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한눈에 보이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아주 좋은 스피커로 멋진 음악, ‘류승룡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차 한 잔 마시면서 그냥 멍때리는 거죠. 얼마나 좋겠어요.” 배우 류승룡은 자신이 꿈꾸는 집을 풀어놓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원에는 해먹도 놓고, 모닥불도 피우고…. 너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면서다.
빈집 재생 프로젝트 ‘빈집연가' #①배우 류승룡 ‘하천바람집’
그의 로망은 곧 현실이 된다. 빈집 재생 숙박 스타트업 ‘다자요’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빈집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또다른 인연을 이어보자는, ‘빈집연가’(緣家ㆍ인연이 있는 집) 프로젝트의 1호 참여자가 류승룡이다. 류승룡이 지난 10월 5일 소속사인 서울 강남구 프레인TPC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담은 ‘하천바람집’을 소개했다.
손자 결혼까지 시킨 4·3 피난민의 집
제주시 표선면 하천리에 있는 이 집은 제주 4·3 사건 때 쫓기듯 밀려나 정착한 집주인이 손자의 결혼식까지 치렀던 곳이다. 한동안 집을 지키는 이가 없어 방치됐던 이 집은 류승룡의 이야기를 담아 새롭게 탈바꿈 중이다. “이 집이 지닌 세월과 시간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류승룡은 가족의 사진이 어지러이 붙어있는 큼지막한 액자나 요강, 시계 등 이 집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던 물건은 가능한 한 버리지 않고 남겼다.
옛것은 최대한 살리되 그만의 취향도 마음껏 반영했다. 원래 집주인이 살던 안채 외에 창고로 쓰던 공간을 별채로 개조해 꾸민 다도방이 대표적이다. 대본을 연습할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염두에 둔 곳이다. 곳곳엔 다도상을 비롯해 직접 만든 공예 작품을 놓을 예정이다.
안채와 별채를 이어주는 툇마루도 만들었다. “비 오는 날 툇마루에 앉아 빗물에 파이는 흙을 보면서 빗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똥돼지를 키우던 옛 화장실은 별을 보며 반신욕을 할 수 있는 야외욕조로 변신한다. 여기에 하이엔드 스피커를 통해 그가 직접 선곡한 음악까지 흘러나온다면 그의 로망은 완성. ‘하천바람집’을 소개하면서 연신 “캬~ 너무 좋을 것 같지 않아요?”를 외치던 그는 “집이 완성되면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하천리 마을지도도 직접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하천바람집이란 이름은 예부터 바람이 많은 하천리의 특성에서 땄다. “표선면은 제주에서도 바람이 많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이었대요. 원주민들은 바람을 이용하면서 바람과 함께 살아온 거죠.” 류승룡이 하천리 이장으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집에는 ‘바람과 함께 머물기 바람’이란 의미를 담았다. 그는 “바람을 안고 더불어 사는 집, 바람(wind)과 바람(hope)을 녹여내는 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바람’(wind)과 ‘바람’(hope)을 녹여내는 집”
류승룡은 사실 다자요 창업 초기 크라우드펀딩으로 빈집 재생에 참여한 투자자다. 몇 년 전 올레길에 왔다가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다자요 숙소에 묵었던 게 계기였다. “정갈하면서도 현무암 정원에 귤나무를 무심하게 툭툭 놔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로컬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그는 우연히 와디즈 사이트에서 다자요를 발견하고 몇 번의 클릭으로 다자요 개인주주가 됐다. 개인이 소액으로 자금을 대고, 연간 40박 숙박권을 받는 조건이었다. 개인주주 명단을 보고 동명이인인 줄 알았던 다자요 측은 그가 첫 숙박을 하러 와서야 그의 정체를 알았다고 한다.
투자 전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마을 한복판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마을을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조용히 여행을 즐기면서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도 되고 환영받을 수 있는”, 그가 그리는 공정여행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게 바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여행의 매력”이라고 했다. 하천바람집 운영으로 얻는 수익의 1.5%는 류승룡의 이름으로 마을에 기부된다.
“저에게 여행이란 쉼이자 쉼을 나누는 거예요. 좋은 게 있으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같이 보고, 같이 먹고, 같이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요. 제가 느꼈던 고즈넉함과 새로움, 쉼을 많은 사람이 공평하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