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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바다 건너 언니와 얼굴 마주보며 안부 나누는 세상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20)

햇살이 유난히 화사한 날이어서였을까. 서해에서 동해의 느낌이 느껴질 정도로 파란빛이 짙고 깊었다. 회색 갯벌에 익숙한 서해에서 말이다. 아직 이른 오전이었지만, 방문객과 상인들로 분주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북적댔을 것이 분명하다. 분주한 궁평항 주변을 산책했다. 물이 들어와 있는 부두에 배가 모여 있는 포구의 풍경은 언제나 정겹다.

지구 반대편의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서해바다를 보여주었다. 언니가 한국을 떠난 지 오랜 세월이니 이제 언니에게는 익숙한 곳보다 낯선 곳이 더 많아진 고국일지도 모른다. [사진 전명원]

지구 반대편의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서해바다를 보여주었다. 언니가 한국을 떠난 지 오랜 세월이니 이제 언니에게는 익숙한 곳보다 낯선 곳이 더 많아진 고국일지도 모른다. [사진 전명원]

사방에서 어부들의 함성이 들렸다. 줄을 던지라거나, 더 가까이 대야 한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궁평항은 어쩐지 회나 해산물을 먹고 가는 곳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의 궁평항은 포구의 활기참이 있었다. 포구에 한껏 물이 들어온 물때가 맞았던 것일까.

전에 왔을 때 비해 피싱 피어로 가는 주변이 잘 단장되었다. 차량 통행을 관리하는 바리케이드가 생겼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모인 휴식공간도 정비된 궁평항 주변은 전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쾌적했다. 다만 피싱 피어는 코로나로 인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발길이 막힌 곳이 어디 피싱 피어뿐이랴 싶었다.

지구 반대편의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서해를 보여주었다. 언니가 한국을 떠난 지 오래인 세월이니 이제 언니에게는 익숙한 곳보다 낯선 곳이 더 많아진 고국일지도 모른다. 마침 추수감사절 방학으로 집에 며칠 와있다는 조카의 반가운 얼굴도 오랜만에 보았다. 핸드폰을 돌려 조카에게도 한국의 바다를 보여주었다. “한국의 웨스티씨야”라고 언니는 조카에게 설명했다.

나는 궁평항의 피싱 피어를 보면서 오래전 언니와 갔던 산타모니카의 피싱 피어를 생각했다. 처음 가본 미국의 바다였고, 그 바다 끝에 내 나라가 있다는 신기한 기분으로 오래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여행자일 뿐이었으므로 딱 그만큼의 감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해외에서 오래 산 교포들이 바다 건너 고향 땅을 떠올렸다는 말을 들으면, 아주 조금은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바다 건너편에 내 고향이 있다’라는 기분은 나에게 있어선 ‘바다 건너편에 내 유일한 혈육인 언니가 살고 있다’라는 것과 조금은 비슷했으니 말이다.

궁평항의 피싱 피어를 보면서 오래전 언니와 갔던 산타모니카의 피싱 피어를 생각했다. 처음 가본 미국의 바다였고, 그 바다 끝에 내 나라가 있다는 신기한 기분으로 오래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궁평항의 피싱 피어를 보면서 오래전 언니와 갔던 산타모니카의 피싱 피어를 생각했다. 처음 가본 미국의 바다였고, 그 바다 끝에 내 나라가 있다는 신기한 기분으로 오래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언니가 아들에게 ‘한국의 웨스트씨’라고 설명한 궁평항의 바다는 어쩌면 또 다른 어느 날에 조카에게 떠오를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한국의 바다 풍경을 본다면 ‘예전에 이모와 영상통화를 했었지. 그때 이모는 한국의 웨스트씨에 있다고 했었는데’하고 말이다. 그렇게 기억은 추억으로 남겨지길 희망해본다.

궁평항의 피싱 피어를 걸어볼 수는 없었지만 입구에 서서 길게 이어지는 피싱 피어와 반짝이는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푸르고,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다. 지구 반대편의 언니와 조카의 얼굴을 보며 짧게나마 안부를 전한 시간을 다시 떠올렸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자주 만나기 힘든 거리다.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나눈다. 마스크 이야기를 하고, 곧 학교로 돌아가는 조카와 인사를 하고, 날씨며 소소한 음식 이야기를 한다.

예전 부모님이 뭔가 새로운 것을 보시면 종종 하던 말씀을 떠올리며 웃었다. “좋은 세상이다.” 어쩌면 ‘좋은 세상’이면서 ‘다행인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끝나지 않는 팬데믹의 와중에도 지구 반대편의 멀리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보며 안부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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