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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가도 아니다" 격한 성토 쏟아낸 尹, 타깃은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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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건 국가도 아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강원도 선대위 발대식’에서 한 말이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문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대장동 의혹’ 검찰 수사를 성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제1야당의 대선후보임을 감안하더라도 현 정부에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그가 두 차례나 “국가도 아니다”고 강한 톤으로 비판한 건 이례적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저는 법조인이라는 공직을 천생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국민의 열망과 부름을 제가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정치에 적극적이었다기보단, 정부 실정(失政)에 신음하는 국민이 자신을 정치권으로 불러냈다는 의미다. 해당 발언에 대해 윤 후보 측 인사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치 회복과 국민 보호라는 윤석열의 소명의식과 정치 철학이 잘 드러난 발언”이라고 부연했다.

그가 유력 야당의 대선 주자가 된 배경도 이와 직결된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법치와 공정의 가치가 흔들린다는 여론 속에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대립하면서도 소신을 지켰고, 이런 과정을 지켜본 국민의 뇌리엔 윤석열 이란 이름 석 자가 새겨졌다. 그런 만큼 당시 상황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게 윤 후보의 구상이라고 한다.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면서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앞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거리 플렛폼74에서 열린 청년문화예술인간담회를 마친 뒤 거리인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거리 플렛폼74에서 열린 청년문화예술인간담회를 마친 뒤 거리인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렇다면 윤 후보가 말하는 법치 회복은 뭘까. 윤 후보와 가까운 한 인사는 “최근 윤 후보가 '지금까지 대통령의 지위는 헌법 위의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이를 헌법 테두리 안, 본래의 자리로 원위치시키겠다'고 하더라”며 “이를 위해선 청와대 권한 내려놓기와 권력 분산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윤 후보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런 윤 후보의 '대통령관'은 지난 7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만났을 때도 묻어났다. 당시 윤 후보는 “대통령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건 헌법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과 법의 지배를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말했고, 최 교수는 “대통령의 권력을 하향·분산시켜야 하는 점은 맞다. 다만, 개헌보다는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헌법 틀 안에 있는 총리의 역할이 보장되면 내각의 결정권이 많아지고, 집중된 청와대의 권한을 줄일 수 있다는 교수님의 지적에 공감한다”고 호응했다.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윤 후보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몸소 체감한 데다, 정치선언 후 진보진영의 거목인 최 교수 등의 조언을 받아가며 나름의 정치 철학을 형성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강원 강릉중앙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강원 강릉중앙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론에선 차이가 있지만, 다수의 정치권 원로들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한다. '친노무현계'였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통화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지 않고서 다른 것들을 개혁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게 내가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강조해 온 지론”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출신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사람만 바뀐다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개혁되진 않을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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