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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00조원 추경’ 경쟁하는 한심한 여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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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년 국가예산이 608조원에 이른다. 여야는 여기에 더해 100조원의 추경 편성을 경쟁하고 있다.

내년 국가예산이 608조원에 이른다. 여야는 여기에 더해 100조원의 추경 편성을 경쟁하고 있다.

내년 예산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

대선 앞두고 선심성 포퓰리즘 만연  

608조원에 이르는 내년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여야가 ‘100조원+α’ 추경을 거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추경 중독증’이고, 전례 없는 일이다. 내년 상반기 대선과 지방선거가 줄을 이으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선심성 지출 공약에 국민의힘이 ‘묻고 더블로 가자’는 식의 맞불 대응에 나서면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100조원 추경을 당장 추진하자”고 야당을 다그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추경이 빠를수록 좋다”고 맞장구를 친다. 오미크론 확산 위험이 커지자 양당은 지원 금액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는 선심성 포퓰리즘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걸 모르는 국민이 많지 않다. 정책 대결은 오간 데 없고 돈 쏟아붓기 대결로 가는 현실이 암담하다.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재정 형편을 보지도 않고 득표에 도움이 될 만하면 제 쌈짓돈 꺼내듯 경쟁적으로 예산을 부풀리고 있다. 608조원 내년 예산 자체가 이미 세수로 메우기 버거운 규모인데도 100조원을 추가로 편성하자는 발상이다. 국방예산이 내년 예산의 9%인 52조3000억원이다. 본예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여야가 쓰겠다는 100조원 추경은 우리나라 2년치 국방비와 맞먹는 규모다.

여야의 입장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하다. 여당은 당초 이재명 후보가 연내 전 국민 재난지원금으로 25조원 투입을 추진하다 여의치 않자 50조원 추경을 제기했다. 이에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내년 예산을 구조조정하고 부족하면 국채를 발행해 100조원으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면서 맞대응했다. 100조원이 넘는 매머드급 추경 편성이 여야의 공식 입장이 된 것은 여야의 득표 전략에 따른 선심성 경쟁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 돈을 퍼부으면 국민이 무조건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민 입장에선 이런 현실이 암담하다. 김종인 위원장은 선거 이후 새 정부에서의 계획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야당조차 여당의 선심성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추경 남발에 편승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민주당의 무능과 무책임은 더 거론할 필요도 없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대 저성장에 빠졌는데도 재정 지출을 매년 8~9% 늘려온 탓에 국가채무는 정부 출범 직전 600조원대에서 내년 1070조원으로 불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를 넘어서 비상상황이고, 곧 60%를 넘어서면 국가 신용등급에 부담이 된다는 게 국제신용평가사의 경고다. 여기에 추경 100조원을 더하면 쓰러지기 직전의 당나귀에 짐을 하나 더 올리는 위험한 상황을 자초할지도 모른다. 여야는 제발 이성을 되찾아 선심성 포퓰리즘을 자제하고 성장 전략을 제시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바란다.