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현숙의 미래를 묻다

바이러스는 계속 몰려온다, 그러나 두려워 말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팬데믹의 미래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백신 접종률이 80%가 넘는데도 연일 하루 확진자가 7000명 안팎이고 중증 감염자용 병상이 가득 찼다. 겁을 먹은 사람들은 일상 회복을 다시 멈추라고 한다. 도대체 팬데믹 즉,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의 끝은 있는 걸까. 이 팬데믹이 끝나도 계속 전염병이 올 거라고 하는데 마스크는 영영 벗을 수 없는 것인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오직 사실만이 너를 이끌도록 하라.’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뉴욕타임스가 내걸었던 표어다. 나는 여기서 ‘사실’을 ‘데이터’로 치환한 표어를 이 괴이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토로 삼았다. ‘불확실성의 시대, 데이터가 나를 이끌도록 하라.’ 과학자들은 지난 2년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그를 이길 무기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충분한 데이터가 쌓인다면 증거 기반의 과학의 힘은 팬데믹을 이겨내고 다음에 다시 전염병이 오더라도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아줄 것이다.

감염자 늘수록 변이 가능성 커져
진단·백신기술 개발 속도도 가속

K방역은 의료계 헌신에 의지해
현장진단 등 속도·범위 바꿀 때

3차 접종 마치면 일상회복 기대
정부는 과학계 목소리 경청해야

불확성의 시대, 과학자의 임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 변이인 오미크론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 변이인 오미크론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박쥐에게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사스·메르스와 함께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로 분류된다. 바이러스 유전체 연구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체의 변이 패턴이 사람으로 옮겨오기 쉽게 구성돼 있음을 지적한다. 영국 캠브리지 생어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곳이다. 알파·베타·감마·델타 변이를 생어연구소에서 밝혀냈다. 엄청난 양의 바이러스 유전체 분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곳 과학자들은 처음 알파 변이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 전 잠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세계인들이 이 변이를 영국발(發) 변이로 오해하고 비난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를 추적하고 이해하는 것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지름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발표한다. 유전체 빅데이터는 앞으로 어떻게 변이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제2, 제3의 백신을 빠르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우리나라의 바이러스 유전체 분석률은 15.7% 정도이다.

사람이 하루에 호흡하는 바이러스는 1억 개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은 우리가 이미 항체가 있기에 위험하지 않다. 새로 만난 낯선 바이러스가 문제가 되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랬다. 감염이 시작되면 진단을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재빨리 격리하는 것이 확산을 막는 지름길임은 자명하다. K방역은 지금까지 추적(trace)·검사(Test)·치료(treatment)의 3T를 체계적으로 운영하였다고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일일 확진 7000명을 넘나드는 지금도 같은 방법, 같은 속도의 진단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이 최선일까. 진단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하고 진단의 범위를 더 늘려야 한다. 민감도와 특이도가 높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진단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함께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행정력이 필요하다. 지금도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은 검체를 중앙 연구실까지 배달하지 않고 현장에서 검체 채취부터 진단·통보까지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장 검사는 집단 감염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검체 채취부터 진단까지 1시간

하버드와 MIT 사이에 있는 브로드연구소는 현장에서 빠르고 값싸게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한 시간 안에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이 방법은 셜록(SHERLOCK)이라고 명명됐다. 현장에서 큰 장비 없이 유전자를 증폭할 수 있는 등온핵산증폭법에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 기술’을 접목하여 정확성을 더했다. 셜록을 활용하여 매사추세츠주(州)의 사람들을 전수 조사하다시피 검사했다. 브로드연구소 수장 에릭 랜더는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후 장관급 과학정책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에서도 비슷한 기술의 디텍터(DETECTR)가 개발됐다. 디텍터에 소요되는 시간은 35분이다. 유전자 교정 기술의 개발로 2020년 노벨 화학상의 영예를 안은 제니퍼 다우드나 박사가 버클리에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서울대는 대학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장에서 검체 채취부터 진단 통보까지 한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원스톱 분자 진단 검사소를 8개월간 운영해 왔다. 외국 사례들을 참조하였으나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고 주로 등하교를 하는 학교라는 점을 반영하여 우리 실정에 맞게 설계한 서울대의 교내 원스톱 검사는 빨리 결과를 알게 된다는 편리함에 더해, 선제적으로 양성자를 감별해 냄으로써 집단 감염을 막은 상당수 사례를 확보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이 11개월 만에 개발되고 80%의 국민이 백신 접종을 마쳤는데 왜 아직도 공포에 떠는가. 처음 등장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지금쯤 바이러스 확산은 잦아들고 우리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감염이 많을수록 변이가 탄생할 확률이 높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대유행이 이어지니 변이는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도에서 델타 변이가 등장했고, 델타가 등장한 이후로 집단 면역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전염력이 강한 델타 변이의 등장 이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력이 있는 사람과 감염될 사람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오미크론은 델타보다도 전염력이 더 크다고 하니, 항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다 델타나 오미크론에 걸릴지도 모른다.

미국 대학들의 성공적 사례

백신 접종률이 더 올라가고 3차 추가 접종까지 마친다면 일상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99%인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교는 수업을 비롯한 모든 활동을 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는데도 감염자 발생률이 1% 미만이라고 한다. 접종률 98%를 완성한 MIT도 1% 미만이다. 데이터를 공개한 스탠퍼드, 펜실베이니아대학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학교들은 백신 접종 전에는 일주일에 2번씩 교내 검사를 의무화했고 백신 접종 후에도 무작위로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결과는 대부분이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진단을 병행한다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번 팬데믹의 히어로는 mRNA 백신일 것이다. mRNA 백신은 그 가능성에 대해서 수십 년 전부터 논의되었으나 사람에게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눈부신 속도로 개발돼 코로나19 팬데믹의 출구를 여는 일등 주자가 되고 있다. 또다시 미지의 바이러스가 나온다면 그에 대한 첫 번째 백신도 mRNA 백신이 될 전망이다. mRNA는 합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 유전체 서열에 맞추어 금방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mRNA 백신이 전 세계인을 다 접종할 수 있을 만큼 대량으로 생산되기는 쉽지 않다. RNA가 안정되도록 화학적으로 변형하고 지질 막에 쌓아 세포까지 잘 도달하게 해 줄 여러 건의 기술이 특허로 보호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끝나지 않으면 팬데믹의 종식은 요원하기에 mRNA 백신만으로 팬데믹의 끝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백신 불평등은 돌고 돌아 인류를 계속 불안에 떨게 할 것이다. 그러니 mRNA 백신보다 더 싸고 효과가 좋은 백신의 개발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새로운 백신 제조법이 개발될수록 미래를 대비할 무기가 많아진다.

문제는 데이터 확보, 다시 과학이다

방역 당국은 내년 3월까지만 의료체계가 버텨 줄 수만 있다면 백신도 충분히 맞았으니 코로나19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화이자·머크 등이 개발한 먹는 코로나 치료제가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는 바이러스가 증식되는 것과 증상이 악화하는 것도 함께 막는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어도 무증상과 경증 환자 비율이 80% 정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누가 심하게 앓을 것인지 예측할 수만 있다면 불안감은 경감될 것이다. 감염 후 일어나는 각 사람의 면역 체계를 단일 세포 단위에서 분석하고 빅데이터라 불릴 만큼 충분한 데이터가 쌓인다면 바이러스 감염 후에 일어날 증상을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데이터의 양이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연구에 동참할 감염자들을 구하기 힘들다. 인공지능 시대라 하지만 데이터가 없으면 적용할 수가 없다. 모두의 미래를 위해 데이터를 제공하고 축적하는 일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바이러스는 계속 올 것이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나아가 많은 병을 한꺼번에 진단할 수 있는 진단 기술이 개발되고 있고 백신의 개발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돈과 명성을 좇던 과학계는 팬데믹을 지나면서 공중 보건학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더 많은 이들이 공중 보건에 관련된 연구에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과학계와 정부가 반성해야 할 대목 또한 있다. 우리의 안전은 헌신적인 사람들의 희생과 맞바꾼 것이었지 첨단 과학의 힘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데이터 생산의 중요성을 깨닫고 데이터를 생산하고 공유하며 협업을 늘려야 한다. 정부는 지금보다 더 많이 과학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늦지 않았다. 다시 과학이다.

◆이현숙

DNA 복제와 손상 복구 기전, 세포 주기 조절을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자다. 이화여대 생물학과 학부와 서울대 생물학 석사를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 연구처장을 겸임하고 있다. 제10회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2014)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