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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날아간 가족사진…겨울철 美강타한 토네이도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12일(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 메이필드시의 '메이필드 컨슈퍼 프로덕츠' 양초 공장이 토네이도에 완전히 파괴돼 있다. [EPA=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 메이필드시의 '메이필드 컨슈퍼 프로덕츠' 양초 공장이 토네이도에 완전히 파괴돼 있다. [EPA=연합뉴스]

“웅크리고 피해(Duck and cover)!”

미국 중동부 켄터키주의 메이필드 양초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어텀 커크스는 10일 밤(현지시간)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공장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4시간 가동 되고 있었다. 토네이도가 공장을 집어 삼킬 무렵 110명 가량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었다.

커크스는 토네이도 경보와 함께 안전용 고글을 벗은 뒤 양초 제조용 왁스와 향을 내던지고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가 곁에 있던 남자친구 레니스 워드를 다시 뒤돌아봤을 때 워드는 잔해 속에 사라지고 없었다.

지난 주말 켄터키ㆍ아칸소ㆍ테네시ㆍ일리노이ㆍ미주리·미시시피주 등 남동부 6개주에 걸쳐 발생한 초강력 토네이도에 사라진 생존자를 찾는 작업이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과 미 CNN 방송 등이 12일 보도했다. 강력한 폭풍우에 가옥 수천 채가 파괴되고 기반 시설이 허물어지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미국 켄터키 메이필드시의 위성사진. 2017년 1월 28일 모습(위)과 지난 11일(현지시간, 아래)의 대비가 뚜렷하다. [AP=연합뉴스]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미국 켄터키 메이필드시의 위성사진. 2017년 1월 28일 모습(위)과 지난 11일(현지시간, 아래)의 대비가 뚜렷하다. [AP=연합뉴스]

12일 현재까지 추가적인 생존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여전히 6개주의 사망자 수가 100명을 초과할 수 있으며, 사고 날로부터 이틀이 경과하면 생존자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했다.

앤디 베시어 켄터키주지사는 CNN에 “가옥 수천 채가 파괴됐다”며 “집집마다 방문해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집이 파괴돼)두드릴 문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희생자 가운데 3살, 5살 어린이가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됐던 켄터키 메이필드시의 양초 공장에서는 당초보다 사망자가 적을 수 있다는 자체 집계가 나왔다.

공장 측인 메이필드 컨슈머 프로덕츠의 밥 퍼거슨 대변인은 12일 “최대 70명이 사망했을 수 있다는 초기 보고가 있었지만, 우리는 8명이 사망했고 8명은 실종된 것으로 파악했다”며 “실종 규모가 훨씬 적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일(현지시간) 켄터키 메이필드시의 완전히 파괴된 집 앞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AF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켄터키 메이필드시의 완전히 파괴된 집 앞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AFP=연합뉴스]

처음 “100명이 넘어갈 수 있다”고 밝혔던 켄터키 주정부는 같은 날 “50명까지 낮아질 수 있다”면서도 정확한 사망·실종 규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베시어 주지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공장주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바라던 기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사망자 신원도 속속 나오고 있다. 토네이도 경보가 울렸을 때 양초공장에 머물렀던 다코타 무어(20)는 “귀가 울리기 시작했다. 화장실 근처의 복도에 100명 정도가 몸을 숙이고 있었고, 내가 나이 든 여성 분에게 가려고 하는 순간 벽이 나를 덮쳤다”고 말했다.

일리노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화물 운전사로 일하던 오스틴 매큐언(26)은 화장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 됐다. 그는 경찰이 초기에 확인한 6명의 사망자 가운데 한 명이다. 생존자들은 “아마존 관리자들이 화장실로 대피하라는 안내를 했다”고 증언했다. 켄터키주의 지방법원 판사 브라이언 크릭(43)도 이번 토네이도에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디애나주 뉴올버니에 살고 있는 케이티 포스텐이 자신의 차 앞유리에서 11일(현지시간) 발견한 사진. 그는 주경계를 맞댄 켄터키에서 날아온 사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케이티 포스텐 제공·AP=연합뉴스]

인디애나주 뉴올버니에 살고 있는 케이티 포스텐이 자신의 차 앞유리에서 11일(현지시간) 발견한 사진. 그는 주경계를 맞댄 켄터키에서 날아온 사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케이티 포스텐 제공·AP=연합뉴스]

켄터키주에서 직선거리로 130마일(209㎞) 떨어진 인디애나주 뉴올버니에서 바람에 날려온 가족 사진이 발견되기도 했다. 토네이도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뉴올버니에 살고 있는 케이티 포스텐은 11일 아침 집앞에 주차된 차 앞 유리에 붙어있는 흑백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선 한 여성이 어린 소년을 안고 있었다. 뒷면에는 이름과 함께 ‘1942’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간밤 켄터키의 토네이도를 떠올린 포스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고, 사진 속 가족이 켄터키주 도슨 스프링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2일까지 포스텐은 답변을 받지는 못 했다고 한다. 인구 약 2700명의 도슨 스프링스는 가옥들이 성냥개비처럼 파괴되는 등 피해가 커 생존자 수색 및 복구 작업이 한창인 곳이다.

존 스노우 오클라호마대 기상학 교수는 “사진이 130마일을 여행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며 “1920년대 기록에선 종이 파편이 230마일(약 370㎞)까지 이동한 적도 있다. 회오리 바람은 파편을 지상에서 3만~4만 피트(약 9.1~12.1㎞)까지 밀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켄터키주의 센트럴 시티에서 칼렌 스텐리가 12일(현지시간) 반려견을 안고 친지의 집 앞에 앉아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켄터키주의 센트럴 시티에서 칼렌 스텐리가 12일(현지시간) 반려견을 안고 친지의 집 앞에 앉아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깔때기 모양의 강력한 회오리 바람인 토네이도는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서 형성된다. 보통 매년 봄철 발생하며, 겨울철 토네이도는 흔치 않다고 한다. 디앤 크리스웰 미 연방재난청(FEMA) 청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폭풍은 전례가 없다“며 “기후 변화는 우리 세대의 위기이며, 이는 새로운 표준(new normal·뉴 노멀)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번 토네이도가 이상 기온과 직접 연관된 것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던 일리노이대의 토네이도 전문가 빅터 겐시니 교수는 “장기간 경향성을 보면 대규모 토네이도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세기가 강하고,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겐시니 교수는 지난 40년 간 토네이도 발생 위치가 ‘토네이도의 길목’으로 불린 미 남부·중부 대평원에서 남동부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미시시피강 동부의 인구 밀집지역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일대 환경대학원의 제니퍼 말론도 “토네이도의 원인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이번 토네이도와 같은 사례는 강도 뿐 아니라 발생 간격까지도 기후 변화와 연관이 돼 있다는 매우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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