 중이다. 대기업 회장을 보좌했던 명화 수집가 윤모씨가 제시한 유일한 단서는 시내 유명 호텔에 명화 감정 창구를 연 뒤 그림을 갖고 잠적한 여성(유모씨)의 이름이 적힌 작품 보관증과 명함, 그림 보증서 2장뿐이다. 피카소 그림이 사실이라면 장물인줄 모르고 산 어느 재벌의 손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 2차 추적을 계속할 것이다.”
대기업 회장 보좌진 출신 의뢰인이 찾아달라고 가져온 피카소 그림 두 점의 사진. 조강수 기자

대기업 회장 보좌진 출신 의뢰인이 찾아달라고 가져온 피카소 그림 두 점의 사진. 조강수 기자

직업병도 생긴다던데.
"배우자 불륜 증거 찾는 사건을 많이 하다 보니 아내도 다시 쳐다보게 되더라. 가출 아이들도 많고 사연도 각각이다. 그런 걸 매일 듣고 보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재밌어서, 미쳐서 하지 않으면 못한다.”
탐정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개인 탐정을 넘어 기업 탐정으로 가야 한다. 기업 M&A 때 가치를 평가해 1조원대 살 것을 1000억원에 사도록 조언하면 부가가치가 높지 않나. 미국 탐정들이 주로 그런 일 한다. 국가 탐정도 필요하다. 국가정보원에서 아웃소싱 받아 강대국의 정보를 캐내 전달하는 것이다.”

국내 탐정업계는 과도기를 맞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민간 자격증 발급 기관으로 등록한 57개 탐정 단체 중 31개 단체가 34종류의 탐정 자격증을 발급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이승우 경위는 "현재까지 발급된 자격증 숫자는 지난해 5400건을 포함해 1만3205건”이라고 전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4~2019년 자격증 발급 건수는 4299건에 그쳤다. 지난 2년간 탐정 또는 탐정 예비군이 대폭 늘어났다는 의미다.

사무실 없는 탐정 사무소 수두룩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허수가 많다. 인터넷 검색창만 두드려봐도 금세 알 수 있다. ‘○○탐정사무소심부름센터’ ‘△△흥신소탐정사무소’ 등 혼용 명칭이 줄줄이 나온다. 과거의 심부름 센터, 흥신소가 탐정 명칭만 차용한 것이다. 경찰 출신 탐정 1호라는 박민호(57) 대한탐정협회(PDA) 사무총장은 "흥신소 등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며 탐정업 진출자가 늘고 있긴 하나 코로나 때문에 일감이 감소해 업계가 다 어렵다”며 "홈페이지에 서울에 본사, 전국에 지사가 수십개 있다고 올려놨어도 허위·과장 광고가 적잖고 사무실 없는 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탐정사무소 5곳을 직접 조사했더니 대개 사무실이 없었다.

서울 서초동의 B사무소는 단독 주택에 입주해 있는 것으로 기재됐으나 현장에 가보니 유령 주소였다. 전화를 걸어 사무소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탐정은 주로 현장에서 일한다. 바쁘니 용건을 말하라”고 답했다. 국제업무단지 내 고층 건물로 주소가 나와 있는 M사무소는 "외국기업 고객이 의뢰하는 사건을 유치하려고 주소를 임시로 거기로 해 놓은 것이고 본사 사무실은 일산에 있다”고 밝혔다. 탐정 영업에 사무소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다만 계약 취소, 수임료 마찰 등과 관련해 고객의 불만이나 피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받기가 힘들다.

요즘 탐정업계의 키워드는 협업과 법제화다. 민간 협회나 연맹 중심의 협업·공생 전략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는 게 대세다. 비용 절감을 위해 본사와 지사(센터)로 이분화, 프랜차이즈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학장은 "대부분의 OECD국가들이 ‘공인탐정’ 제도를 채택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등록제라서 사각지대가 많다”며 "신직업 창출의 관점에서 정부 부처가 관장하는 법 체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국가 공인탐정제도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당 국회의원들은 무관심했다. 경찰마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관심이 시들해졌다.

"이 정부 내내 희망고문당한 거다. 탈원전, 부동산 입법은 강하게 밀어붙이더니. 대선 공약 중에 제일 홀대받은 게 탐정 법제화다. 서울디지털대·중부대에 탐정학과가 개설, 운영 중이고 동국대에선 첫 탐정학 박사가 곧 나온다. 길은 멀지만 한 발 한 발 갈 수밖에 없지 않나.”(서울의 한 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