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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거 다 하고 살았다"…평생이 '삼팔광땡'이라는 조영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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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 청담동 조영남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가수 조영남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터뷰 후 청담동 조영남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가수 조영남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삼팔광땡'을 그린 작품 앞에서 15일 공개 예정인 '삼팔광땡'을 부르고 있는 가수 조영남. 두 가지 버전의 가사를 앨범에 실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삼팔광땡'을 그린 작품 앞에서 15일 공개 예정인 '삼팔광땡'을 부르고 있는 가수 조영남. 두 가지 버전의 가사를 앨범에 실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수 조영남(75)이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을 오는 15일 낸다. 1968년 '딜라일라'로 데뷔해 실제로는 데뷔 53주년이지만, 그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오히려 "'50주년' 하면 늙어 보여서, 난 빼고 싶었다"고 했다.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 '삼팔광땡' 15일 공개

타이틀곡 '삼팔광땡'은 화투 게임 '섰다'에서 가장 좋은 패의 이름이다. 조영남은 "내 인생은 늘 ‘삼팔광땡’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작곡한 정기수와 작곡가 한빈이 공동 작사·작곡한 곡이다. 조영남은 "조용필이 '바운스', 나훈아는 '테스형'을 하는데 넌 뭐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부끄러워져서 만들었다"고 했다. 작곡가 정기수를 만난 후 트로트 풍의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트로트에서 '화개장터' 만큼 빵 터지는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앨범 발매 후 전국 투어 콘서트도 계획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됐다.

53년 최애곡은 '나 어느 변방에~' 노래하는 '모란동백'

53년 가수 생활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는 2012년 낸 '모란동백'을 꼽았다. 이제하 시인이 1998년 작사, 작곡한 곡을 2012년 조영남이 리메이크한 곡이다. 그는 "내 장례식장에는 '딜라일라' '화개장터' 말고 '모란동백'을 틀라고 할 것"이라며 "'나 어느 변방에'라는 가사가 아웃사이더인 내 입장을 잘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수 생활을 돌아보며 "할 만큼 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소리 날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고 했다. 또 "가수 조영남으로서는 자기 자랑을 안 하는 편"이라며 "내가 한량없이 주책을 부리는데도 많은 팬들이 너그럽게 봐준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50년 동안 대우받았으니, 이 정도 유배는 참아야"

10일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만난 가수 조영남. 한창 작업중인 자신의 작품 앞에서 붓을 들었다. 클림트 '키스' 에 화투 그림을 덧입힌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0일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만난 가수 조영남. 한창 작업중인 자신의 작품 앞에서 붓을 들었다. 클림트 '키스' 에 화투 그림을 덧입힌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번 앨범 표지는 클림트의 '포옹'을 토대로 화투를 덧입힌 그의 작품이다. 조영남은 "'키스'가 세계적으로 더 알려져있지만 난 '포옹'이 더 좋더라"며 "클림트가 금색으로 화려함을 표현했는데, 나는 화투로 화려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림 대작 사건’으로 지난해까지 5년 가량 방송에 얼굴을 거의 비추지 못했지만, 그는 지금도 그림을 계속 그린다. 2016년 조영남이 사기죄로 기소된 ‘그림 대작 사건’은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2심 무죄, 2020년 3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추가로 기소된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올 5월 무죄 판단이 나왔다. 조영남은 "죽어지내면서(그는 지난 5년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50년 동안 국가로부터 대우를 충분히 받았으니, 이 정도 유배 생활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유배 간 사람들이 일 열심히 하고 책도 썼던 것처럼, 그림 열심히 그리고 책도 두 권 썼다"고 했다.

"이제 절반 이상은 '조영남이 그림 그린다' 알아"

조영남은 '대작 사건' 당시 논란이 됐던 '극동에서 온 꽃' 원화를 꺼내와 보여줬다. 작은 캔버스에 카드와 화투를 오려붙이고, 채색과 싸인까지 모두 조영남이 직접 작업했다. 이 원화를 작업실에 보내면, 조금 더 큰 크기의 캔버스에 물감으로 옮겨 그리는 작업을 조수가 담당한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조영남은 '대작 사건' 당시 논란이 됐던 '극동에서 온 꽃' 원화를 꺼내와 보여줬다. 작은 캔버스에 카드와 화투를 오려붙이고, 채색과 싸인까지 모두 조영남이 직접 작업했다. 이 원화를 작업실에 보내면, 조금 더 큰 크기의 캔버스에 물감으로 옮겨 그리는 작업을 조수가 담당한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대작 사건' 이후에도 바탕 그림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다만 그는 "이제 직접 하지 않고 갤러리를 통해서 한다"고 했다.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색이 변하지 않는 잉크로 인쇄해둔 종이 화투를 잘라 구성해 붙인 원화를 보낸 뒤, 그 원화를 물감으로 그려낸 '바탕그림'을 받는다. '직접 그리면 간단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해외 현대미술, 팝아트 작가들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답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그리는 그림은 화투 그림과는 색이 다른, 부드러운 풍의 그림들이다. 최근에는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직접 그린 그림만으로 작게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림 20여점을 환불해주고, 소송 비용을 대느라 생전 처음 대출을 받아봤다는 조영남은 그럼에도 "국가가 나를 가수로 키워줬듯, 나라가 나를 화가로 키워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경쾌하게 말했다. "그 사건 전에는 10명 중 한두명만 '조영남이 그림 그린다'는 걸 알았는데, 이제는 절반 이상은 아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조영남 자택 바닥에 놓여있는 작업 중인 화투 원화들. 바닥에 놓인 화투는 진짜 화투가 아니라 종이에 인쇄한 가짜 화투다. 색이 변하지 않는 잉크로 4~5가지 크기를 주문제작해두고 작업에 사용한다. 김정연 기자

조영남 자택 바닥에 놓여있는 작업 중인 화투 원화들. 바닥에 놓인 화투는 진짜 화투가 아니라 종이에 인쇄한 가짜 화투다. 색이 변하지 않는 잉크로 4~5가지 크기를 주문제작해두고 작업에 사용한다. 김정연 기자

"75년 만에 처음 전자레인지 써봤다"

조영남은 컴퓨터를 쓰지 못한다. 최근 연재 중인 중앙선데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원고도 원고용지에 빨간색 펜으로 쓴 다음 퀵으로 보낸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조영남은 컴퓨터를 쓰지 못한다. 최근 연재 중인 중앙선데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원고도 원고용지에 빨간색 펜으로 쓴 다음 퀵으로 보낸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과거의 명성에 비해 최근 조영남에 대한 대중 호감도는 낮은 편이다. 그는 "가수로 성공했는데 왜 미술에 들어가서 시끄럽게 구냐, 하는 시선이 가장 큰 것 같고, 자식과 부인을 버리고 바람피워 집을 나간 게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바꿔볼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솔직하게 말하는 걸 자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루 7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림, 음악, 글쓰기로 하루를 꽉 채워 보내지만 생활력은 ‘0’이다. 평생 살면서 전자레인지를 최근에야 처음 사용해봤을 정도다. 컴퓨터를 쓰지 못해 책이나 연재 원고도 모두 원고용지에 빨간색 펜으로 쓴다.

유서에 '(몰래)' 써넣고, 묘비명은 '웃다 죽다'

조영남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직접 그린 그림은 '화투' 그림들과는 다른 연한 톤이 많다. 조영남의 자택 거실에 놓인 자화상. 김정연 기자

조영남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직접 그린 그림은 '화투' 그림들과는 다른 연한 톤이 많다. 조영남의 자택 거실에 놓인 자화상. 김정연 기자

나이 탓에 걸음도 느려지고 붓을 든 손도 느릿느릿, 노래할 때 숨도 조금 짧아졌지만 말은 여전히 빠르고 거침없었다. 불편한 질문에도 화를 내거나 답을 피하지 않았다. 2009년 일찍이 '장례 퍼포먼스'를 하고, 최근 한 방송에서 10년째 뇌출혈 예방약을 복용 중이라고 밝혔던 조영남은 "죽음을 얘기해야 순간순간 살아있는 걸 더 알 수 있다"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했다.

조영남은 미리 써놓은 유서에 '내가 죽으면 벽지에 가서 태운 뒤 영동대교 한가운데서 (몰래) 뿌려달라'고 썼다고 했다. 그는 "10년 넘게 영동대교를 보고 살아서 그렇게 썼는데, 그게 불법이라길래 가운데에 '(몰래)'를 넣었다"고 태연하게 덧붙였다. 만약에 묘비를 만든다면 그가 생각해둔 묘비명은 '웃다 죽다' 딱 네 글자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잘 죽냐가 문제지 더이상 뭘 하겠냐"며 "내가 나가다 뇌출혈로 쓰러질 수도 있고, 앞으로의 시간이 보장돼있지 않으니 지금 사는 것처럼 즐겁게 쭉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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