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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꼬리 빼지마요, 짜증나니까…찌질하네요" 갑질 판사의 막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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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법정에 출석한 한 피고인은 재판부가 인적사항을 묻고 답하는 인정신문 도중 A재판장에게 “피고인, 말꼬리 길게 빼지 마세요. 듣기 짜증 나니까. 한 번만 더 그렇게 말하면 구속되는 수가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름을 이야기할 때 똑 부러지게 하지 않고 말꼬리를 길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피고인 입장에선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재판장으로부터 구속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A재판장은 이 사건 마지막 공판기일에도 피고인이 눈물을 흘리며 최후 변론을 마치자 “피고인 정말 찌질하네요”라고 말한 뒤 선고기일을 고지했다.

이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3일 공개한 ‘2021년도 법관 평가 문제사례’에 소개된 사례다. 올해 법관평가에서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들은 일부 판사들의 고압적 자세와 조정 강권, 불공평한 재판 진행 문제 등을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들 1703명들이 참여해 전국 3130명의 법관을 평가했다.

서울변회는 변호사 10명 이상이 평가한 법관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하위 법관 5명에 대해선 소속 법원장에게 하위 법관 선정 사실을 통지했다. 이들 하위법관은 ▶대구고법 ▶서울중앙지법 ▶서울동부지법 ▶수원지법 안양지원 ▶대전지법 소속 1명씩이다.

문제 사례에는 심리가 진행 중인데도 재판부가 선입견을 드러내는 사례도 있었다. 한 법원의 형사재판부 B재판장은 첫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공소사실을 부인하자 매우 짜증스러운 말투로 “피고인의 변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 유죄다”라고 말했다. 공개된 법정에서 유죄 심증을 드러내고, 피고인에게 자백을 압박한 셈이다. 심지어 B재판장은 변호인에게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벌금을 올리겠다”고 이야기하고, 검사에게 피고인이 무혐의 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법정 내 고압적인 태도 문제는 이번에도 지적됐다. C재판장은 소송 당사자들이나 대리인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은 물론 대리인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도록 요구한 후 “당신은 변호사 자격이 없으니 다음부터 오지 말라”는 모욕주기식 발언을 하기도 했다. D판사는 원고의 소취하에 피고 측에 소 취하 동의를 강요하다 이에 응하지 않자 “판결문 같은 내용의 서면을 써오라. 그것을 보고 판결하겠다”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민사재판에서 과도하게 조정을 압박하는 판사도 있었다. E판사는 소송당사자들에게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내비치며 조정을 강요했다. E판사는 피고인 측이 공소사실에 대해 반박하자, 소송지휘권을 과도하게 행사해 검사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며 공소장 변경을 지시하기도 했다.

반면 충분한 변론 기회를 주고 치우침 없이 충실하게 재판을 진행한 판사 28명은 ‘우수 법관’으로 뽑혔다. 서울중앙지법의 이유형 부장판사가 99.14점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자녀 입시 비리’ 사건 1심 주심을 맡아 징역 4년을 선고했던 권성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문재인 대통령 간첩’ 발언으로 기소된 전광훈 목사에게 1심 무죄를 선고한 허선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우수 법관으로 선정됐다. 허 부장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수 법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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