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⑭"이대론 못 죽겠다"...'멍청비용' 5500만원 날린 30대 살린 것 [목소리 사기, 7000억 시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제가 당했다는게 가장 큰 충격이었어요.”

20대 대학생 A씨는 대학 4년간 아르바이트로 모은 1050만원을 잃었다. 400만원은 뒤늦게 돌려받았지만, 꿈꾸던 유학은 접어야 했다. 대구지방검찰청 ’이준석 검사‘ 사칭을 한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돈과 꿈을 모두 빼앗긴 것이다. A씨는 “피해 당일에는 멘털이 나갔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피해 사실이 부끄러워 숨길까 고민했지만, 정신 건강에 좋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피해 사실을 주변에 털어놨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 말말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피해자들 말말말.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멍청비용’ 자책 심해…엘리트도 당한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일부는 보이스피싱으로 잃은 돈을 ‘멍청비용’이란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왜 속았냐”며 개인 과실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인 게 현실이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은 직업, 연령, 성별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대환대출 사기에 넘어간 의사 등 전문직 사례도 적지 않다. 금융기관 종사자가 금융감독원 사칭범에게 당하기도 한다.

‘박석용 검사’ 사칭으로 5500만원을 피해 본 30대 직장인 B씨는 “안 좋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억울함과 분함에 이대론 못 죽겠다, 죽더라도 피해 입힌 사람에 대해선 되돌려주고 죽는 게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경찰서에서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민간 기관과 연계해줘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위한 경찰서 내 심리지원 방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위한 경찰서 내 심리지원 방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초기 응급 상담 전문가 필요

인천 남동경찰서 청문감사인권관실에서 피해자 보호를 전담하는 정현정 경사는 “강력범죄 피해자보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심리적 도움을 받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들도 경제적 회복뿐 아니라 심리적 회복도 필요하다”며 “본인 과실이라는 인식이 있어 실질적 도움으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보이스피싱 범죄로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안정과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개선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사기범죄 피해 치유센터’를 운영하고 전화 상담과 온라인 기반으로 실시간 채팅 상담을 365일(24시간) 전국 단위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위드보이스피싱’ 인프라 준비해야

일부 지자체에서는 보이스피싱 피해 관련 조례를 지정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최근 경기도에서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지원 조례’를 시행 중이다.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교육 사업을 실시하고, 피해 예방 교육 전문 강사 육성 및 지원,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 예방 및 구제를 위한 안내 및 홍보가 주요 내용이다.

예방적 조치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사후 관리, 즉 정신적·경제적 지원 방안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도박이나 중독 관련 상담 프로그램이 있는 것처럼 보이스피싱에 프로그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택트 사회에 더욱 진화하고 창궐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도우려면 ‘위드보이스피싱’ 인프라를 하나씩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